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영씨는 자신이 겪은 힘든 일들을 털어놓았다. 사건 이후 줄곧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복무기관과 대전충남지방병무청은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 ⓒ 김선재
이민영(24세, 가명)씨는 지난해 9월부터 대전의 한 병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원의 안내데스크에서 사람들을 안내하거나 휠체어 정리, 주차 관리 등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어르신들을 안내해 드리거나, 휠체어가 도난당하지 않도록 장부를 쓰고 관리하는 것. 그리고 주차관리를 했어요. 병원 입구 로터리에 누군가 무단으로 주차하지 않도록 지켰습니다."
민영씨는 평소 어르신을 잘 대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를 좋아했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60대 A반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괜찮았다.
병원 안내데스크에서는 3명이 함께 근무했다. 경비원 1명, 선임 사회복무요원 1명 그리고 민영씨. 경비원은 3명이 요일을 돌아가며 근무했는데, 민영씨는 경비원인 A반장과 만나는 날이 끔찍하게 싫었다. 그의 근무표를 확인해서 휴대전화에 저장해둘 정도였다고 한다.
"머리·등 때리고 엉덩이를"... 강제추행 사실 털어놨지만 돌아온 것은
"평소에 제가 이야기를 잘 받아줬다고 만날 머리와 등을 때리고 엉덩이를 만졌습니다. 엉덩이를 걷어차여 꼬리뼈가 엄청 아팠던 적도 있습니다. A반장은 우리에게 '너네 빨리 가려고 하면 담당자에게 이르겠다'며 '나한테 잘 보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사람과 근무가 함께 있을 때마다 폭력이 이어졌습니다.
A반장은 저에게 말을 걸면서 뒤통수를 때리고 시작했고, 허벅지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강제추행도 하더라고요. 제가 '뭐하시는 거냐'고 말을 했는데도 그냥 낄낄거리고 웃기만 했습니다. 제가 거듭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냥 하더라고요.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잘못 살았나 싶기도 했고, 다른 어르신들과 교감하면 이러지 않았는데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경비일은 주·야·비 교대로 돌아갔다. 민영씨는 최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A반장과 마주해야 했다. 9월에 시작된 폭력은 민영씨가 근무 부서를 옮긴 11월까지 이어졌다. 민영씨는 A반장의 부당함에 대해 알리고 싶었지만 '사소한 일까지 고자질하는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참았다고.
병역법 제31조의2,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 제3조에 의거해서 복무기관의 장은 사회복무요원을 지휘 감독하는 '담당직원'을 지정하게 돼 있다. '담당직원'은 사회복무요원의 직무 수행을 점검하고 신상 관리에 필요한 사무를 처리한다.
민영씨가 자신이 겪은 폭력과 강제추행 사실을 '담당직원'에 털어놓은 것은 지난해 12월 초가 돼서였다. 근무 부서는 달라졌지만 병원입구에서 A반장과 수시로 마주쳤고, 자신이 피해 사실을 알렸을 때 보복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있었다. 한 달여간의 고민 끝에 '담당직원'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상담을 했는데 'A반장이 다른 반장님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고 근무를 잘한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A반장을 감싸는 느낌이어서 이해가 안 됐어요. 저는 분명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담당 직원은 뜬금없이 A반장 이야기를 하니까 저에게는 쉬쉬하고 넘어가자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제 고소하고 싶으면 해라. A반장을 고소하는 것은 네 권리지,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담당직원이 저에게 말했던 것 중 하나가 '그 피해당한 책임이 네게도 있다'는 거예요. A반장과 이야기를 할 때 제가 리액션을 해주니까 그 사람이 때린 것 아니냐는 말이었어요."
민영씨는 절차를 통해 보호와 조치 받기를 원했지만 돌아온 답은 사인 간에 법적인 다툼으로 해결하라는 것. 결국 민영씨는 A반장을 폭행 및 강제추행 건으로 고소를 진행했고, 현재 사건은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민영씨의 사건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 김선재
복무기관-병무청, 별 다른 조치 취하지 않아
근무지에서 공익근무 중에 발생한 일이지만 복무기관과 병무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복무기관은 만약 휴가가 필요하다면 민영씨가 가지고 있는 연가에서 쓰라고 했다. 민영씨는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근무지를 옮기는 '재지정'을 요구했지만 병무청은 공식 답변을 통해 "본 사건은 복무기관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는 답을 내놨다.
이유는 A반장의 소속 때문이었다. A반장 등 경비원 총 6명은 원래 병원 소속의 직원이었다. 하지만 2023년부터 이들은 순차적으로 용역회사 소속으로 신분이 변경됐고, 2024년 6월에는 전원 용역회사와 고용관계를 맺게 됐다.
병역법 제31조의5(복무기관 내 괴롭힘의 금지)는 '복무기관의 장 또는 소속 직원'이 사회복무요원에게 저지르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전충남지방병무청은 해당 사건이 '복무기관 소속 직원'에 의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용역업체 직원'과의 문제였기 때문에 괴롭힘 사건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재지정이 안 된다고 하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요. 재지정이 안 되는 사유도 없지만, 되는 사유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대전충남지방병무청은 국민신문고 답변을 통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 김선재
사건 이후 민영씨에게는 불면증이 생겼다. 증상은 두 달째 이어지고 있고 "화가 나면 머릿속이 뜨거워지면서 커피 두 잔을 마신 것 같은 각성 상태가 이어진다"고 했다. 새벽 3시에도 구토가 이어질 정도다. 민영씨는 수시로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되는 상태로 현재 정신의학과에 통원 치료 중이다.
민영씨는 지금도 출근이 두려운 상태다. 사건 이후 A반장은 해고됐지만 병원에는 이미 소문이 퍼졌다. 민영씨를 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고 했다. A반장이 나쁜 마음을 먹고 해코지를 하러 오지는 않을지 두려움도 많다고 한다. 복무기관도 병무청도 민영씨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사과를 전하지 않았다.

▲대전충남지방병무청에 질의한 답변 내용 ⓒ 김선재
공식 질의 후에야 병무청 "복무기관 재지정할 수 있음" 입장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 제35조 9항 5호는 '질병 또는 심신장애 등으로 복무가 불가능하다고 지방병무청장이 판단한 임무'는 복무기관을 재지정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민영씨는 해당 조항을 근거로 병무청에 계속해서 재지정 조치를 요구 중이다.
대전충남지방병무청은 이 사안과 관련한 공식 질의에 지난 14일 "심신장애 발생 또는 악화로 인해 복무하고 있는 복무기관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복무기관을 재지정할 수 있음"을 알려왔다. 또한 민영씨에 대한 재지정을 추진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군복무의 일환으로 사회복무를 시작한 민영씨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국가기관도 복무기관도 사인 간의 갈등으로 취급하며 민영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민영씨는 병무청이 밝힌대로 '복무기관 재지정'이 속히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복무기관 재지정이 되지 않는 한 민영씨는 오늘 밤도 쉽게 잠들지 못할 것이며, 내일이면 또다시 끔찍한 기억이 있는 직장으로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