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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고령화와 충분치 않은 노후대비는 노후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55년생, 은퇴 후 전업 살림을 하는 남편으로서의 제 삶이 다른 퇴직자와 은퇴자들에게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속초해변에서
속초해변에서 ⓒ 이혁진

급격한 고령화와 충분치 않은 노후대비가 노후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나의 은퇴 후 전업주부 남편의 삶이 다른 퇴직자와 은퇴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됐으면 싶다. 이를테면, 초고령사회를 맞아 은퇴 이후 노후생활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요즘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경제상황이 최악이다. 신문기사를 보면 지난해부터 기업마다 생존전략 차원에서 희망퇴직 등으로 직원을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퇴직자들은 무거운 현실을 인정하고 아픔을 서둘러 극복하는 의지가 새삼 중요하다. 재취업과 새로운 인생도 모색해야 한다. 갑자기 직장을 잃은 퇴직자 대부분이 은퇴와 노후에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젊어서 은퇴를 준비하라는 말을 듣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 또한 비교적 젊은 나이인 50세에 퇴직(출)해 10여 년을 계약직으로 전전하다 3년 전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암에 걸려 더 이상 일과를 어려운 수행하기 힘든 것도 은퇴를 앞당겼다. 이제는 독서와 글쓰기로 소일하고 있다(관련 기사: 암투병 중 기사쓰기, '살아갈 용기'입니다 https://omn.kr/27b4d ).

지금도 치료차 한 달에 4번 정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암환자의 일상이다. 수술 이후 항암제와 CT검사 등 통원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통상 '5년 생존율'에서 3년이 지났다. 앞으로 2년 더 이상의 재발과 전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어찌 보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두 번의 암투병을 거치면서 뭐 하나 내세울 커리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투병을 통해, 생명은 한없이 연악해 보여도 어떤 면에선 강한 불가사의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구조조정 퇴직자들이 양산되는 가운데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의 은퇴도 본격화됐다. 이들 상당수도 노후대비가 부족하다. 급격한 고령화와 충분치 않은 노후대비는 노후생활을 어렵게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다른 사례들을 보면, 지금이라도 노후설계를 제대로 준비한다면 결코 늦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관련 기사: 노후 대비 취미로 시작한 모임, 이 정도로 대박일 줄이야 https://omn.kr/28izp ).

설거지와 청소는 내 몫, 배우는 게 많은 은퇴 이후

퇴직자와 은퇴자들에게 더 이상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있어 감히 나의 은퇴 후 전업주부 남편의 삶이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기사는 인생은 다모작이며 은퇴 이후 삶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나는 20여 년 전 위암으로, 3년 전부터는 두경부암으로 투병하고 있다. 이후 항암치료와 생존이 시급하지만, 살아있는 한 주어진 삶을 뜻 깊고 의미 있게 보내는 걸 노후 목표로 정했다.

우선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내가 하는 일을 돕거나 주방일을 배우면서 가족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런 일상이 벌써 2년을 넘었다. 이제 하루 한두 끼는 남편인 내가 직접 요리한다. 설거지와 집안 청소, 쓰레기 분리배출 또한 내 몫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신기하다. 알면 알수록 궁금한 게 많다. 집안일은 아내말대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듯 보인다. 어떨 때는 열심히 했는데도 표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내는 이러한 일을 평생 해왔으니, 그동안 얼마나 고단 했겠는가. 이를 보며 나는 과거 직장 다닐 때 집안일과 가사노동에 무심했던 걸 반성하고 있다.

 내가 설거지한 그릇장
내가 설거지한 그릇장 ⓒ 이혁진

이뿐만 아니다. 아내는 암투병하던 시절의 나까지 책임졌다. 무능한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끝까지 옆을 지켜주었다.

수술 이후 항암제를 처방하는 종양내과 의사는 갈 때마다 보호자인 아내야말로 최고의 항암제라고 칭찬한다. 내가 지금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버티는 것은 순전히 아내 덕이라 할 수 있다.

아내는 지금도 집안 살림을 관장하고 가족 구성원을 보살핀다. 이제는 내가 그 책임을 일부 인수받고 아내의 짐을 조금 덜어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다. 아내와 역할을 바꾸는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내 또한 나를 도와주고 격려하는 '살림멘토'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아내가 살림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는 것이다. 가끔 살림하는 요령이 생겼다고 아내와 의견충돌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과거보다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

달라진 일상... 아침에 일어나 뭔가를 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감사한가

 얼마 전 아내와 함께 김밥을 만들었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김밥을 만들었다. ⓒ 이혁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하루의 일상과 루틴도 달라졌다.

수술하기 전엔 주로 바깥활동에만 치중하던 삶에서, 이제는 독서와 운동으로 건강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게만 신경 써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이러면서 아내와의 대화가 더 많아졌고, 그만큼 행복한 노후생활도 기대하고 있다.

은퇴 이후 삶은 예상보다 힘들고 무료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노후세계를 탐험하듯 배우는 것도 많다. '평생 배움의 묘미'를 터득하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아침에 일어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절절히 깨달았다는 점이다.

앞으로 은퇴 이후 살아가는 모습을 졸필이지만 당분간 연재할 계획이다. 이 글은 퇴직을 대비하거나 은퇴한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거나 방황할 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제목도 '은퇴 후 살림하는 남자'(은살남)으로 정했다. 여기에는 집안 살림만 국한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과 행복도 소개할 것이다. 우리 삶은 먹고사는 것 이상의 다양한 서사를 담고 있다.

앞으로의 기사에는 늘 좋은 이야기만 있을 수 없다. 뻔한 일상에 대한 개인적 시각이 때론 유치할 수 있다. 시행착오의 경험담도 있을 것이다.

일례로 냉장고 내부를 청소한답시고 보관 중인 음식재료를 멋대로 파헤치거나 버리면 결코 칭찬받을 수 없다. 냉장고 내부에도 나름의 질서와 습관이 있다고 해야 할까. '살림멘토' 선배인 아내가 구축해 온 전통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오히려 시행착오와 실수에서 살림의 지혜와 타협을 배운 것이 많다.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금은 환자가 아니라 활기찬 사람으로 대접받는 기분이다. 어느새 우리 집에는 과거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하루하루 치유하는 힘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노후대비#은살남#베이비부머#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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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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