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의 이런 반 환경성은, 그 시장이 확대된 북미와 서구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주요 환경/시민 단체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은 이미 크루즈 비판이나 반대 운동을 벌여 오고 있다. 그 결과, 유럽 주요 항구들은 속속 초대형 호화 크루즈를 규제하거나 입항 금지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시는 입항 금지 조처를 내렸고(202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는 크루즈를 '환경을 오염하는 관광 방식'으로 규정해 입항을 단계적으로 줄여 2035년까지 전면 폐지하기로 선언했으며(202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도 크루즈선 규제에 동참했다(2023년). 한국에선 제주도 시민단체들이 성명을 내어 크루즈의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대응을 제주도정에 요구했다(2023년).
안타깝게도 이런 흐름은 우리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되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재단(이사장 최열)이 20년 전부터 "그린보트"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린보트" 소개 페이지를 보면, "그린리더를 육성하여 글로벌 환경운동을 주도하고자 환경을 주제로 한 세계 유일의 크루즈 여행 '그린보트'를 진행하고 있다"(사진)고 말하고 있다.
환경재단의 크루즈 "그린보트"
앞서 살펴본 것처럼, 크루즈는 '그린'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데, 또 국제 환경 운동은 크루즈를 비판하거나 반대하고 있는데, 그걸 타고 다니면서 "그린보트"라 명명하고, 게다가 "그린리더를 육성해 글로벌 환경운동을 주도"한다니? 언뜻 들어도 모순 투성이지만, 이왕 비교를 하며 글을 시작했으니 계속해서 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앞서 크루즈의 반 환경성에 대한 이해가 쉽도록 비행기와 비교를 했는데, 정말로 엄밀하게 범주를 잡자면, 비행기와만 비교할 일이 아니다. "그린보트"가 "크루즈 여행"을 표방했으니, 다른 여행과의 비교도 필요하다. 즉 크루즈를 운송수단이 아닌 여행 방식으로 보고 비교하는 것이다. 국내 연구가 없어, "여행 대 여행"으로 비교한 한 미국 연구를 인용하면, 시애틀-알래스카까지 7일간의 크루즈선에 탄 개인이 표준 2인실 객실에 머물면, 육로로 시애틀을 방문하는 개인의 평균 탄소 발자국보다 8배 더 많아진다. (크루즈 관광객421.43kg vs 육상 관광객51.88kg).
크루즈는 온갖 인프라를 24시간 가동/유지하기 위해 엔진이 매분 매초 켜져 있어야 한다. "크루즈 선박은 석유 기반 연료를 많이 사용하므로 여행 전 과정에서 대량의 탄소를 계속 배출한다. 선박 크기, 승객 수 또는 크루즈 회사에 관계없이 모든 여행에서 일부 선박은 정박 시 해안 전력을 사용하도록 전환했지만, 대부분의 선단은 탄소 배출이 적은 전력원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크루즈 회사가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위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때까지, 그들이 약속한 '녹색 휴가' 옵션은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게 결론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보다도 더욱 적확한 비교는, 단순한 관광 여행이 아니라 다른 "환경연수"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놀러"가는 게 아니라 "그린리더를 육성하여 글로벌 환경운동을 주도하고자"하는 목적이니까. 게다가, 환경재단 대표의 말그대로 "그린보트"는 "여행을 빙자한 환경연수"라고 하니까 (난 정확히 그 반대라고 보지만). 그렇다면, 일부 기업 임원이나 부유층의 오락성 호화 해외연수보다, 평균적인 국내 단체 연수와 비교해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나아가 "환경/생태"라는 가치를 내건 집단들이 진행하는 조금은 "그린"한 연수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온당하리라.
가령, 환경단체가 버스를 대절해 제법 큰 규모의 인원으로 서울 근교나 경주로 몇 박 가는 단체 연수를 상정해보는 거다. 그러면 "그린보트"라는 유례없는 환경연수의 환경 부하(온실가스, 쓰레기 등)는, 위에 언급한 시애틀 사례처럼 8배, 아니 그 이상 나올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환경재단은 모르겠지만, 보통 환경단체/기관들은 고급 호텔에 묵거나 '고탄소 활동'까지 연수에 포함할 경제적 여력도 없거니와, 환경부담을 고려해 이를 자제하거나 지양할 공산이 크니, 격차는 한층 더 벌어질 것이다.
필자도 정확히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9~10배 이상 나와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교하면 "그린보트"의 환경 부하는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그러니 "그린보트와 비행기를 비교하는 건 억울하다"는 일부 그린 보트 옹호론자들의 엄살은 얼토당토않다. 비행기나 물론 다른 운송/관광 수단과의 비교도 지극히 적절할 뿐만 아니라, "살살해 준" 비교다.
더불어, 마치 크루즈를 어쩔 수 없이 꼭 타야 하는 것처럼 전제하고, "이왕 있는 크루즈 며칠 탄다고 뭐가 달라져?" 식의 논지를 펴는 것도 곤란하다. 굳이 안 타도 되는 걸 탄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크루즈는 명백히 서구 레저문화이고 (난 전형적인 "제국주의 생활양식"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선 아직 초창기이고 정착되지 않은 관광방식이다. "그린보트"는 아직 없는 혹은 미미한 수요를 굳이 개척하고, 창출하고, 키우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린"이라는 거짓된 이름으로.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 후, 환경재단 측은 몇몇 공식/비공식 반응을 했지만, 그 중 정작 "환경연수"나 "그린리더 교육"을 왜 굳이 바다 위에서, 초대형 크루즈를 타면서 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 하나 없었다. "가둬놓고 하면 좋으니까", "자연 가까이서 하면 좋으니까",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으니까", "오래 해왔으니까" 정도였다. 얼마든지 육상에서, 훨씬 더 많은 이들을 위해, 훨씬 더 그린하게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크루즈 위에서? 차라리 솔직하게 '크루즈의 화려함과 근사함과 호화로움을 만끽하고 싶어서,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라면 공감은 못 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사람 마음은 그럴 수 있다. 다만, "그린"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바로 그 간극이 점점 큰 "워싱"과 거짓말, 끝없는 변명을 낳는다.
"그린보트"부터 중단해야 하는 이유
"그린보트"가 없었다면 혹은 2019년 코로나19로 중단되었을 때 '떠날 때를 알고 떠났더라면', 해양환경운동과 기후운동을 하는 이들 그리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크루즈 산업의 문제를 알리면서 크루즈 보이콧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재정적 역량이 가장 큰 환경재단이 앞장서서, 가장 저명한 환경 명사들을 동원해, 크루즈산업을 홍보하는 걸 넘어서 그걸 '그린'의 이름으로 세탁해 여론까지 왜곡하고 있으니, 이 잘못 꿴 첫 단추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서 잠시, 더 큰 그림을 보자. 국내 크루즈 산업은 급성장의 길목에 서 있다. 정부는 이미 2016년 "제1차 크루즈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해 한국을 아시아 크루즈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크루즈선과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9년 크루즈 이용객은 2,970만 명으로 지난 10년간 연평균 5.3% 수준으로 성장하던 중,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다가, 이제 재개하고 있다. "그린보트"도 정확히 이와 발걸음을 같이 하고 있다.
정부의 제2차 크루즈산업 육성 기본계획(2023년)을 보면, 1차 계획에 대한 "한계와 반성" 항목에 환경에 대한 고려는 1도 없다. 뒤에 "크루즈선의 친환경화" 항목에는 해외 선사들의 말만 그대로 옮겨 "카니발 코퍼레이션, MSC 크루즈 등 일부 선사는 한발 더 나아가 '50년까지 유해물질 배출 'net zero'를 추진 중"이라는 정보만 나열하는 수준이다. 담당 정부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철저히 산업계와 선사 이익만 대변하는 건 물론 전혀 놀랍지 않다. (그것이 해수부의 존재이유라고 대부분의 해수부 공무원들은 생각하기 때문에, 생태/환경 등은 늘 뒷전 중의 뒷전이다. 수년간 해수부를 상대해본 경험으로 이 부분을 말할 수 있다.)
정부의 목표는 야심차다. "외국적 크루즈선 연 300항차 입항, 여행객 50만 명, 다양한 크루즈 상품 제공으로 국내 모항객 연 10만 명, 국적선사 출범을 통한 지속발전 가능한 크루즈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자연 생태계"와 대척점에 있는 "크루즈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정부부처가 나선 판국에, 명색이 환경단체가 환경명사를 잔뜩 동원해 "그린보트"를 운영하니, 이보다 훌륭한 조력자도 없다. (정부와 재단이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는 뜻이고, 직접 유착관계가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이렇게 "그린보트"는 크루즈 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엄청난 폐해를 '세탁'(워싱)하며, 막대한 환경적 악영향의 지속-재생산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린보트" 자체가 2025년 1월 16일 재개한 항해, 그리고 지난 20년간, "그린"과 "평화"라는 이름 아래 일으킨 물리적 피해(대기와 환경 오염, 온실가스와 쓰레기 배출)에 대한 책임만 묻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큰 영향과 여파의 문제이다. 기후위기의 "악당"으로 떠오르는, 그래서 유럽 주요 항구에서 규제 또는 입항 금지 당하는 크루즈는, '다행히', 한국에서는 일부 계층만 소비하는 관광 상품이다. 아직 국적 크루즈선 운영선사 하나도 없다. 그런데 위에서 보듯 급성장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를 확산하고, 정착하고, 정상화하는데 "그린보트"는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환경분야 최대의 인적/재정적 자원을 투입하고, 투어 회사를 동원해, 매해 수천-수만명 이상의 "크루즈 호감 인구"를 양산해내면서 말이다.
수년 후, 이 크루즈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이곳 부산항과, 제주항, 또 한반도의 다른 항구 도시들 그리고 여러 연안과 바다가 돌이키기 힘든 피해를 입을 때, 그래서 베니스, 암스테르담, 마르세이유처럼, 보다 못한 항구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하게 될 때, 역사는 환경재단과 "그린보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린보트"의 승객도 비판해야 할까
크루즈의 일반 승객들은 설득 대상이지 비판 대상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크루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비판은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외면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환경재단에 집중해야 한다. 다만, "그린보트"에 동조하거나 연사로 초청받은 소위 명사들, 즉 "알만한 사람들"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연사도 두 부류가 있다. 생태, 환경, 기후, 쓰레기 등 분야의 전문가들을 편의상 "환경연사"라고 하자. 이들은 특히 책임이 크다. 실제로 "최재천, 조천호, 윤순진 같은 분도 타는데 괜찮은거 아녜요?" "제로웨이스트 단체도 참여하던데요?" 라는 반응을 주위에서 몇 번이나 들었다.
본인들은 물론 "전 해양/크루즈 전문가는 아닙니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은 그렇게 분야와 전공별로 가려서 보지 않는다. 명사들 본인도 의식/무의식적으로 "생태, 환경, 기후 오피니언 리더"로 만들어진 그들의 이미지가 유무형의 이득으로 이어지는 사실을, 그리고 그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그린보트"도 사실 "명사, 셀럽 장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타지 않으면 승객에게도 별 메리트가 없는 여행이다.
명사들 만큼 수요확대와 홍보에 좋은 이들도 없다. 정부의 제2차 크루즈산업 육성 기본계획(2023년)에도 "국내수요 확대: 크루즈 체험단 운영(5회) 및 방송 홍보(지상파 생활정보·예능프로그램 등) 등을 통한 국내 크루즈 저변 확대"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 다음 사례를 생각해보자. "지난 3월 유명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과 방송인 노홍철의 남극 여행기가 큰 화제였다. 빠니보틀과 노홍철은 남극 지방을 탐험하는 크루즈를 타고 여행했고, 남극의 생생한 풍경은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크루즈는 남극 빙하를 위협하는 블랙 카본을 배출하고 있었다. (
기사 참조)
"눈 덮인 길 함부로 밟지 말라"고 했다. 누구보다 예민하고 신중하게 족적을 성찰해야 할 대표 환경단체, 환경 명사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의식하고 행보 하나 하나에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하면, "기후, 생태, 그린"을 설파하는 강연과 발언들이 어떻게 들리겠는가? 그런 높은 지성을 지닌 분들이 몰랐다는 것도, 의문을 품고 한번쯤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은 실망스럽지만, "워낙 바쁜 분들이라" 자세히 몰랐을 수 있다. 이해한다. 그러나, 알고나서도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자라나는 아동들, 학생들, 미래의 환경 지킴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들을 선망하고, 행동을 본뜬다는 걸 생각하길 바란다.
시셰퍼드 코리아는 그린보트 탑승 환경명사/연사들에게 모두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중에서 공개 발언을 통해, "반성"이란 말까지 한 분은 홍수열 박사가 유일하다. 그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배 가운데 유일하게 비행기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게 크루즈선이란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크루즈선은 장려될 수 없는 수단이고, '그린'이란 이름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 반박을 못 하겠더라고요. 안이하게 생각했고,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사 참조).
이런 발언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비판이 아니라 박수를 받아야 한다. 바로 이런 방향의 긍정적인 영향력들이 여론을 바꿀 수 있다. "그린보트"에 1회 탑승했던 영화감독 황윤도, 본인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보트'가 얼마나 대형 규모인지 잘 모르고 응했으나, 탑승 후 후회했다"며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여가 시설과 엄청난 규모에 놀랐고, 갑판 위 굴뚝에서 대량으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매연에 놀랐다"고 토로했다. 또한 "선상에서 진행되는 많은 훌륭한 강연과 프로그램들은 굳이 크루즈를 타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며 "크루즈 대신 차라리 국내에서, 기차 안에서 환경 프로그램을 열고 전국 곳곳 기후위기와 생태 파괴로 아픈 지역을 찾아가 그곳의 현장과 주민들을 만나는 '녹색 열차'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대안을 제시해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외에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가수 요조, 작가 김미옥 등이 하차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언론의 비판적 역할도 중요하다. 지난 십수년간 수많은 기자들이 "그린보트"를 탔지만, 비판 기사는 한 개도 없었다. "그린보트" 여행은 수백만 원짜리 상품이기에, 언론인이 탑승 제의를 수락했다면, 어떤 조건에서 했는지 또 김영란법 저촉 문제는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올바른 언론이라면 즉시 탑승을 거절하고, 차라리 "그린보트가 과연 그린한지" 파헤치는 기사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 3편에서 계속 덧붙이는 글 | 김한민 기자는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이자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