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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불안해서 잠 못 이뤄요... 누구를 위한 시설입니까!"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해안가 마을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심각한 해안 침식 문제를 겪고 있는 반암해변, 교암해변, 천진해변 등에는 연안 침식을 방지하기 위한 잠제(수중방파제)가 설치되어 있으나, 이것들은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반암해변 침식 잠제(수중방파제) 설치 이후 연안침식이 가속화되고 있어 지역주민들은 불안해하고있다(2025/2/26)
반암해변 침식잠제(수중방파제) 설치 이후 연안침식이 가속화되고 있어 지역주민들은 불안해하고있다(2025/2/26) ⓒ 진재중

26일 반암해변을 찾았다. 해안가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위태롭기만 했다. 해안 침식이 진행되면서 백사장은 낭떠러지로 변했고 그 아래로는 무너진 지반과 드러난 생활시설들이 보였다. 거센 파도가 칠 때마다 깎여 나가는 모래언덕은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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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항포구 건설을 한 뒤 항 입구는 모래가 퇴적되고 해변에선 심각한 침식이 발생했다.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2022년, 잠제(수중에 설치되는 방파제) 200 m 를 설치했으나 효과는 없고 침식만 더 심화되고 있다.

이 마을주민 정기여(71세))씨는 "과거에는 이곳에서 50여m를 걸어나가 조개도 잡고 해수욕을 했는데, 항구를 짓고 앞바다에 시설들(잠제)을 설치하고 나서 마을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특히 바람이 부는 날에는 모래가 앞마당까지 들어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은 쌓인 모래를 가리키며 고성군의 행정을 탓했다. 그는 "(고성군이) 어촌뉴딜사업을 한다고 쓸데없는 낚시터만 개발하고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일은 등한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항포구에 준설된 모래 항포구 건설후 항입구에 모래가 퇴적되어 매년 준설을 하고있다(2025/2/26)
항포구에 준설된 모래항포구 건설후 항입구에 모래가 퇴적되어 매년 준설을 하고있다(2025/2/26) ⓒ 진재중

교암 해변, 방재사업에도 불구하고 침식 심화

교암 해변은 완만한 경사와 양질의 모래로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던 해수욕장이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고파랑 증가, 연안 개발로 인해 침식 피해가 발생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109억 원을 투입해 잠제 3개소(300m)와 친수호안공 372m를 설치하는 방재사업이 추진됐고, 2019년 완료되었다.

하지만 잠제 설치 이후 해안침식은 오히려 가속화되었다. 특히 해안가 도로가 침수되고 옹벽이 드러나면서 구조물 붕괴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교암해변 앞에 설치된 잠제(수중방파제)를 바라보며 시설물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마을주민(2025/2/26)
교암해변 앞에 설치된 잠제(수중방파제)를 바라보며 시설물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마을주민(2025/2/26) ⓒ 진재중

이 마을의 이장인 한인동(70)는 "이 해변은 원래 수심이 얕고 주변이 암반으로 되어 있어 해안 침식과는 거리가 먼 천혜의 해변이었다"면서 "불필요한 잠제(수중방파제)가 설치되면서 해안 침식이 심해졌고, 잠제는 침하되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예산을 들여 잠제를 설치했지만, 체계적인 계획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교암 해변에서 숙박업을 운영하는 김아무개(64)씨는 "해안 침식이 발생한 이후 관광객이 급감했다"며 고성군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고성군 교암해변 연안침식으로 도로앞에 시설물들이 쓰러져있는 현장(2025/2/26)
고성군 교암해변연안침식으로 도로앞에 시설물들이 쓰러져있는 현장(2025/2/26) ⓒ 진재중

강원도 고성군 천진해변, 역시 침식이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필자가 현장을 방문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해변이 크게 줄어든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의 상징이었던 시계탑이 이전되었고 넓던 백사장도 눈에 띄게 축소됐다. 특히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옹벽 아래 받침대가 파도에 의해 떨어져 나갔으며 전봇대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천진해변 침식 해안침식으로 콘크리트 구조물이 위험스럽게 노출되어있다(2025/2/26)
천진해변 침식해안침식으로 콘크리트 구조물이 위험스럽게 노출되어있다(2025/2/26) ⓒ 진재중

마을 주민 함흥렬씨는 "군청에 여러 차례 재난 요청을 했지만, 담당자들이 현장을 방문하고도 아무런 대책 없이 돌아갔다"며 "주민들은 파도가 심한 날이면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마다 바닷가를 확인한다"고 호소했다.

박규현씨 또한 "해변이 관광지인데 바다 모래가 계속 유실되고 있다"며 "설치된 잠제가 오히려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항구는 있지만 배가 정박할 수 없어 차라리 잠제를 철거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천진해변 침식 침식으로 인해 해안에 설치된 생활하수관로와 시설물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2025/2/26)
천진해변 침식침식으로 인해 해안에 설치된 생활하수관로와 시설물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2025/2/26) ⓒ 진재중

아래 사진은 지난 1월 8일 방문했을 때(관련기사 : 동해안 해변, 침식 심각... '붕괴 위험'에 전문가 진단 나서 https://omn.kr/2bsfb)의 모습인데, 지금은 시계탑과 포토존이 사라지고 해안가 도로변으로 후퇴한 모습이 보인다. 이는 해변 침식의 심각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시계탑과 포토존 고성군 천진해변 백사장에 설치한 시계탑과 포토존이 바닷속으로 잠길 위기에 처해있다(2025/1/8)
시계탑과 포토존고성군 천진해변 백사장에 설치한 시계탑과 포토존이 바닷속으로 잠길 위기에 처해있다(2025/1/8) ⓒ 진재중

도로변으로 후퇴한 시계탑 해안침식이 심각, 해변중앙에 설치된 시계을 해안가 가장자리로 옮겼다(2025/2/26)
도로변으로 후퇴한 시계탑해안침식이 심각, 해변중앙에 설치된 시계을 해안가 가장자리로 옮겼다(2025/2/26) ⓒ 진재중

천진해변 해안선후퇴 한 달여 전에 비해 해안선이 후퇴해 시계탑과 포토존이 백사장에서 사라졌다(2025/2/26)
천진해변 해안선후퇴한 달여 전에 비해 해안선이 후퇴해 시계탑과 포토존이 백사장에서 사라졌다(2025/2/26) ⓒ 진재중

한계 드러낸 고성군 침식 방지 사업

이들 해변의 침식 문제는 고성군이 진행해 온 침식 방지 사업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침식 방지를 위한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진행된 결과"라며, 재검토와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항만협회 강윤구 박사는 "잠제(수중방파제) 설치 전에 철저한 시공 및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면서 문제가 발생하며 지속적인 유지관리도 소홀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허동수 경상대 교수는 "잠제와 같은 대형 해안 시설물은 설계 당시의 기준과 환경 변화에 따라 지속적인 보수와 재검토가 필요하다"라며 "현 상황은 초기 설치 이후 관리 부실로 인한 결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통해 기존 시설물의 안전 점검 및 개선 작업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장기적인 해안 보호 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잠제(수중방파제) 해안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바닷속에 설치한 구조물
잠제(수중방파제)해안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바닷속에 설치한 구조물 ⓒ 진재중

반암해변 잠제(수중방파제) 해안침식방지를 위한 잠제(수중방파제) 3기가 설치되어있다
반암해변 잠제(수중방파제)해안침식방지를 위한 잠제(수중방파제) 3기가 설치되어있다 ⓒ 진재중

김용복 강원 도의원은 사업 입찰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이유로 조달청에 발주를 맡기지만, 이는 행정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해안 지형, 파도 흐름, 퇴적물 이동 등에 대한 이해는 지역 주민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조달청 주도의 입찰 방식에서는 이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고성군 담당과 관계자는 27일 오전 기자와 한 통화에서 "지역주민,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들어 해안 침식이 더 이상 심화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라고 밝혔다.

고성군 교암해변 잠제(수중방파제) 잠제(수중방파제)설치후 연안침식이 가중되고있다
고성군 교암해변 잠제(수중방파제)잠제(수중방파제)설치후 연안침식이 가중되고있다 ⓒ 진재중

#고성군#반암#교암#공현진#해안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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