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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 중구 동동 생가옆에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 동상
울산시 중구 동동 생가옆에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 동상 ⓒ 울산시 자료사진

"위대한 민족은 세 가지 자서전을 쓴다. 한 권에서는 역사를, 다른 한 권에서는 예술을, 나머지 한 권에서는 그 민족의 언어에 대해서 쓴다." - 존 러스킨.

우리말과 글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다보니 그 가치와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모두 빼앗겼을 때에 비로소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 말과 글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일부 연구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머잖아 영어 식민지 국가가 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영어 공용화'를 제기하면서 아예 영어 상용화를 주장한다.

영어 공용화론의 극단주의자들이 아니라도 한국 사회는 과도한 영어열풍으로 우리말과 글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심하게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부층에서는 아이들이 우리말을 깨치기도 전에 영어를 가르치고, 일부 대학에서는 강의를 영어로 행한다. 심지어 역사와 국문학을 영어로 가르치기도 한다. 초등학생을 조기유학을 통해 영어를 배우게 하거나 심지어 '영어발음'을 위해 아이의 혓바닥 수술까지 감행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대학의 각종 논문작성에는 필히 영어 요약문이 요구되고, 영자지 게재 논문은 평가점수에서 더 많은 점수를 받는다.

영어의 위력을 무사하거나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국제화시대에 '세계공용어'가 되다시피한 영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필요하고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모국어에 앞서, 모국어보다 훨씬 많은 시간에 영어를 배우자는 것은 국민의 기본자세가 아니다. 미국이나 영어권 나라로 이민을 가겠다면 몰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모국어보다 외국어 우선주의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풍조이다.
외솔 최현배 외솔 최현배
외솔 최현배외솔 최현배 ⓒ 병영초 총동창회
1953년 한글날을 즈음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한문을 폐지하고 한글을 쓰도록 하며 현행 한글의 철자법은 복잡하니까 옛날 철자법을 사용하자고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이 유시문을 보고 노망한 늙은이의 심심풀이 농담으로 생각하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언이었고, 대통령의 유시치고는 너무도 무지몽매한 언사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기는 고사하고 보는 이마다 코웃음을 쳤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교부장관 김범린도 이듬해 4월에 이로인해 골치를 앓다가 사임하였는데, 그 후임 이선근 문교장관은 이를 관철시키겠다고 나서서 추진시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문교부는 '국어심의회 규정안'을 만들고 심의위원으로 최현배 등 50명을 임명했다. 위원장은 백낙준이었다. '심의회'는 10월 1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뜻과는 달리 한글간소화안에 대한 반대 가결을 하고 말았다. 최현배는 이를 계기로 문교부 편수국장을 사임하고 정부의 한글간소화 정책을 거세게 비판하였다. 한글학회를 통해서였다. 이승만은 한글학회가 주관하는 <큰 사전>의 간행도 방해하는 등 비민족적인 모습을 보였다.

최현배는 일생을 우리 말글의 연구와 보급에 바침으로써 우리나라 죄고의 국어학자가 되었다. 동시에 그는 해방 후 독재정치를 비판한 사회사상가로서 일생을 보냈다. 그는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지 않았다. 부조리한 현실의 개혁을 위해 학문에 매진하였다. 그의 학문에는 실천성이 담보되어 있었다. 그의 저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의 산물이었다. <우리말본>과 <한글갈> 등 수많은 우리 말글 연구는 일제의 조선어 말살에 대항하고자 나왔다. <나라 사랑의 길>과 <나라 건지는 교육>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한국 교육계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이의 타개책을 제시하였다.

그는 우리 민족의 선지자였던 것이다. (주석 1)

최현배는 자신이 공무원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한글 간소화 정책에 대해 분개하면서 크게 반대하였다. 1954년 4월 19일 한글학회 명의로 발표한 <이 대통령 한글 간이화 재촉 담화에 대한 성명서>가 대표적이다. 성명서를 자신의 책에 넣은 것으로 보아 최현배가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이 대통령 한글 간이화재촉 담화에 대한 성명서

지난해 국무총리 훈령 8호로, 현행 맞춤법을 버리고, 구식 맞춤법에 돌아가라 함에 대하여, 본회로서도 한 나라 정령이 공공연하게 문화의 퇴보를 강요하고 있는 부당성을 지적하고 이를 시정하기를 시급히 촉구한 바 있었다.

그 후 정부로서도 생각하는 바 있었던지, 국어 심의회를 구성하여, 학자와 교육자 그리고 문필가를 모아, 이 문제를 신중히 연구 심의하게 하였으니, 우리 학회로서도 깊이 기대하는 바 있었다.

그것은 첫째 문자의 제정이 일국의 문화를 좌우하는 중대사이매, 한 낱 정령만으로 결정 될 것이 아니라, 널리 그리고 신중히 토의와 심의를 거쳐서 이루어 져야 되겠고, 또 요즈음 한글 맞춤법에 대해서 간혹 불편하다는 비난도 항간에 있다고 하니, 여기서 적당한 비판과 결론이 내려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삭을 두고 심의한 결과는, 대체로 현행 맞춤법 밖에 그 이상으로 더 간단하고 합리적인 다른 안이 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으니, 이 문제가 일단 안정된 것을 기꺼이 여김과 동시에, 본 학회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 짐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3월 27일 대통령 담화는, 3개월 이내로 현행 맞춤법을 버리고 옛 성경 맞춤법에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려, 또다시 사회의 불안과 반대의 소리가 높아 가고 있어, 본 학회로서도 거듭 그 시정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첫째, 문자의 간이화를 주장하는 행정부 주장에 우리도 전적으로 찬동하고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문자는 그 민족 문화의 터전으로, 이것이 쉽고 완전할 때, 그 민족 문화는 향상하고 발전한다는 것은 고금을 통해 변함없는 사실이다. 우리 학회가 지금까지 지향해 온 바는 다름 아니라 오직 그 길이었다.

그러나, 문자의 간이화가 다만 받침을 몇 개 없애고 획수를 적게 하고 또는 통일된 약속의 구속됨이 없이 임의로 쓰는 데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무릇 글자는 사람의 생각을 전하는 수단으로, 뜻을 가장 정확하고도 빠르게 전달하는 데 문자의 생명이 있는 것이니, 세계 문명 국가의 문자가 다 이러한 문자의 생명을 실현하기에 전일한 목표를 두고 있다.

이제, 우리 한글 맞춤법도 동일한 목적으로서 종래의 무통일한 혼란의 상태를 벗어나 과학적으로 간이하고도 합리한 체계를 세운 것으로, 금번의 심의회에서 검토 - 재확인되었다.

둘째, 백성의 여론을 존중하고 인간의 자유를 사랑함이 민주와 자유의 정신이라 하거든, 국가에서 지시한 학계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국어 심의회 한글분과위원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학문의 자유와 진리의 권위를 몰각하고, 소학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의 과학적 교육 정신의 파괴를 불고하고, 사회 여론의 반대를 누르고서, 일제 36년의 치하에서 민족 사상, 과학 정신에 입각한 전 민족의 피어린 투쟁의 결과로 이루어진 문화 공탑을 일조에 허물어 버리고, 지리멸렬한 비현대적 문자 생활로의 환원 전략을 강요한다는 것은, 자유애호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요, 민주 정신에 위반되는 일이다.

이에, 우리는 문화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에서, 그대로 참을 수 없어, 감히 학문의 자유를 위하여, 민족 문화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민주적 발전을 위하여, 이십 세기 과학 정신의 순탄한 발달을 위하여 자유세계의 자유 정신의 정당한 실현을 위하여, 단순한 권력에 의한 문자 변혁의 천만 부당함을 성명한다.

단기 4287년 4월 19일
한 글 학 회 (주석 2)

주석
1> 박용규, <조선어학회 33인>, 55쪽, 역사공간, 2014.
2> 최현배, <한글의 투쟁>, 296~298쪽, 정음사, 1958.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8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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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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