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며 신동욱 수석대변인과 대화하고 있다. 2025.1.6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며 신동욱 수석대변인과 대화하고 있다. 2025.1.6 ⓒ 연합뉴스

"'탈당'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라고 '권유'를 했다." -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탈당 권유'라고 이걸 쓰면 너무 나간 표현이다." -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탈당'을 '권유'했는데 '탈당 권유'가 아니라고 한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까? 이쯤 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인지, 아니면 이번 탈당 권유가 권유인지 아닌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탈당'인지 알 수가 없다. 상자 안에 고양이가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는 것처럼, 이것은 탈당 권유인 동시에 탈당 권유가 아닌 셈이다.

국민의힘이 또 국민의힘과 싸우고 있다.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계속 난무하다 보니,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두고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촌극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MBC 기자의 '첫' 백브리핑 질문을 끊고 "저기 다른 언론사 하세요"(권성동 원내대표)라고 하더니, 정작 나중에 해명을 요구하니 "질문이 중복돼서 다른 분에게 맡긴 거고, 특별한 배경은 없다"(박수민 원내대변인)라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카메라 앞에서 하고 있다.

또 "법 집행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어느 국민 누구도 예외는 있을 수 없다"라고 했는데, 같은 자리에서 "대통령도 영장집행에 협조해야 한다는 뜻"이냐고 물으니 또 "그건 아니다"(신동욱 수석대변인)라고 말한 적도 있다.

당 원내대표가 공개회의 시간에 모두발언을 한 표현의 의미를 묻는데 "저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라며 답변을 피하는 수석대변인도 우스웠지만, 김상욱 국회의원의 '탈당 권유' 여부를 놓고 '해석' 논쟁을 벌이는 이 상황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다. 물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진짜뉴스 발굴단'이 존재하는 국민의힘에는 지금이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권성동 "김상욱에게 '탈당 진지하게 고려해보라' 권유했다"

상황을 복기해 보자. 발단이 된 것은 <한겨레> 보도를 통해 폭로된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이었다. 최초 보도에서는 익명으로 보도가 됐으나, 이같은 요구를 받은 건 김상욱 국회의원이었다. 김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탈당 권유가 있었음을 인정했고(관련기사: 김상욱 "권성동의 압박? 나는 탈당할 이유 없다" https://omn.kr/2bsii), 현재 해당 기사 역시 실명으로 수정되어 있는 상태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8일 오후 기자들로부터 관련 질문이 나오자 "민주당은 당론을 정하면 단 한 사람의 이탈도 없이 단일 대오를 형성하는데, 우리 당은 지금까지 당론을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한 분들이 많다"라며 "이해를 구하고 설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론을 따르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정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과연 같은 당을 할 수 있다고 보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원께서 굉장히 불만을 표시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계속해서 방송이나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당론에 반대되는 행위를 한 김상욱 의원에 대해서는, '당론과 함께하기가 어려우면 같은 당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냐' '탈당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라'고 권유를 했다"라고 탈당을 권유한 사실이 있음을 시인했다.

실제 <민중의 소리>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당시 녹취를 확인하면, 권 원내대표는 김 의원에게 "내가 농담하는 게 아니다"라며 "탈당하는 게 맞다. 당에 도움이 안 되잖아"라고 요구했다. 이어 "웃을 일이 아니다, 한두 번이 아닌데"라며 "당을 같이 하면, 당의 뜻을 따라야지"라고도 덧붙였다.

정리하면, 발화자(권성동 원내대표)도, 청자(김상욱 의원)도 '탈당 권유'를 인정했고, 당시 발언에서도 명확하게 탈당을 언급한 게 사실로 확인됐다.

신동욱 "탈당 권유 아냐. 확대 해석할 필요 없다... 김상욱도 책임"

별다른 해례본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한 데도 당 수석대변인은 9일 오전 기자들을 만나 "원내대표가 답답해서 그런 말씀을 하셨겠다. 탈당 권유가 아니다"라며 해당 발언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나섰다.

신동욱 대변인은 이날 당 비상대책위원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당론이 지도부 한두 명이 모여서 결정하고 의원에게 따를 것을 강요하는 당의 지침이 아니라 일종의 신사협정"이라며 "'이 정도는 한목소리로 나가는 게 좋겠다' 그런 점에서 원내대표가 원내 108표를 가지고 야당과 대응해야 하는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김 의원에게 탈당을 요구한 것에 대해 "당 차원에서 논의한 적은 없다"라면서도 "당론을 언론인은 휴지 조각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당론은 매우 중요하다. 원내 지도부 입장에서는 '당론에 따라 달라'고 강조하는 것이 개인의 생각을 억압하는 차원이 아니다"라고 반복했다.

특히 "'탈당 권유'라는 표현도 아니다. '탈당 권유'라고 이걸 쓰면 너무 나간 표현이다"라며 "생각이 좀 다르더라도 기왕 이런 상황에서는 당론을 따라줬으면 좋겠다는 쪽에 방점이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 제가 다시 한번 (권 원내대표에게) 확인했고, 그건 말하는 스킬의 문제일 수도 있다"라며 "원내대표의 입장은 '당론이 정해졌으면 따라줬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너무 확대 해석할 필요 없다"라고도 항변했다. 기자들과의 질문이 꼬리를 물며 백브리핑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이 문제를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라며 "별거 아닌 이야기"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신 대변인은 "(당을) 나가라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그걸 원내대표가 어떻게 결정하느냐? 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다"라고도 덧붙였다. "원내대표가 탈당시킬 수 있나? 그렇지 않다"라는 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당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 인선도 결정됐다. 사실상 윤리위원회를 통한 징계 절차를 준비하는 수순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김상욱 의원 본인 책임도 있다"라고도 지적했다. "김상욱 의원이 지금까지 의원총회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본인 의견을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라며 "당론 형성 과정에서 의원이 본인의 주장을 충실히 이야기하는 건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슈뢰딩거의 조인트 이어 다시 등장한 슈뢰딩거의 탈당 권유

이 당을 7년 가까이 출입하면서 별의별 희한한 일을 많이 겪었다. 당직자의 무릎을 걷어차는 장면을 봤는데, 그런 적이 없다고 했던 송언석 국회의원의 '슈뢰딩거의 조인트'도 있었다(관련기사: "폭행 없었다"는 송언석 의원... 그럼 내가 본 건 뭐였을까 https://omn.kr/1ss47). 국회의사당에서 출입증을 목에 걸고 질문을 했는데 '신분을 안 밝혔다'라며 "예의가 없다"라는 말을 하는 박대출 의원이 당 정책위원회 의장이기도 했다(관련기사: 예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여당 출입기자입니다 https://omn.kr/23ssa).

전화를 안 받으면서 전화를 안 했다고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브리핑에서 <조선일보> 기사와 비교해 유사성을 부인하지 않더니, 막상 기사가 나가고 난 후 <조선일보>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일도 있었다(관련기사: 국힘, '김어준·주진우·최경영' 고발 예고... "<조선> 보도와 이 정도면 복붙?" https://omn.kr/25mbv).

촌극의 반복은 결국 집권당의 수준을 보여준다. 사상 초유의 12.3 내란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이 당은 '단일대오'를 강조하며 당내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다. 그마저도 '선택적'이다. '초선' 김상욱 의원이나 '비례' 김예지 의원처럼 국회의원들 사이 상대적으로 지위가 약한 이들에게는 '탈당'을 운운하며 "농담 아니다"라고 겁박하면서, 선수가 높은 조경태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에게까지 탈당을 거론하지는 못하고 있다.

'친한계' 최다선인 조경태 의원은 9일 오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고 권 원내대표를 직격했다. "지금 김상욱 의원이 한 행동과 원내대표가 한 발언 중에 국민들이 어느 쪽에 손을 더 들어줄 것인지, 저잣거리에 나가서 한번 물어봤으면 좋겠다"라며 "권한을 벗어난 발언이었다. 원내대표라 해서 무소불위의 권한과 권력을 행사한다는 그런 조항이 없다"라고 꼬집은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같은 날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명령이라기보다는 구두 경고의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라면서도 "사실 지금 사회와 국회하고는 약간은 거리가 있는 것이, 아직도 국회는 좀 선수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선배가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까 수평적인 의사소통보다는 아직도 수직적인 그런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라는 지적이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 남소연

김상욱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물론 저의 모자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제 모자람은 또 반성하고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겠다"라면서도 "바람이 있다면 우리 국민의힘이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힘 당 내부의 분위기나 의사결정 과정이나 이런 일체의 과정들도 우리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는 부분들에서 물리적인 제재는 없겠지만, 보이지 않는 이런 저런 압력은 분명히 또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당내 소장파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결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설득된 단결, 또 더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 바름을 추구하는 옳음을 추구하는 단결"이라고 맞섰다.

보수 정당은 탄핵 때문에 망했던 게 아니다. 탄핵 이후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에 망했던 것이다. 이 당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탈당했던 인사들이 복귀한 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준석 당 대표' 체제로 이어지며 나름의 일신(一新)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잘못된 교훈을 배운 이들은 그때의 전철을 더 나쁜 방법으로 반복하며 침몰하고 있다. 그래서 김상욱 의원의 물음표가 더 울림이 있는지 모르겠다. 누가 보수의 배신자인가? 누가 해당 행위자인가?

#국민의힘#김상욱#권성동#슈뢰딩거의고양이#신동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곽우신 (gorapakr) 내방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