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 회의에서 연설 중인 김구 선생. 당시 한반도의 분단을 막고자 했던 중요한 시도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 백범김구기념관
1948년 새해가 밝으면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같은 시기에 하지 장군은 남한만의 총선거에 대비해서 단계적인 조치를 취함과 아울러 공산당의 파괴적 활동에 강경하게 대처하였다. 이승만은 하지의 이러한 행동을 적극 지지하면서 그동안의 비판적 언행을 접고, 하지의 단정 수립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김구는 1월 26일 유엔 위원단의 초청을 받아 이들과 현안을 논의하고 나서, "미소 양군이 철수하지 않고 있는 현재 상태로서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가질 수 없으므로 양군이 철퇴한 후 남북 요인회담을 통하여 총선거를 준비 한 후 선거를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유엔 위원단에 서면으로 제출하였다.
김구의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에 보내는 의견서'는 자신의 통일정부수립에 관한 내용 등을 6개항으로 정의한 것이다. 요약하면 ①전국을 통한 총선거로 통일된 완전 자주정부의 수립 ②총선거는 인민의 절대자유 의사에 의해 실현 ③북한에서 소련이 입경을 거절한다는 구실로 유엔이 임무를 태만이 하지 말것 ④북한에서 연금된 조만식 선생 등 남북한의 일체의 정치범 석방 ⑤미소 양군의 즉시 철퇴와 일시 진공상태의 치안은 유엔에서 부담할 것 ⑥남북 한인 지도자회의 소집 등이다.
한국 문제는 한인이 해결해야 한다면서 소련군 뿐만 아니라 미군도 철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미국의 영향력에 힘입어 단정노선을 추구하고 있던 세력들에게 좋은 빌미가 되었다.
김구는 일제에 협력하였던 사람들까지 나서서 자신을 향해 '크레믈린의 신자', '소련의 적화노선을 지지하는 자'라는 등의 욕설과 비난에도 개의치 않으면서 유엔 위원단의 메논 의장에게 남북요인회담 개최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바라는 서한을 보내는 한편, 주한 중국대사 유어만(劉馭萬)을 통해 이승만, 김규식과 회담을 주선하여 줄 것을 요구하여 3인 회담을 가졌으나 합일점을 찾지 못하였다. 이승만의 단정노선을 바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세는 단독정부 수립쪽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조국분단의 가능성과 무력충돌의 위기를 안고 있는 단독정부의 수립을 한사코 막아보려던 김구는 통일조국 수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신념으로 2월 10일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글은 해방 후의 심경과 특히 통일정부수립에 관한 집념 그리고 나라 사랑의 의지가 배인 대문장이다. 몇 부분을 발췌한다.
삼천만 동포에 읍고함
우리가 기다리던 해방은 우리 국토를 양분하였으며 앞으로는 그것을 영원히 양국의 영토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의 해방이란 사전 상에 새 해석을 올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미군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몰각한 도배들은 국가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음으로 양으로 유언비어를 조출하여서 단선단정의 노선으로 민중을 선동하여 유엔위원단을 미혹하게 하기에 전심력을 경주하고 있다.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니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조국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에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이와 같은 위기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최고 유일의 이념을 재검토하여 국내외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에 있어서도 전쟁이 폭발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는 '파시스트' 강도 일본뿐일 것이다. 그것은 그놈들이 전쟁만 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내가 불초하나 일생을 독립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칠십유삼(七十有三)인 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금일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재화를 탐내며 명예를 탐낼 것이랴! 더구나 외국 군정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랴! 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지하는 것도 한독당을 주지하는 것도 일체가 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국가민족의 이익을 위하여는 일신이나 일당의 이익에 구애되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전민족의 단결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삼천만 동포와 공동분투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는 누가 나를 모욕하였다 하여 염두에 두지 아니할 것이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삼천만 동포와 손목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 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삼팔선을 싸고도는 원귀(寃鬼)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러운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 (주석 1)
주석
1> 김삼웅, <백범 김구평전>, 521~523쪽, 시대의 창, 2004.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8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