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년 5월 3일 한강백사장에서의 민주당 신익희후보 한강 유세 ⓒ 서울스토리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제3대 대통령선거와 제4대 부통령선거는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 후보가 국민 직선에 의해 대결하는 '선거다운 선거'의 효시가 되었다.
집권당인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이 함량이 크게 부족한 측근 이기붕을 러닝 메이트로 지목하고, 제1야당 민주당은 신익희 대통령 후보에 조병옥 부통령 후보, 혁신계의 진보당은 조봉암과 박기출을 정·부통령 후보로 각각 선출하여 대선 진용이 짜여졌다.
사사오입 개헌파동으로 이승만의 3선 출마의 길을 튼 자유당은 공공연하게 이 대통령의 후계자로 등장한 이기붕을 러닝 메이트로 묶어 당선시키기 위해 1년 반 동안에 걸쳐 정지작업을 진행해 왔다. 다수의 문인·학자·언론인들이 이기붕의 호를 딴 '만송족'이 되어 그의 부통령 만들기에 동원되었다.

▲1956년 대선벽보신익희 민주당 대선후보의 <못살겠다. 갈아보자> 벽보가 인상적이다. ⓒ 인터넷 자료
민주당도 정·부통령후보 선출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과 대립이 벌어졌다. 후보선정에 있어서 신익희(민국당 계열)와 장면(원내자유당 계열)의 지지세력 사이에 심각한 대립을 나타냈으며 부통령 후보에는 조병옥과 김준연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후 몇 차례의 타협 끝에 3월 29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대통령후보에는 구파의 신익희, 부통령후보에는 신파의 장면을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선거전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전국 각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에까지 민주당은 붐을 일으켜 지지자가 늘어나고, 정부기관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이 민주당에 동조하는 논조를 보이는 등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선거분위기를 끝까지 끌고가기 위해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서 서울에서는 마지막 신익희 후보의 유세를 열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 한강 백사장에 당시 서울 인구 70만 정도 일때 30만 인파가 모인 이 강연회는 선거사상 처음 보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구름같이 모여든 인파 속에서 신익희 후보는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심부름꾼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주인이 갈아치우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면서 정권교체를 역설하여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시민들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연발하며 박수갈채를 보내었다.

▲해공 신익희(1894~1954)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국민이 주인되는 민주정치
여러분!
이 한강 모래사장에 가득히 모여 주신 친애하는 서울시민! 동포! 동지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해방이 되기 전에 약 30년간이나 외국에 망명생활을 하던 사람의 하나로서 오랜 시간을 두고 본국 안에 살고 있는 부모 형제자매 동포 동지들이 그리워서 밤과 낮으로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짓던 사람입니다.
오늘 이와 같이 많은 우리 동포 동지들과 이 한자리에서 대하게 되니, 내 감격은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6·25 사변 때 우리 전국 남녀 동포 동지들의 가슴 속에 깊이 박힌 원한의 한강에서 이렇게 많이 만나 뵙게 되니 더욱 감개한 회포를 불금(不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40년 동안이나 두고 우리 전국 동포들 남녀 노유를 막론하고 우리 나라가 독립이 되어야 우리는 살겠다고 하였거니와, 참으로 우리는 오매지간(寤寐之間)에도 염원하고 축수하고 기다리던 나라의 독립, 국민의 자유를 제국주의를 응징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찾은 지도 벌써 8년입니다. 일본제국주의 파멸에 이은 무조건 항복이라는 것이 있은 지 9년이나 되는 것을 기억하지만, 우리 나라가 독립이 되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도 8년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살림살이 살아가는 형편이 어떠한 모양이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 전국 동포 동지들이 날마다 시간마다 꼬박꼬박 우리들이 몸소 겪고 몸소 지내 내려 온 터인지라 여러분은 특별히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살아 가는 이 모양 이 꼬락서니, 우리들이 40년 동안을 두고 주야로 원하고 바라던 독립! 이것이 결코 우리가 사는 꼬락서니가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만사가 이유 없는 일이 없습니다.
무슨 이유? 무슨 까닭?
이 까닭은 말하자면, 책임 맡아 나라 일하는 이들이 일 잘못해서 이 꼬락서니가 되었다는 결론입니다. 이것은 고래(古來)로부터 내려 오는 정경대원(正逕大原)의 원칙일 것입니다.
국토는 양단된 채로 우리들이 사는 형편, 언제까지든지 우리가 이 모양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고생에 파묻혀 있나?
여러분!
오직 우리나라 정치가 한 사람의 의사에 의한 1인 독재 정치로 여론을 다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함부로 비판이나 모든 가지의 체계 없는 생각이랑, 정책이랑 함부로 거듭해서 불법이니, 무법이니, 위법이니 하는 것이 헌법을 무시하는 것을 비롯하여 큰 법률, 작은 법률 지키지 않는 까닭에 우리들의 도덕은 여지없이 타락되어서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이 없는 여차한 형편으로 한심한 형편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제일 먼저 중요한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사람과 짐승의 구별은 도의·도덕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사람사는 보람있게, 남 부럽지 않게 남의 뒤에 떨어지지 않게 잘 살아 가자는 것이 우리 전체의 목적이라면 우선 먼저 사람다운 표준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양심 있고 올바르게 일하고, 사람 속이지 아니하고, 책임지고 모든 가지 일을 틀리지 않게 해 가자고 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행세를 못하게 되는 처지입니다. 양심 떼서 선반에 올려 놓고, 얼굴에다 강철을 뒤집어 쓰고,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도적질 잘하는 자들이 대도 활보하고, 행세하고 꺼덕대고 지내는 세상입니다.
둘째로는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옛날과 달라서 민주주의 나라입니다. 백성이 제일이요, 백성이 주장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 국가에서 제일 우리들이 주의하는 것은 "법으로 다스리는 나라다"하는 것을 제일 먼저 주의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옛날 지나간 시간에는 황제의 일언이 법률이라고 해서 지키지 않으면 모가지를 자르던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한 사람의 말이나, 요새 항상 보는 특명이니 무슨 명령이니 특권으로 무슨 명령한다. 유시(諭示)한다 하는 것이 법률을 못 당하는 것이며, 법률이야말로 반드시 우리들은 하는 일 못하는 일을 규정한다는 법치의 정신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 국민의 의사대로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이 법률인데, 이 법률이야말로 대통령 되는 사람부터 저 길거리에서 지게를 지고 품삯을 지는 친구들에게 이르도록 남녀 노유, 부귀 빈천 아무 구별없이 법률 앞에서는 다 만민이 평등으로 다 똑같이 지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니 나라 형편으로 이런 말을 하기가 나부터도 가슴이 쓰린 얘기입니다마는, 대한민국의 법률의 망(網)은 커다란 '독수리'는 물론이려니와 (까막까치) 제비까지도 뚫고 나가지만, 불쌍하게도 법망에 걸리는 것은 오직(파리)나 '모기'뿐이라 하는 얘기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 얘기할 것은 우리 동포들이 주야로 염원하고 있는 우리 국토의 통일, 우리 국가 재건에 선결 문제되는 이 남북통일의 문제.
산 사람을 비유한다면 한 허리 중간에다 바 오라기로 잔뜩 동여 매 놓고 밥 한 숟가락 물 한 모금 잘 내려 가고 넘어갈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형편으로서는 남쪽이 없이 북쪽이 살아가기 어렵고, 북쪽이 없이 또한 남쪽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조상 때부터 단일 민족으로 정든 삼천리 강산을 반쪽으로 나눌 수 없는 것도 또 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경제 형편으로 본다 할지라도 남북이 통일되지 않는 한 제대로 우리의 행복스러운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을 통일하자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제일 간절한 근본 과제인 것이고 의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가지 일이 국내적 형편이나 국제적 형편에 알맞게 현실적으로 되도록 우리가 해 가야 될 것은 물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뭐니뭐니 다 얘기할 것 없이 우선 먼저 우리 국민이 잘 살아가도록 올바른 민주정치를 백성을 위하는 정치, 백성이 하는 정치, 백성의 정치라는 유명한 이상적인 민주정치, "정의를 내리고 이야기하는 실상 있는 이 진정한 민주정치"를 우리는 하나하나 실행함으로써 우리 전 국민이 마음으로 연구해서 "옳다! 우리 정부야 말로 우리를 살게 하는 정부다" "우리는 정부 없이 살아갈 수 없구나!" "이 정부야말로 과연 우리 정부다", 남녀 노유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신의와 이와 같은 대세가 우리 정부에 오도록 우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쪽의 공산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 많은 이북 동포 동지들이 목을 길게 늘여서 목이 마르도록 하루 바삐 "백성을 위하는 우리의 정부, 대한민국, 우리 조국의 따뜻한 품 안으로 한시바삐 들어가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터전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놓으면 어느 사람치고 자유 없고 구박받는 정치제도 하에서 살겠다고 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여러분! 오늘날 우리 민주국가의 형편은 지나간 세대와는 달라요. 대통령이 대단히 능력 있고, 자격있고, 고귀한 듯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지만,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을 무어라 그러는지 여러분들은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인'이라고 불러요. '프레지던트'라고 불러요. '프레지던트'라는 말은 '심부름꾼'이 되는 '하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하인인데 대통령 이외의 사람들, 부장·차장·국장이니 과장이니 지사니 무슨 경찰국장이니 군수니 경찰서장이니 또 무엇이니 하는 사람들이 거 뭣일까요? 하인 중에도 자질구레한 새끼 하인들이다 이 말이에요. 그러므로 하인이란 말은 심부름꾼이란 말을 비유로 얘기해 보면 농사짓는 집은 머슴군 같은 것이고, 장사하는 댁의 하인 같은 것입니다.
대통령이라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요, 그러므로 일 잘못하면 주인 되는 우리 국민들이 반드시 이야기하고, 반드시 나무라고, 반드시 갈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입니다. 주인 되는 사람이 심부름하는 사람 청해 놓았다가 잘못하면 "여보게 이 사람, 자네 일 잘 못하니 가소."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요새 무슨 표어를 보면, '모시고' '받들고' '뭐고 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은 다 봉건 잔재의 소리입니다. 모시기는 무슨 할아버지를 모십니까? 받들기는 뭐 상전을 받듭니까? 이러므로, 만일 주인 되는 국민들이 언제나 "당신 일 잘못했으니 그만 가소." 그러면 두 마디 없이 "대단히 미안합니다. 나는 일 잘못했으니, 물러가겠습니다."하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가거라"하면 "가? 어딜 가. 날더러 가라구? 당치 못한 소리" 거 좀 실례에 가까운 말이지만, 농사짓는데 논 속에서 무슨 논을 갈든지 할 때 논 속에 많은 거머리가 딱 달라붙으면 암만 떼려고 해도 자꾸 파고 들어갑니다. 거머리 달라붙듯이 딱 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말이 통속적으로 애기됐습니다만, 우리 민주당에서 정치적인 원칙으로 내각책임제의 정치를 하자는 것이, 이 진리를 우리는 주장하자는 것입니다. (주석 1)
주석
1> <해공 신익희선생 연설집>, 발췌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8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