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30일 오후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사고 현장에서 야간 유류품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안현주
지난해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17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언론을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지난 대형 참사에서 제 역할을 못 해 많은 비판 받은 게 사실이다. 이번엔 어떨까?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보도에 대한 평가와 함께 취재하는 기자들의 트라우마 문제를 짚어보고자 2022~2023년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여성기자협회의 공동 태스크포스인 '언론인트라우마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1.0'을 제작한 이정애 SBS 기자를 지난 15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 과거에는 참사 보도에 대한 비판이 있었으나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보세요?
"일단 문제가 없다고 보셨다는 면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큰 틀에서 '과거 저희가 잘못했던 것들을 계속 개선하려고 노력했었다'라는 면에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객기가 폭발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도했던 데도 있었고, 피해자 명단을 동의 없이 공개했다가 나중에 내린 곳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전보다는 아주 좋아졌다고 저도 생각하고 있고, 또 후배 기자들이 잘하고 있다는 면에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 세월호 이후 재난 보도 준칙이 제정되었잖아요. 그나마 큰 문제 없는 건 이 때문일까요?
"한국기자협회가 2014년 4월 20일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어요.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거 자체는 굉장히 기쁜 일이죠. 하지만 당시 취재하던 기자들 입장에서는 이미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는 상황에 만들어졌다 보니 그걸 제대로 숙지할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 본의는 아니었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제2, 제3의 피해가 나타나면서 많은 기자가 굉장히 힘들어하고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꼈던 상황이거든요. 그 이후 어떻게 다르게 해야 되는지와 관련된 논의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세월호 유족들과 세월호를 취재한 기자들이 같이 2015년도에 간담회를 진행 했어요. 그러면서 유족들에게 어떤 부분 때문에 특히 힘들었는지 혹시 잘한 언론은 하나도 없었는지, 잘한 언론이 있었다면 무엇을 잘했는지 얘기해 달라고 했었어요. 그때 들을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방송기자연합회에서 당시 저널리즘과 트라우마 관련 첫 교육 영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방송기자연합회나 언론진흥재단에서 '수습기자 과정', '재난 재해 전문 과정' 등을 두면서 트라우마와 관련해 지난 10년 동안 계속 교육해 왔습니다.
보도 재난 준칙의 제정도 물론 도움이 됐겠지만, 그거 하나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많은 언론사와 언론인 그리고 언론단체들이 세월호 때와는 다르게 하려고 많이 노력해왔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결정적으로 드러난 계기가 이태원 참사 보도였다고 생각합니다."
- 이태원 참사 때는 어땠나요?
"참사 보도 관련해 가장 크게 전환점이 된 게 이태원 참사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때 저희 SBS만 봐도 처음으로 '하지 말자'는 약속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현장에 가면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해야 돼' 같은 얘기를 주로 했다면, 이태원 참사 때부터는 '이런 것은 하지 말자'고 했죠. 그때부터 저희가 참사 보도를 어떻게 다르게 해야 되는지 배워가는 과정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 트라우마 관점에서 고위험군 직종"

▲이정애 SBS 기자 ⓒ 이영광
- 기자님도 예전에 참사 취재한 경험이 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저는 1995년 입사거든요. 그러다 보니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를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지는 못했죠. 미국 9.11테러 당시 <뉴스추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기억이 있고요.
트라우마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뉴스추적>하면서였는데요. 트라우마는 참사같이 큰 사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사건 사고에도 있을 수 있고, 언론의 특성상 기자는 한 사건 취재하다 다른 일 터지면 또 그다음 사건 연달아 취재하는 식으로 어떻게 보면 힘든 상황이 계속 중첩되는 구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언론을 트라우마 관점에서 고위험군 직종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참사에 대한 얘기는 제가 경험한 게 아주 많지는 않아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꼭 참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트라우마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사건 사고에서도 경험할 수 있고, 특히 그게 직접적으로 죽음이나 죽음에 대한 위협, 또 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사건을 경험할 때뿐만 아니라 간접 경험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자신과 가까운 사람 혹은 잘 아는 지역의 사건을 취재하게 될 때, 예를 들어 이번에 제주 항공 여객기 참사의 경우에도 그 지역에 계신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그 지역을 취재하는 지역 기자들 같은 경우 더 힘들 수 있는 거죠."
- 언론인에게 트라우마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론인도 트라우마를 입을 수 있다'라는 걸 아는 게 되게 중요하죠. 이전까지는 언론계 내에서뿐 아니라 의학계에서도 크게 인지를 못 하고 있다가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계에서 기자들도 3차 트라우마 경험자가 될 수 있다며 경찰관이나 응급구조요원처럼 간접, 대리 트라우마를 입을 수 있는 대상으로 언론을 꼽아주셨어요.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언론이라는 직종도 트라우마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요. 그러다 보니 언론계 입장에서 주의해야 되는 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죠. 하나는 저희가 취재하는 사건·사고의 피해자나 유족들도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니 그분들의 트라우마를 더 해하지 않으면서 취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 가져야 하고요.
두 번째는 참사나 사건·사고 취재하는 기자들도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으니 괜찮은지 체크해야죠. 예를 들어 유족 취재는 모든 기자가 힘들어하는 취재잖아요. 예전 같으면 한번 유족 취재를 보낸 기자한테 '유족들 안면도 익혔으니 유족 취재는 네가 계속하자'라고 했어요. 근데 트라우마의 관점에서 한 기자만 계속해서 유족 취재를 하는 것은 너무 힘들 수 있으니, 중간에 누구로 교대를 해 줄 건지, 또 특정한 사람이 힘든 취재를 도맡아서 너무 오래 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모니터링하면서 교대 시점 등을 더 정교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 이후에 심리치료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심리 치료도 굉장히 중요하고요. 실제로 이태원 참사 이후에 많은 언론사들이 참사 취재 이후 심리치료를 지원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보통 어떤 참사를 취재하고 오면 오자마자 일주일 내에만 심리 치료를 장려하는 경우가 많고 일시적으로 한 번만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요. 사실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경우보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 2~3주 정도는 힘들 수 있는데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수도 있거든요.
근데 한 달이 지나도 계속 힘들면 사실 그때 치료 받는 게 중요하대요. 물론 초기도 좋지만, 초기뿐만 아니라 조금 긴 주기로 치료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라든지, 아니면 말씀드린 것처럼 꼭 참사에서만 트라우마를 입는 게 아니니까 일반 사건 사고 취재에서도 혹시 힘든 사람이 있으면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거나 하는 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트 센터'라고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 부설의 저널리즘과 트라우마를 위한 비영리 단체가 있는데요. 거기서 주로 얘기하는 건 기자들의 트라우마인 경우 심리 치료도 중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학적인 치료도 받아야 되지만 동료들끼리의 지지가 치유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바로 '피어 서포트(Peer Support)'라는 동료 간의 지지 프로그램인데요. '피어 서포트' 제도를 갖추는 게 중요한 이유는 같은 언론인끼리는 취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요. 그렇다 보니 '예전에 나는 그런 취재 하고 나서 며칠 악몽을 꿨었는데 너는 괜찮아?'라고 물어봐 준다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런 과정에서 이게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우리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일이 왜 중요한지를 같이 상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피어 서포트를 받는 언론인 입장에서도 '내 동료들이 나를 지지하고 내가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이해해 주는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훨씬 더 트라우마를 경험하지 않는 데 도움을 주거나 경험했다 해도 나아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건강한 기자가 건강한 보도 할 수 있어"

▲이정애 SBS 기자 ⓒ 이영광
- 혼자 해결하기보다는 동료와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게 도움이 될까요?
"그렇다고 해요. 그리고 그 고민을 나눌 때 어떤 충고나 조언을 해주는 것보다 얘기를 경청해서 들어주고 스스로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 나갈 수 있게 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그래요.
왜냐하면 내 해법이 꼭 그 동료에게도 해법이 되는 건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꼭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는 것보다는 일단 얘기를 들어주고 그다음에 자기도 만약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면 '나는 그때 이런 식으로 했었는데 꼭 그걸 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혹시 너는 어떤 걸 하면 조금 더 괜찮을 것 같아'라든지 '힘든 게 있으면 내가 언제든 너의 얘기를 들어줄 의향이 있어' 이런 식으로 해서 자기가 힘들 때 찾을 수 있는 동료 선후배, 동기가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게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BBC와 미국 워싱턴포스트, 호주 ABC에서 이 '피어 서포트'라는 제도를 공식적으로 자기 보도본부 안에 만들어 놓고 있다는데요. 보통 트라우마에 대해서 관심 있어 하는 기자들에 먼저 교육 시킨다고 하고요.
그렇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참사가 났을 때 만약 사회부면 사회부에서는 '어디 취재해라'나 '어떻게 취재해라' 이런 얘기들을 주로 할 거잖아요. 근데 그 사회부가 아닌 기자 중에 현장에서 취재하는 동료에게 괜찮은지 카톡이나 전화를 해본다든지 취재하고 끝나고 왔을 때 '우리 같이 차 한잔 마실래?'라고 제안하면서 같이 얘기 나눠주는 '피어 서포트'라는 역할을 할 수 있게 기자들을 따로 훈련을 시킨다고 하더라고요."
- 참사 보도에서 어려운 것 하나가 유가족 보도일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언론인 트라우마에 대해 공부하고 또 '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1.0'을 제작하면서 전문가들에게 들은 얘기는 우리가 보통 취재하는 단계인 특정 사건 사고 터진 바로 직후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단기 기억하고 감각 기억이 형성되는 시기래요.
'페리 트라우마' 단계라고 하는데요. 그 시기에 특정 사건에 대해 내가 어떤 질문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사건이 내 기억에 평생 그렇게 남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능하면 너무 감정적인 얘기보다 능동적인 행동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 예를 들면 어떤 걸까요? 저만 해도 유가족 인터뷰할 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거든요. 그게 안 좋을까요?
"아니에요. 고인에 대해 묻는 것도 괜찮은데, 고인에 대해 얘기를 하는 데 있어서 어디서 얘기하고 싶은 지 언제 얘기하고 싶은지 예를 들어서 내가 인터뷰할 때 다른 가족과 동행하고 싶은지 그리고 기자한테도 질문을 할 수 있다라는 걸 알려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때도 인터뷰이에게 조금 더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이분들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니고 다만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 그리고 가급적 유족들의 회복을 돕는 차원에서 이왕이면 할 수 있게, 기존의 관행과는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는지 언론에서도 이제는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는 생각합니다."
- 기자가 너무 감정을 이입해도 안 좋을 것 같고 제3자 입장으로 이야기해도 유가족 입장에선 별로일 것 같거든요. 어떻게 해야 되나요?
"당연히 약간의 거리를 두는 건 되게 중요하고요. 그리고 보통 저희가 이런 트라우마 같은 교육 할 때 많이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기 얘기를 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라고 얘기해요. '심리적 응급처치' 관련 저희가 국가 트라우마센터에서 교육을 받을 때 들었던 얘기 중에 어떤 분을 내가 인터뷰하거나 혹은 섭외하는 데 있어서 '나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어서 더 이해를 잘할 수 있다'란 식으로 얘기하는 게 별로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 왜죠? 내가 당신 아픔 공감한다는 의미일 것 같은데.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지 말라는 이유가 그렇게 말할 경우에 상대방이 오히려 저 기자도 내가 위로해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가질 수도 있고, 뭔가 더 부담을 많이 갖게 된다고 그래요. 이야기의 중심이 취재원에게 가야 하는데 취재진 쪽으로 무게의 추가 옮겨갈 수도 있고요. 한 사람에겐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잖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자기 얘기를 통해 공감을 얻는 것보다 자기 얘기를 하지 않고도 라포를 형성할 방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이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도 더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 참사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뭘까요?
"일단 참사 보도는 언론에 있어 너무 중요한 보도라고 생각하고요. 보도의 목적은 피해를 줄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또 가급적 당사자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힘든 시기를 같이 잘 넘기고 회복될 수 있게 하기 위해 보도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언론의 참사 보도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그걸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이 지금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이 되게 중요한 것 같고요.
그다음에 본인들이 그렇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까지 고민하면서 했던 취재, 보도 방식들이 결국 언론인 본인의 트라우마를 덜 하게 하는 데도 굉장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언론사의 입장에서도 그 기자나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까지 고려할 수 있을 때 결국 건강한 기자가 건강한 보도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희가 더 좋은 보도를 결국 할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