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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6 10:08최종 업데이트 25.01.16 10:08

간단한 난자 채취와 동결? 알려지지 않은 것

[젠더+노동+건강 ON]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 사업 뜯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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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과 출산, 즉 '난자'가 아닌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은 '난소', '자궁'이 아니라 여성의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임신과 출산, 즉 '난자'가 아닌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은 '난소', '자궁'이 아니라 여성의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 freestocks on Unsplash

'난자 동결'은 약물로 과배란을 유도하여 난자를 여러 개 채취한 후 냉동 보관해 원하는 시기에 임신을 기획하는 가임력 보존 기술이다. 이른바 '저출생' 시대에 난자동결은 마치 '희망의 테크놀로지'인 것처럼 떠오르고 있다. 2023년 9월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사업'을 시작한 이후 전국적으로 지원사업이 확장되었고, 보건복지부도 2025년 정자·난자동결 지원 시행을 발표했다. '젊은 여성'들의 관심 또한 높아져, 지난 2024년 8월에는 성수동에 '난자 냉동 팝업 스토어'까지 등장했다*.

난자 동결 기술은 '희망의 테크놀로지'일까

그런데 '저출생 극복'을 목적으로 이 지원사업이 확대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난자동결은 출산의 시기를 '미루기 위한' 기술이며, '난자'는 곧 '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자동결이 '언젠가' 출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재 난자동결을 선택한 여성이 나중에는 출산할 만한 조건을 갖출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냉동된 난자를 확보하는 것과 출산·양육이 가능한 사회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또, 해동된 난자는 수정과 착상을 거쳐 임신기간과 건강한 출산까지 이르러야 '아기'가 된다. 이때 자연배란이 가능한 경우 동결난자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동결난자를 사용해야 할 연령이라면 임신·출산에 대한 모체의 위험도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모순점이 있다. 또한 동결난자를 이용하더라도, 여성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실제 임신 성공률이 급감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의 '몸'이지만, 정작 어떤 '저출생' 정책에서도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저출생’ 시대에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사업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기에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관심은 없다.
'저출생’ 시대에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사업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기에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관심은 없다. ⓒ 서울시 홈페이지 갈무리

무엇보다 임신과 출산, 즉 '난자'가 아닌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은 '난소', '자궁'이 아니라 여성의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그러나 난자동결이라는 담론 하에서 여성의 몸은 생애를 살아가는 실체가 아닌 '난소'가 되고, 여성의 몸과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임신과 출산은 '난자 채취'로 환원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에 발생할 수 있는 변화와 위험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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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간단하다'고 설명되는 '난자 채취'는 마취 하에 행해지는 고통스러운 시술이다. 길게는 수 개월까지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통과, 정상적으로 한 개씩 배란되는 난포를 많게는 수십 개까지 과배란시킬 목적으로 투약되는 고용량 호르몬에 의한 신체와 감정의 변화는 실제로 많은 여성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드물게' 발생된다고 고지되는 난소과다자극증후군은 심할 경우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의 중증 질환이며, 과배란에 성공할수록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냉동했던 난자를 사용해야 하는 고령 임신은 건강 위험도가 높다. 또한 대부분 착상 확률을 높이고자 여러 개의 배아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태아의 발생율도 높아지는데, 고연령 산모가 다태아 임신을 할 때 위험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의료적 인프라는 거의 소멸되고 있다. 인력난과 경영난으로 산과 병원들의 폐업이 줄을 잇고, 고위험 산모의 진료와 출산을 책임질 상급병원들마저도 산과를 축소시키는 추세다. 반면 이윤이 생기는 보조생식 의료산업은 국가 지원사업을 등에 업고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이 사회가 그토록 '아기'를 원한다면, 필연적으로 고위험 임신과 직결되는 보조생식 의료산업이 아닌, 임신과 출산이 직접 일어나는 모체의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마땅하다.

난자동결 시술 지원의 모순

그럼에도 실수요층 여성들에게 난자동결 기술과 지원사업이 '희망'으로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여성들이 갖고 있는 '비혼 출산'에 대한 기대감이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정책 수요 설문조사에서 난자동결 시술의 효과에 대해 '여성이 결혼과 무관하게 자녀를 가질지 여부를 선택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응답이 두 번째로 높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비혼 여성의 보조생식술에 의한 임신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다. '비혼 출산은 금지'인데 '비혼 난자동결은 지원'*하는 이상한 정책은, 오히려 법률혼 관계를 전제하며 '정상가족'에게 특권을 부여한다.

또 난자동결 시술 및 동결유지의 높은 비용에 비해 지원사업의 금액과 조건은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다. 그 결과 난자동결 시술과 유지는 여성들의 수요와 무관하게 '고학력 고소득' 여성만이 접근가능하게* 된다. '저출생'의 주요한 원인이 결혼·출산·육아에 수반되는 조건의 사회적 격차에 있음을 상기할 때, 재생산 기술마저도 특정 계층의 여성들에게 계급적인 특권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특정 범주의 사람들에게만 아이를 낳고 키울 권리가 강화되는 '계층화된 재생산(stratified reproduction)'의 확대다.

'저출생'의 주요한 원인이자 여성의 임신·출산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손꼽히는 것은 무엇보다 노동과 재생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는 사회구조다. 난자동결 지원사업이란 결국, "지금은 임신을 기획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력을 '우선' 제공하고, '언젠가'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조건을 스스로 갖춘 뒤에, '어쩌면' 고위험을 무릅쓰고 임신을 '시도'해 볼 수도 있도록" 일부의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재생산을 평등하게 보장하는 구조적 변화 대신, 난자동결이라는 협소한 선택지 앞에 여성을 밀어 넣고 개인적인 책임으로 떠넘기면서도 의기양양한 이 정책은 제도적 불평등과 구조적 차별 안에서 절박하게 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의 실제 현실은 가리고, 마치 충분한 '지원' 하에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

지자체를 포함한 국가와 정부의 역할은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출산의 조건'을 개인의 능력과 책임으로 준비하라는 '지원'이 아니라, '현재 출산 불가능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에 있다. 살아있는 여성의 몸과 삶의 조건을 묵살한 채 '난자'로 환원시키는 전시적인 행정에 앞서 필요한 것은 '왜 난자동결이 필요한지*', '왜 출산을 할 수 없는 사회인지', '구조적 난임(structural infertility)'을 만들어내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는 것이다.

*한국여성학회(2024 추계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김선혜(2024), "재생산 시간성과 가임력 보존기술: 서울시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사업을 중심으로"'에서 주요한 문제제기를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박슬기 님은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센터장, 산부인과 전문의입니다.


#난자동결#난임치료#저출생#재생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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