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산업과 "그린보트"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나서 흔히 접한 반응이 있다. "그런다고 과연 크루즈 산업이란 거대한 물결을 막을 수 있겠냐?" "어쩔 수 없는 흐름 아니냐?" 물론, 엄청난 돈이 걸린 비즈니스 하나를 완전히 차단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최소한 환경, 생태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크루즈 여행을 거부하도록, 즉 "기후위기를 염려하는 건전한 시민"이라면 크루즈 같은 건 사절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려고 최대한 애쓸 수는 있다. 기후 이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일부 부유층만 타는 작은 "니치 마켓"으로 고립시키고 방어해 낼 수만 있어도 천만다행이리라. 그렇게만 해도 커다란 환경 부담을 더는 일이 될 테니까.
그런 면에서 "그린보트"는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고, 안타깝게도 환경재단은 중단할 의사가 없다. 상식과 책임감이 있는 시민단체라면, 공개적 비판이 일어나기 전에 해결했어야 했다. 그런데 비판이 나오고 나서도, 즉 수십 개의 동료 시민단체와 1천 명 이상의 시민들이 항의 서명 운동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강행하고 있다. 이미 정해진 1월 항해는 어쩔 수 없이 취소를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중단하겠다는 그 어떤 발언도 없었다. 12월에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내부 평가를 하겠다"는 정도의 의사가 전부였고, 환경재단 대표에게 우려를 직접 전달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의 만남(12월)에서도, 일단 "지속한다"는 메시지로 일관했다.
오히려 재단과 크루즈 옹호론자들은 SNS 채널을 통해 "환경재단은 환경단체가 아니"라거나, "환경운동은 안 한다"고 부인하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그린리더를 육성하여 글로벌 환경운동을 주도하고자 환경을 주제로 한 세계 유일의 크루즈 여행 그린보트"라고 만천하에 천명하고 있는데도(1화 사진 참조), 뻔뻔한 자기부정을 하고 있다. 자꾸 환경단체가 아니라니, 그렇게 원한다면 "환경기관"이라고 불러줄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비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환경을 내세우는 영리기업조차 표방한 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 세상이다. 중요한 건 뒷글자가 아니라 "환경", "그린"이란 앞 글자다. "환경"은, "인권", "동물권", "노동", "평화" "(성)소수자" 처럼 영리가 아닌 가치를 지향할 때 쓰는 말이다. 내건 가치에 준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고, 더구나 공익재단인 환경재단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물론, 가치를 지향하는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운동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한다. 그 선을 환경재단은 수차례 넘은 "흑역사"가 있다. 여러 시민, 언론, 단체들이 "그린 워싱"에 대해 지적했을 때도, 재단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안일한 태도, 변화 없이 넘어가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기사 참조).
환경재단과 크루즈 산업 둘 다 요지부동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너무도 단순하다. 우리는, 즉 이번 사태에 목소리를 모은 많은 시민들은, 바다를 아끼고, 지키고 싶고, 기후/생태 위기를 정말로 진지하게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린보트" 같은 그린워싱 행위나, 크루즈 산업의 확대가 결국 바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세히 알게 된다면, 혹은 부산항이나 제주항처럼 크루즈가 입항하는 곳에 살면서, 크루즈가 공기와 물을 어떻게 망치는지 알게 된다면 (한철환의 2019 연구에 의하면, 2018년 부산항 크루즈선에서 발생한 고형쓰레기 총배출량은 353,100kg(353톤)에, 발생 총오수량은 최소 12,359kl에서 최대 30,014kl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크루즈산업 초기 단계인데도 이 정도이다. 바르셀로나, 마르세유 항처럼 크루즈가 많아지면 어떨지 상상해보라!), 정작 크루즈사업의 이득은 소수 기득권 자본가와 부유층만 챙기는 것을 알게 된다면, 또 크루즈 산업이 수십년간 대기, 바다 곳곳에 끼친 해악들을 헤아린다면, 이 사태의 본질이 이해되고 우리의 분노에 공감할 것이다.
"그린보트"를 너머 크루즈 반대 운동으로
나의
<한겨레 21> 기고글이 실린 후, "그린보트" 옹호자 한 분은 크루즈 문제에 대한 "전문가 공개 논의"를 하자고 (비공식적으로) 제안을 했다. 토론 자체는 당연히 좋지만, 크루즈의 반환경성은 이미 상식이다. 또 제안자의 말처럼 "크루즈 분야의 누구, 교통분야 에너지 분야의 누구를 모시고 간단히 점검하면 이슈 대부분은 정리될" 문제는 전혀 아니다.
커다란 이해관계가 걸린 캠페인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전문가 논의라는 게 간단치 않다. 그렇게 쉬웠다면, 원전, 핵폐기수 등 모든 이슈들이 패널토론으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나도 국회든 어디든 토론을 조직해본 적도 있고, 토론자로도 여러 번 참가했지만, 누가 전문가인지, 또 전문가 중에 누가 전문성이 가장 높고 독립성이 있는지에 대한 합의를 보기 매우 힘들뿐더러, 어떤 판을 짜고, 누굴 부르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교통"전문가냐, "관광"전문가냐, 크루즈 업계 대표냐, 크루즈의 환경 문제 자체를 연구한 연구자냐, 그걸 전문으로 다루는 NGO냐... 간단치 않은 문제다. 특히 이렇게 정부/산업계의 금전적 이익이 걸린 경우, 선박 업계나 관광 업계를 두둔할 교수, 박사는 상대적으로 섭외가 쉽지만 (벌써 몇 명 떠오른다), 거기서 자유로운 환경이나 기후 쪽 전문가를 구하기가 항상 가장 힘들다.
국내는 거의 불모지지만, 연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크루즈선 환경오염 저감방안에 관한 탐색적 연구" (한철환 2019)가 "세계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크루즈선박에 의한 환경오염을 다룬 국내 최초 연구"라고 하고 있는데, 사실 다른 분야에서 연구가 있긴 있었다. 가령, "크루즈선기인 오염물질 규제에 관한 국제법 검토와 우리나라 법제 개선방안" (두현욱 2012)이 있다. 그 외에는 "크루즈 선사 기업의 ESG 경영과 당면 과제" (윤여현 2023) 정도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태부족이다. 이 연구자들이 지속적인 연구를 하는지, 또 업계/정부정책과 얼마나 독립적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또, 크루즈와 환경 영향 관련해 단순히 논문 한두 편 쓴 것 이상으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가 있었다면, 애초에 나같은 일개 시민이 이런 걸 안 써도 됐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전문가 의견이 이미 수두룩하게 나와 있다는 사실이다. 크루즈선들은 한국 배가 아니라 주로 북미/유럽선이고, "그린보트"도 이탈리아 Costa cruise소속이다. 그러니 북미/유럽 쪽 자료들이 이 사안에 고스란히 통한다. 그쪽은 크루즈 산업 역사가 비교적 길고, 2000년 초부터 환경 문제가 제기되어, 영국 가디언 지 같은 경우는 지속적으로 관련 기사를 내고 있다.
한마디로,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크루즈가 굉장히 심각한 기후/생태 문제 투성이라는 사실 자체는 결론이 난 상태라고 본다. 특히 업계 쪽이 아닌, 환경을 염려하는 북미/유럽 쪽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한가지 예로, 국내 환경 단체 "환경운동연합"도 속해 있는 지구의벗(FOE)이 매년 발행하는 크루즈평가에서 "그린보트"선의 "환경 점수"를 연속 "F학점"으로 매겼다.) 문제는 앞으로인데, 당연히 크루즈 산업은 (모든 산업들이 그렇듯) "기술로 다 해결된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글쎄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비영리 민간 NGO쪽 보다, 철저히 이윤만 추구하는, 거대자본에 기반한, 이해관계가 철저히 얽혀 있는, 바다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다 적발되는 등 수해 동안 "더러운 짓"을 해온 것으로 이름난, 크루즈 업계 쪽을 더 의심하는 편이다. (
기사 참조) 크루즈 산업이 이러한 신뢰받기 힘든 전력은, 기사를 조금만 검색해봐도 쉽게 알 수 있고, 사실 선박 분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전문가에게 한마디 듣고 싶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누구보다도 바다와 배를 잘 아는, 베테랑 선장 출신 프랑스인 기욤 피카르(Guillaume Picard. 65세)이다. 그는 지금 프랑스의 크루즈 반대 시민단체인 <스톱 크루즈>의 대표를 맡고 있다(
기사 참조).
아래 사진은 그들이 벌이는 크루즈 반대 운동 장면이다. 우리도 이런 운동이 필요한데, 저런 걸 해보기도 전에 국내 최대 환경기관과 국내 대표 환경 인사들이 20년간 크루즈를 홍보하고 정당화해 주며 길목을 막고 있는 것이다.
"논의를 하자"는 것이, 정부나 업계가 흔히 하듯 시간을 끌 의도라면, 사양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행동이다. "그린보트" 중단이라는 결단과 행동말이다.

▲2024년 10월 7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부두에 LNG 추진 크루즈선 '실버 노바'(Silver Nova·5만4000t급)가 정박하고 있다. 실버 노바는 길이 244m, 너비 30m, 층수 11층, 승객수 728명, 승무원 수 556명이며 LNG 추진 크루즈선이 국내에 입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연합뉴스
기후위기 시대에 불필요한 공항 신축과 각종 토건사업을 하려는 정부 및 지자체를 막으려고 기후운동이 얼마나 어렵게 싸우고 있는가?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환경운동에 역주행하는 "그린보트"의 환경적 "기여"가 있다면, 막거나 최소화해도 모자랄 이 괴물같은 산업의 정상화, 보편화, 번창을 돕는 것, 즉 마이너스(-) 기여 뿐이다.
5년 전,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다보스 포럼에서 말했다.
"저는 여러분이 공포를 느끼길 바랍니다. (...) 그리고 여러분이 행동하길 바랍니다. 우리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기를요. 정말로 불이 났으니까요."
이 말을 인용하며 본인의 경향신문 칼럼(2023년 1월)에, "집에 불이 났다면 어떻게 할까. 누구라도 미친 듯이 불 끄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 이는 다름아닌, 환경재단의 이미경 대표였다. 또, "그린보트"의 또다른 총책임자 환경재단의 최열 이사장은 "환경운동 1세대"로서, 본인이 "지구 소방수"라고 불리운다고 자부한다. 이들이 불 끄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불난 집(지구)에 부채질이나 그만 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김한민 기자는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이자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