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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달 장애(어느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연과 이상을 특징으로 하고,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모두 지칭 - 출처 서울아산병원) 아동의 엄마이다.

2023년 검사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진단을 받았고, 그 외 다른 발달 장애가 복합적으로 의심되어 또 여러 검사들을 예약해두고 있는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다.어쩌면 '발달 장애'라는 진단보다 이제는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말하는 게 더 입에 붙을 만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발달 장애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자폐 아동이라고 할 때 가슴이 조금 더 아프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초보 엄마가 매일 만나는 벽, 이렇게 부숴버립니다 https://omn.kr/2b7wu).

명절에 발달 장애 아동 가족을 만나거든

발달센터 치료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들 매일 반복되는 여러가지 발달센터 수업이 싫어서 때로 센터에서 떼를 쓰며 소리를 지른다.
발달센터 치료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들매일 반복되는 여러가지 발달센터 수업이 싫어서 때로 센터에서 떼를 쓰며 소리를 지른다. ⓒ 오선정

'발달 장애'라는 진단명은 그전부터 오래 통용되었겠지만, 35세 다소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된 나에겐 생소했다. 게다가 대부분 평생을, 집안에 발달 장애 아동 하나 없이 육아를 마친 조부모님들이라면 자폐 스펙트럼이라던가, 발달 장애라던가, 이런 진단명이 더더욱 생소하실 테다.

친인척들이 육아를 진행 중이라 하더라도 보통은 비장애 아동의 발달에 대해서만 인지하고 있기에,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자녀의 정신적 문제를 입 밖에 내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제까지 꽁꽁 싸매며 살 수는 없기에,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하는 때가 오긴 온다.

물론 명절을 피해서 조부모님 따로, 아니면 형제자매 따로, 각각 귀띔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진단명을 어찌 오픈하느냐에 대한 방식이다. 결국엔 모두가 모인 명절에는 어떤 식으로든 아이의 발달 과정에 대해 한 번쯤은 짚고 갈 수밖에 없다. 이번 글에서는 가족들 간에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명절을 슬기롭게 보내는 법에 대해 쓰고자 한다.

첫 번째는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보통 "사실은 우리 OO이가 발달 장애를 진단받았어요"라고 하면, 친척들은 안쓰러운 마음에, 아니면 혹시나 오진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어디서 진단 받았는지'부터 시작해서 '대체 무슨 검사를 한 거냐', 아니면 'OO이 아빠도 5살 넘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학교 잘만 다녔다'라는 등 말을 한다. 조언(이라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훈수인)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보통 발달 장애 아이 부모가 이런 말을 밖으러 꺼내기까지는 이미 발달 검사 또는 다른 정신과적 검사를 확실히 마친 후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시간 동안 힘들었을 본인들의 마음을 추스린 후에 가족들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게 말하고도 제발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발달 장애 아이 부모가 아닐까? 조언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어서 사실 관계를 확실히 따져보려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일단 있는 그대로 '경청'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위로 법이라는 것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첫 번째 관문인 '있는 그대로 들어주기'를 통과했다면 두 번째 조언은 필요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친인척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첫 번째 관문부터 불합격을 하게 된다. 더 최악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으며 주변 사례를 어설프게 알려주는 언행들이다.

예를 들자면 '코로나 이후로 마스크들을 많이 써서 아이들이 말이 늦는다더라', 아니면 '아랫집 애기도 처음엔 말이 늦었는데 오히려 어린이집 가고 말이 늘더라'는 등의 이야기다. 또 'OO이네는 엄마가 집에서 책도 많이 읽어주고 수다쟁이라서 말이 금방 늘었다', '엄마아빠가 말수가 적으니 애가 느린 거 아니겠냐', '부모가 집에서 애한테 말을 더 많이 걸어봐라' 같은 비교성 조언들이 있다.

더 기분 나쁘게 하는 건, 발달 장애 아동의 각각 양육자에게 "혹시 OO(상대방)네 집안에 이런 사람 있던 거 아니냐"라며 호구 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 안다. 누구보다 속상한 가족들의 마음을. 하지만 다시 기억해둬야 할 것은 가장 속상한 건 발달 장애 아동 부모들이란 사실이다. 이걸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 번째는 '원인을 찾지 말라'는 것이다. 이 또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면 필요 없을 조언이지만, 대부분의 가족들이 어쩔 줄 모르는 '좋은' 마음에 위로라도 하겠다고 중언부언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발달 장애 아동 부모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대표적으로는 왜 그런지 원인을 찾으려는 경우가 많다.

이를 테면, '임신 기간 중에 별일이 없었던 거냐'라며 은근히 엄마를 탓하는 듯한 말이랄지, 혹은 '애 100일 때 머리를 부딪히지 않았냐? ' 아니면 요새 '미세 플라스틱이나 미세 먼지 때문에 이런 병(?)이 잘 생긴다더라...' 하는 말들이 그렇다. 친절하게도 발달 장애 부모에게 정보를 주고 안심을 시켜주려는 친인척들이 생각보다 많다.

들은 것 중 최악은 이런 것이었다. 부모의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원인을 찾아보라며, 저명한 소아정신과 의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보라던가 하는 조언들 말이다.

내게 위로가 되었던 말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발달 장애 아들과 함께 걷는 미로같은 인생사지만 가족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힘을 낼 수 있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발달 장애 아들과 함께 걷는 미로같은 인생사지만 가족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힘을 낼 수 있다. ⓒ 오선정

'발달 장애 아동 가족을 대하는 세 가지 요령'을 읽은 당신.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혹시 속으로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절반은 가겠구먼. 난 그냥 입 닫고 있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어떤 조언을 하기 보다는 듣고만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고심해서 꺼냈을 이야기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긴 하지만, 이번엔 나의 경우 가장 위로가 되었던 반응을 공유하고 싶다.

내게 있어 가장 위로가 되었던 반응 중 하나는 일단 아이의 진단 과정을 말하는 와중에는 조용히 들어주는 것.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수더분하게 "그래, 많이 힘들었겠다. 혹시 도와줄 건 없어?"라고 가볍지만 내용만은 진심을 담아 반응하는 경우였다. 내 이야기를 온전히 잘 들어주었다는 만족감에, 나아가 아이와 내가 겪을 고충까지 배려해서 말해주는 것 같아서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여있는 한, 일부러 상대방을 화나게 하려는 마음은 없을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혹은 각종 발달 장애라는 진단명에 익숙지 못해서, 혹은 순간적으로 어쩔 줄 몰라서, 아니면 오히려 부모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발달 장애 아동을 둔 가정은 초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자욱한 미로를 걷는 기분이 든다. 발달 장애나 정신과적 진단이 각자에게 다르고, 치료법이라는 게 확실히 정해진 게 없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아동에게 맞춰가야 하다 보니 미로 위에 서 있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그렇게 막막한 순간, 발달 장애 가정의 곁에 있는 다른 가족들이 호롱불 하나를 들고 들어와 손을 내밀며 "많이 힘들었지? 이제 같이 걷자"라고 말을 해줄 때, 발달 장애 아동과 그 가족은 미로를 헤맬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꼭 호롱불이 아니어도 좋다. 좀 더 조심스러운 손길 하나면,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면, 명절에 가족들 사이에서 멋 모르고 뛰어놀고 있을 나의 아들도 훈훈한 상황에서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신체 장애 아동, 더불어 발달 장애 아동까지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발달장애아동#발달장애아동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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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며 책 읽고 글 쓰는 엄마입니다. 발달 장애 아들과의 일상에서 생기는 작은 이야기 조각들을 모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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