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5.01.17 17:09최종 업데이트 25.01.17 17:09

페미니스트를 향한 괴롭힘,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노벨상 시상식이 실시간 방영되고 있다. 본 시상식에서 한강 작가는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수상 소식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으로 혼란과 충격에 휩싸인 사회에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을 수상한 그녀도 비난의 목소리를 피하지 못했다. 단지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작된 페미니즘 마녀사냥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사건과 미투 MeToo 운동으로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2030 세대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기반한 구조적 성차별을 해소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며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 세력이 있었다. 그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왜곡해 기존 시스템을 무너트려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고, 역차별이라는 허상을 퍼뜨렸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여성 노동자들의 일상을 공격하여 사회적·경제적 삶을 파괴했다.

AD
처음에는 단지 페미니즘을 후원하는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였다. 이후 여성 단체 SNS를 팔로우하거나 여성 혐오 범죄 기사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헤어스타일이 숏컷이라는 이유로, 또 <82년생 김지영>을 읽어서 가해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최근에는 집게 손 모양이 남성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억지 주장까지 나오며 프레임 단위로 감시하고 색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비상식적인 억지 주장과 음모론에 동조한 가해자들은 행동으로 옮겼다. 피해자들은 신상정보가 유포되고, SNS에는 온갖 욕설과 협박, 비난이 쏟아졌다. 나아가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소속된 회사에 항의 메일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 해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2024년 3월 6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사례 발표 및 공대위 출범 기자 간담회
2024년 3월 6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사례 발표 및 공대위 출범 기자 간담회 ⓒ 전국여성노조

페미니스트 괴롭힘, 누가 허용했는가?

기업은 이에 동조하고, 정부는 방관했다. 기업은 소비자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줌으로써 사건을 덮었다. 헌법과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자에게 불이 익을 줄 수 없음에도 기업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정부도 이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기업과 정부의 외면은 가해자들에게 페미니스트 괴롭힘이 범죄가 아닌 정당한 권리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끝없는 해고와 위협 속에서 일상을 잃어갔다. 채용과정에서 여성에게만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성차별적 질문을 받거나, 일상적인 대화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비아냥과 조롱, 협박에 맞닥뜨려야만 했다. 회사로부터 SNS를 검열받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기도 했다. 해고 또는 해지와 같은 부당한 사건들은 계속 발생했다.

 2024년 11월 1일 국회도서관에서 진행한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과 대안을 위한 토론회
2024년 11월 1일 국회도서관에서 진행한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과 대안을 위한 토론회 ⓒ 전국여성노조

그 결과, 피해자는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가해자들은 온라인에서 익명성을 악용해 피해자들을 공격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수록 더 큰 비난과 공격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의 언어와 일방적인 주장만 남게 되었다. 이는 페미니스트 들을 위축시켜 더는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낼 수 없게 하기 위한 전략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페미니스트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언행을 검열해야만 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이름 아래 억울하게 침묵을 강요받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에도 페미니스트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임을 알기에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하고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가해자와 그에 동조하고 방치하는 기업과 정부의 잘못임을 분명히 밝혔다.

페미니즘을 여성 노동자를 억압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가해자들을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에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법 등 노동·시민단체들이 모여 지난 2024년 3월,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아래 공대위)를 결성했다.

공대위는 여성 혐오자들로부터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한 여성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에 앞장섰다. 정부가 피해자와 페미니즘 관점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정책을 수립하도록 요구했다. 또한, 가해자들과 이들을 방관한 기업들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공대위는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의 본질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도 열었다.

작은 행동이 모이면 거대한 파도가 된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상 및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여성 작가 배제 관행 개선을 위한 의견표명'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 역사적, 구조적 차별을 받아온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켜 평등한 사회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페미니즘의 본래적 의미를 고려할 때, 피해자들의 행위나 활동이 사회 상규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것이 아닌 한, 페미니즘과 관련한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를 표했다는 것을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괴롭힘 및 혐오 대상이 되고 다수의 집단행동에 의해 사실상 직업 수행에 있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므로 법령, 제도,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약속이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이를 위해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이 있다. 가해자들을 옹호하거나 방관하는 기업과 언론에 항의하고, 온라인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글을 발견하면 즉각 신고할 수 있다. 하나의 행동이 작은 물결로 시작되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
앞으로 우리는 침묵하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평등한 사회를 향한 발걸음은 오늘, 바로 당신과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71호에도 실립니다.글쓴이는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71호 2025년도 1,2월호 '사이를 잇다'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페미니즘#사상검증#사상검증피해발표
댓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노동시민사회단체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