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5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가자지구 집단학살 1년 이스라엘 규탄 전국집중행동의 날' 집회에서 발언 중인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씨.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467일 만의 휴전이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대대적으로 공습한 2023년 10월 7일 이후 약 4만 7천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당했던 전쟁이 15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파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이 타결되면서 '휴전'됐다.
살해당한 4만 7천여 명의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살레 알란티시(27)씨의 가족도 있다. 1997년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에서 태어난 살레 알란티시씨는 가족들과 난민 캠프를 전전하다 홀로 2022년 12월 한국에 유학생으로 입국했다. 그로부터 10개월여 만에 그가 살던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그는 "안전하고 더 나은 삶을 찾으려" 한국에 왔지만, 이번 전쟁으로 인해 가자지구에 사는 할아버지와 친척들, 친구들을 잃었다. 그는 27살이지만 이미 가자지구에서 4차례의 전쟁을 겪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7일 하마스와의 인질 석방·휴전 협상이 타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휴전안을 통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42일간 교전 중단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맞교환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내 단계적 철수 ▲영구적 휴전 등을 논의하는 '3단계 휴전'에 합의했다.
1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살레씨는 "대부분의 친구를 잃은 후라 삶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스라엘은 어린이와 여성, 자연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 대량학살과 전쟁 범죄를 무차별적으로 자행했으나, 팔레스타인 민족의 저항 의지를 꺾는 데는 실패했다"(17일 기자회견 발언문)고 강조했다.
"핵심은 전쟁 아닌 '점령'"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1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가자지구 영구적 휴전 및 식민 지배 종식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라엘은 즉각 휴전 협상안을 승인하라"고 외쳤다. 또 긴급행동은 "일시적인 교전 중단을 넘어 영구적인 휴전과 식민 지배 종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 휴전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휴전이 발표되었을 때 기쁨과 행복, 슬픈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어린이와 여성 살해, 텐트·학교·이재민 지역 폭격 등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에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추위로 인해 사망하기도 했던, 그 텐트에서 살아가던 수천 가구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동시에 이 전쟁에서 희생된 친구들 없이 저의 삶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대부분의 친구를 잃은 후라 삶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겁니다."
- 살레씨는 팔레스타인에 살면서 평생 전쟁을 경험해왔습니다. 2023년 10월 7일 시작된 전쟁이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요.
"이번 전쟁은 파괴, 희생자 수, 부상자 규모 면에서 완전히 다릅니다. 2014년 전쟁으로 2천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반면, 이번 전쟁에서는 어린이 1만여 명을 포함해 약 4만 7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가자지구는 치명적인 파괴를 겪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본격적인 대량 학살이 이뤄졌습니다. 전쟁이 460일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제사회의 치욕입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은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저는 가족, 친구, 이웃들이 무력감으로 가득 찬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 팔레스타인에 있는 가족, 친구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 전쟁은 제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할아버지, 삼촌, 삼촌의 아내, 사촌, 그리고 멋진(wonderful) 친구들을 잃은 후에 제가 어떻게 계속 살 수 있을까요? 전쟁이 끝난 후 우리는 혹독한 기억에 시달리면서도 다시 살아야 할 겁니다. 우리 가족은 한 텐트에서 다른 텐트로 이사하며 피난처를 찾아 떠났습니다. 다행히도 이 악몽은 휴전되면서 끝날 것입니다."
- 팔레스타인에 오늘처럼 '휴전'이 아닌 영구적 평화가 오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핵심적인 문제는 전쟁 자체가 아닌 '점령'입니다. 휴전으로 인해 살육은 일시적으로 중단되지만, 이스라엘의 점령이 존재하는 한 팔레스타인인을 땅에서 추방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전쟁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과의 연대가 멈추거나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대신 팔레스타인 난민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노력하고, '완전한 해방'이라는 팔레스타인인의 염원을 전 세계가 인식해야 합니다. 이브나 마을(과거 팔레스타인 땅이었으나 현재는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지역)에서 온 난민으로서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제 땅과 조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서 우리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우리 땅을 점령하는 것에 대한 투쟁입니다."
-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에 대해 국제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일은 국제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하는 전쟁 범죄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국제시스템은 이스라엘을 법 위에 서 있는 것으로 취급하고, 식민지 강대국의 이익을 보호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 점령군 지도자들이 전쟁 범죄를 저지른 책임을 질 것이라 보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전범들이 하나님의 정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팔레스타인 난민으로서 한국에 와서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해 연대하는 집회에도 여러 차례 참석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지난 2023년 10월 7일 대량 학살이 시작되자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신념이나 정치적 소속에 관계 없이 가자지구에 대한 지지와 팔레스타인 학살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연대 행사와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연대 활동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진심을 느꼈고, 또 가자지구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진심을) 나누었습니다. 정말 한국에서 느낀 이 놀라운 순간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며, 제 기억에 영원히 새겨질 것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1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가자지구 영구적 휴전 및 식민 지배 종식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라엘은 즉각 휴전 협상안을 승인하라"고 외쳤다. 또 긴급행동은 "일시적인 교전 중단을 넘어 영구적인 휴전과 식민 지배 종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취재협조 : 미니(평화운동가) 덧붙이는 글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3차 긴급 지원 모금'을 오는 2월 28일까지 진행합니다. 사단법인 '아디'의 주관으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전쟁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하며, 모금액은 가자지구 주민 가구별 생계지원 물품 구입에 사용됩니다. https://box.donus.org/box/adians/Gaza_3rd_Fund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5-804-103859 사단법인 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