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혹한에 몸이 움츠러들고 요즘처럼 어수선한 시국엔 미술관이 제격이다. 특히 큰일을 치른 뒤 몰려오는 허전함을 달래자면 그만한 곳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심란한 상황일 때도 그곳에 전시된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적잖은 위로가 된다.
국가 기관인 경호처를 사병 부리듯 하며 버티던 윤석열 대통령이 끝내 체포됐다. 집회에 함께한 옆 사람들과 모두 고생했노라 인사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새벽부터 동원되어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경찰들에게도 박수를 보냈고, 환호성을 지르며 당일 집회가 마무리됐다.
방석과 핫팩, 장갑과 귀마개 등을 배낭에 욱여넣고 집회 장소를 나왔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순간의 기분이 참 묘하다.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이뤄냈다는 성취감에 스스로 대견해하다가도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밀려오는 허전함에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한다.
집회에 단체의 이름으로 참가한 이들의 경우엔 뒤풀이 자리가 있기 마련이지만, 나처럼 홀로 참가한 이들에겐 끝나는 시간이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에는 전가의 보도처럼 삼삼오오 모여 막걸릿집을 찾았다. 그곳에서까지 시국 토론이 이어지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이젠 50대 중반을 넘긴 나이라 그럴 지인도, 시간도, 체력도 없다. 선후배, 친구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를 받고 다짐을 새기던 청년 시절의 삶을 추억할 뿐 그때로 되돌아갈 순 없다. '바위처럼'을 최신곡으로 여기는 내게 '다시 만난 세계'는 뭉클하지만 낯선 노래다.
함성 가득했던 광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번에도 휴게소처럼 미술관을 찾았다. '데모'와 '미술관', 분명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미술관의 어둑한 공기만으로도 집회의 억센 기운을 정화해 낸다. 작품 앞에 우두커니 서면, 수고했노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듯해 행복하다.
지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층에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몇 해 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할 때,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카라바조의 작품 <메두사>에 매료됐었다. 그의 짧고도 기이했던 행적까지 더해져 이름이 잊히지 않았다.
전시회는 3월 27일까지 계속된다. 1층에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일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굳이 고흐를 찾지 않고, 몇 해 전에 만난 카라바조를 다시 찾은 건 그때의 또렷한 기억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본명이 미켈란젤로였다는 것도 독특했다.
오해할까 싶어 전제해 둔다. 난 미술엔 젬병이다. 그저 미술관에 가서 작품들 쳐다보는 걸 좋아할 뿐, 전문적인 지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까 싶어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쓴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를 틈틈이 찾아 읽는 게 전부다.
학창 시절엔 미술관 가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건 격식을 갖춰야 하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했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드레스 코드'가 정해져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고, 그럴수록 점점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라 여겼다.
카라바조는 바로크 회화의 개척자로서, 유럽 미술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회화 실력에 주목한 추기경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은 그의 재능을 당시 교세가 꺾인 가톨릭을 부흥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귀족들도 앞다퉈 그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의 그림은 하나같이 도발적이고 강렬하다. 문외한의 눈에도 단지 '잘 그렸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서릿발 같은 힘이 느껴진다. 여전히 종교적 권위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이라 주로 성서의 내용이 그림의 주제였지만, 빛의 극단적 명암 탓인지 종교화의 느낌이 거의 없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과 눈빛은 압권이다. 관람객마다 시선을 본능적으로 피할 만큼 강렬하다. 순간 그림 밖으로 뛰쳐나와 내게 말을 걸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주인공은 하나같이 가톨릭의 성인이되 제목과 내용을 가리고 보면 영락없이 당시의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과 예술적 성취는 주사와 폭력으로 점철된 난잡한 사생활로 인해 빛이 바랬다. 술 마신 뒤 시비가 붙어 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면,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도피 중에도 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술에 취해 칼을 휘둘렀고, 처벌을 모면하려 도망쳤다. 그의 재능을 아꼈던 종교 지도자들과 귀족들의 비호 아래 그의 범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반성할 줄 모르는 그의 행태는 든든한 뒷배가 돼준 그들이 부추긴 측면이 크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카라바조의 대표작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앞에 섰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의외로 한산해 가만히 선 채 한참 동안 그림 속 다윗과 골리앗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윗이 자신이 칼로 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섰는데, 둘의 얼굴이 무척 닮았다.
이 그림 속엔 그의 악행을 사죄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다윗은 카라바조 본인의 어릴 적 모습이고, 골리앗은 도피 행각을 벌인 말년의 얼굴이다. 다윗이 골리앗의 처참한 몰골을 가엾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어린 시절 카라바조가 범죄자가 된 지금의 자신을 한탄하는 모습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는 카라바조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음을 교황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린 작품이라고 전한다. 그는 도피 중이던 시칠리아에서 교황을 알현하고 사죄하기 위해 로마로 향하다가 풍토병에 걸려 객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나이 고작 서른여덟 살 때다.
같은 그림이라도 언제, 어디서, 누가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당일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 속 카라바조의 생애는 당장 윤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화가를 검사로, 종교 지도자를 전광훈으로, 귀족을 여당으로 바꾸면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진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의 삶을 한낱 '내란 수괴'의 그것과 비교하는 게 적이 민망하지만, 기괴함과 비루함에 있어서는 더하면 더 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다. 적어도 카라바조는 윤 대통령과는 달리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려 했다.
관람을 마치고 출구를 빠져나오니 로비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로 북새통이다. 다들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기에 카라바조의 작품과 생애를 미리 챙겨 읽는 줄로 알았다. 다가가 힐끗 보니 죄다 윤 대통령 체포 관련 실시간 뉴스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들 역시 카라바조의 작품을 통해 윤 대통령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듯하다. 머릿속에 온통 윤 대통령 체포 소식뿐인데, 작품에 대한 설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어쩌면, 이야말로 2025년 대한민국에서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예술적 가치'를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