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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이국땅에 우리 농작물 씨앗을 뿌려서 수확하고 그것을 수출하는 농업에 대한 발상을 누군가는 해봤을까? 우리나라의 문화 산업이 K-라는 접두어를 달고 세계로 뻗어가는 동안 농업은 마냥 뒷줄에만 있는 줄 알았다.

지난 연말 2024년 지방 외교 우수 사례 공모전에서 '해외농업'으로 충남 부여군이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부여군수와 관련 공무원들이 뉴스에 나오는 동안 여전히 우즈베키스탄의 광활한 들판을 헤매고 있는 한 농부가 있었다.

알아보니 그는 농업과 정책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직군들이나 할 것 같은 발상에 먼저 도전한 농부였다. 부여에서 추황 대추 재배로 잔뼈가 굵은 이호인(65세) 농부는 우즈베키스탄의 기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농토가 비옥해서 농사짓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약 2년 전, 그는 즉시 우즈베키스탄 나망간주로 날아갔단다. 중앙아시아의 한복판 우즈베키스탄의 들판은 서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광활했고 말을 달려 먼저 깃발을 꽂아야 할 땅처럼 보였다.

현지에서 처음 추천해준 곳은 너무 건조한 기후라서 맞지 않았지만 나린강가의 비옥한 토양은 벼농사를 짓기에 알맞은 환경이었다. 그곳의 토양 샘플을 가져와서 수도작 벼재배에 좋은 조건인지 검사부터 전문 기관에 의뢰했단다.

부여군 농업기술센타의 토양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그는 부여군수를 찾아가 농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와 해외농업 경쟁력을 선점하기에 좋은 기회임을 강력하게 역설해 부여군의 해외농업 투자에 대한 물꼬를 텄다.

이호인 농부와 나망간주 지사의 헙무 협약식 이호인 농부는 이 협약식을 통해 부여군의 해외농업에 물꼬를 트게 했다.
이호인 농부와 나망간주 지사의 헙무 협약식이호인 농부는 이 협약식을 통해 부여군의 해외농업에 물꼬를 트게 했다. ⓒ 이호인

박정현 부여군수는 다소 엉뚱하지만 일리가 있는 이호인 농부의 발상을 그냥 흘려듣지는 않았다. 부여군 농업 정책에 새로운 활로가 필요한 상황이라 관련 공무원들과 코피아(KOPIA 한국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한 결과 업무협약을 맺기로 했다.

이호인 농부의 '우즈베키스탄에 벼농사 짓기'라는 돈키호테식 프로젝트는 부여군과 나망간주의 업무협약으로 행정력과 기술력 지원에 힘을 얻었으나 갈 길이 구만리였다.

"거기는 그냥 맨 땅이어유. 제가 워낙 맨땅에 헤딩하는디 단련된 몸이라 시작했지, 아무나 못허는 일이쥬."

나망간주 투스크군의 땅은 경지 정리라고는 해본 적 없는 생긴 모양 그대로의 땅이었다. 기계 농업과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로 바꾸는 평탄 작업부터 선행되어야 했다. 현지에서 지원해준 포크레인으로 경지 정리하는 과정은 수도작 농사 경험이 없는 포크레인 기사와 의사소통이 어려워 일의 진척이 느렸다.

우리나라 사람의 빨리빨리 근성이 거기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미세해서 죽처럼 늘어지는 토질도 수도작으로 농사짓기 알맞은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11 Ha(헥타르, 약 3만 3천여 평)의 논을 우즈베키스탄의 나망간주 나린강 가에 만들어 놓았다. 논을 만드는 동안 우리나라 볍씨를 사용해 싹을 틔웠으나 경지 정리하느라 시기를 놓쳐 실패하고 현지 볍씨로 못자리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우즈벡에는 물을 가둬 모를 심고 가꾸는 수도작 농사가 없었으니께 '논'이라는 단어조차 없었슈. 내가 우리 말 그대로 '논'이라고 하니께 현지인들도 '논'이라고 하대유. 우즈벡에 한국식 논을 만들고 처음으로 논농사를 지은 셈이쥬."

우즈벡에 논농사 짓기 프로젝트의 첫 관문은 통과했지만 수확까지 현지에서 논을 관리하고 벼를 재배할 인력과 농기계가 문제였다.

수도작 벼농사가 발달하지 않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볍씨 파종기 같은 편리한 농기계가 있을 리 없었다. 모판을 만들고 이앙기로 심고 수확하기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기계로 일사천리로 진행될 일이 한없이 늘어지기만 했다고.

시간 개념이 없어서 약속도 잘 지키지 않는 현지인들은 책임감과 응용력도 부족해 시키는 일만 했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근면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근성을 그곳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가 없었다. 다만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성정만큼은 정이 갔다.

이호인 농부는 궁리 끝에 한국에서 몇 년 동안 벼농사를 짓는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언어 소통이 가능한 우즈베키스탄 인력을 수배했다. 그를 현지 관리인으로 높은 임금을 주고 고용했다. 벼를 수확할 때까지 관리인을 도와줄 인력들도 확보해 놓고 그들을 우리나라로 초청했다.

우즈벡에서 벼농사 짓기 프로젝트 성공시키기 위해 관계자들을 우라나라에 초청했다. 이호인 농부는 우즈벡 사람들을 우리나라로 초청해 견학과 관광 등으로 우의를 다졌다.
우즈벡에서 벼농사 짓기 프로젝트 성공시키기 위해 관계자들을 우라나라에 초청했다.이호인 농부는 우즈벡 사람들을 우리나라로 초청해 견학과 관광 등으로 우의를 다졌다. ⓒ 이호인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선진 농업기술을 보여주고 함께 밥을 먹고 관광지도 안내하며 우의를 다졌다. 그들에게 농사를 맡기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부터 싹터야 했다.

그러는 사이 부여군청에서는 농업 행정직 공무원과 농업기술센터의 농업기술 지도사를 현지로 파견해 본격적인 해외농업의 서막을 열 계획을 세웠다.

우즈베키스탄 나망간주는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한 지역이라 파리와 모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병충해가 없어서 저절로 친환경 농업이 되는 곳이었다. 기계 농업 환경이 갖춰지면 인건비와 방제약 비용 절감은 확실했다. 쌀값은 비쌌고, 생산비는 우리나라보다 저비용이었다.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밀과 목화 재배가 발달해 수도작 벼농사는 거의 하지 않았다. 주식도 밀이었다. 이슬람교가 대부분이라 돼지고기는 금기였고 양고기를 주로 먹었다. 낮에는 태양빛이 강하고 저녁이면 서늘해서 과일은 당도가 높았고 병충해가 없어서 K-농업의 전진 기지로 활용할 여건이 충분했다.

"볍씨를 그냥 뿌리면 수확량이 적어유. 미리 어린 모를 키워서 물에 심는 이앙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쥬. 우즈벡은 기후가 건조해서 직파 농업만 발달한거쥬."

우즈벡의 건조한 땅을 기름진 논으로 만들어 벼농사를 짓게 되면 식량난이 해결될 뿐만 아니라 관련 농업 기계와 기술까지 수출하는 전진 기지를 부여군이 선점하고 확보하게 되는 것이었다. 벼농사가 계기가 되어 부여군의 문화와 생활이 줄줄이 나망간주부터 퍼져나가는 효과가 발생했다.

"사실 민관 협력 사례는 성공하기 어려워유. 민간이 잘하던 사업도 공무원이 개입하면 망하는 사례가 많아유. 공직 사회는 관료적이고 보수적이다 보니 너무 안전 위주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잖유."

우즈베키스탄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온 부여군청 굿뜨래 농업정책과 이영성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즈벡 나린강가에 조성한 논에서 현지 관리인 무하마드가 찍어서 보내 준 사진 지난 가을 부여군의 기술력으로 우즈벡에 조성한 논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수확한 벼들은 현지 종자원에서 전량 수매했다.
우즈벡 나린강가에 조성한 논에서 현지 관리인 무하마드가 찍어서 보내 준 사진지난 가을 부여군의 기술력으로 우즈벡에 조성한 논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수확한 벼들은 현지 종자원에서 전량 수매했다. ⓒ 무하마드

부여에서 트랙터와 이앙기 등의 농기계를 구해서 무작정 배에 싣고 가져가는 이호인 농부의 무모한 열정이 아니었다면 부여군의 해외농업 성공은 꿈도 꿀 수 없었다는 뜻이다.

"해외농업에 대한 개념은커녕 데이터나 메뉴얼도 없잖유. 전국 지자체 최초로 우리가 도전하는 거라서 성공에 대한 부담도 컸슈."

이영성 팀장은 나망간주에서 파견 근무를 하던 26일 동안 새벽잠을 포기하고 논농사에 매달렸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현지 인력들이 나오기 전에 서류 작업과 그날 할 일을 분배해 놓고 항상 혹시 모를 변수에 대처하고 인력이 부족하면 그가 직접 뛰어들 각오를 해야 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파견 근무가 확정되면서 전국 최초 지자체 성공 사례라는 성과를 내기로 결심했다.

"제가 우즈베키스탄 뉴스에서 여러 번 나온 몸이유.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못 나왔어유."

현지인들은 염두에 두지도 않던 벼농사를 한국인들이 직접 짓고 있다는 소식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우즈벡 국영 방송에 '우즈벡 최초로 현재 기술로 벼 기계 이앙 성공'이라는 주제로 국영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드디어 나망간주의 들판에서 4개월 동안 한국의 기술력으로 자라는 벼가 놀놀하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병충해가 없어서 깨끗하게 익어가는 벼들은 우리나라보다 높은 1Ha/60가마의 수확량을 내주었다.

현지의 불편한 여건을 극복한 첫 농사치고는 성공적인 수확량이었다. 나망간주에서도 처음 시도한 벼농사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전량 현지 <종자원>에서 내년도 씨 나락으로 수매를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 쌀을 수출하는 편이 훨씬 쉽쥬, 하지만 미래 농업은 우리 기술력을 현지화해서 직접 세계 여러 나라들까지 수출하는 것이 더 경쟁력이 있쟎유. 그게 K- 농업 아니겠슈?"

이호인 농부의 무조건 시작하고, 풍차한테 덤비는 돈키호테식 기상이 우즈벡에 논을 만들고 '논'이라는 용어까지 심어 놓게 되었다.

지방자치란 관료적인 공직 사회에서 놓치기 쉬운 발상의 전환과 우수 사례를 민간에서 챙기고 민간이 부족한 기획력과 행정력을 상호보완하며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부여군의 해외농업 성공은 이런 지방 자치를 잘 이해한 결과이다.

부여군에서 추황 대추 작목반 회장인 이호인 농부의 해외농업에 관한 발상과 박정현 부여 군수의 추진력, 군 행정력의 삼박자가 제대로 작동해 우즈벡에 벼농사 짓기 프로젝트는 만 2년 만에 성공을 거뒀다.

지방외교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부여군 민간인이 우즈베키스탄에 벼농사 짓기 프로젝트 라는 돈키호테식 발상으로 시작한 일이 부여군의 지방외교 우수사례로 이끌었다.
지방외교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부여군민간인이 우즈베키스탄에 벼농사 짓기 프로젝트 라는 돈키호테식 발상으로 시작한 일이 부여군의 지방외교 우수사례로 이끌었다. ⓒ 부여군청

그 결과 2024년 지방 외교 우수 사례 공모전에서 부여군이 추진한 해외농업 사례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농업기술을 기반으로 한 외교 성과로 소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여군은 농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와 미래 농업에 대한 가능성을 우즈베키스탄에서 다른 지자체보다 선점했다. K-농업과 함께 'K-부여 굿뜨래' 과학 농업의 깃발을 우즈베키스탄에 최초로 꽂았다고 할 수 있다.









#부여군#해외농업#우즈베키스탄에벼농사짓기#K농업#K부여굿뜨래과학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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