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수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 ⓒ 정인욱
45년 만에 되풀이된 비상계엄령을 막아내고 '탄핵 가결'로 맞받아친 힘은 결국 시민에게서 나왔다. 여의도를 가득 메운 시민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이들은 바로 '2030여성'.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 여성들은 언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50대 이상의 민주화 세대는 "집회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기특하다"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2030여성들은 이런 관심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각종 미투 사건을 지나 최근의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까지, 이들은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거리로 나섰다. 동물권·기후위기·공공돌봄 등 다양한 의제에서 이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을 꾸준히 외면했다. 심지어 페미니즘을 외치는 2030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하며 낙인찍기도 했다.
드디어 2030여성들이 정치적 주체로 크게 인정받았으니 이제 상황이 좀 달라질 수 있을까?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이 바뀌면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민주주의',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까? 그 길은 어떻게 열어야 할까? 김지수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은 이 질문 앞에서 "잘 모르겠다", "쉽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어렵고 복잡한 현실을 풀기 위한 열쇠가 그렇게 쉽고 간단할 리 없다.
그는 '탄핵의 주역'으로 급부상한 2030여성 당사자이며, 사회를 바꾸기 위해 또래 청년들과 함께 행동에 나선 청년참여연대의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집에서 쓰던 스탠드 조명을 뜯어서 집회 현장에 들고 나갔다는 김지수 운영위원과 함께 '나라 걱정'을 주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본 인터뷰는 지난 2024년 12월 18일 진행되었다.
"여성 청년들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행동했다"
- 비상계엄과 탄핵 이야기를 먼저 해보죠. 50대 이상이 아니라면 '비상계엄'이라는 말은 아마도 책이나 드라마에서나 접했을 것 같아요. 그날 어떻게 소식을 들으셨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드라마를 보던 중에 SNS 알림이 떠서 소식을 들었어요. '비상계엄'이라는데 너무 낯선 단어인 거예요. 처음에는 이게 실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무슨 시뮬레이션 게임인지, 현실감각이 없고 멍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드라마를 그냥 좀 더 봤는데 점점 마음이 불안해지더라고요. 인터넷에 들어가 상황을 확인했죠. 국회에 헬기나 계엄군이 들어가는 걸 보니까 막 화가 났어요. 그렇게 뉴스를 보다가 새벽까지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 그 뒤에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도 나가셨죠. 그때는 또 어떠셨어요?
"12월 7일 집회에 나갈 때는 '머릿수를 채우자. 한 사람이라도 더 가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날은 '설마 탄핵이 안 되겠어?'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투표가 아예 무산되니까 '아, 나라가 망했다' 싶더라고요.(웃음)
일주일 뒤 탄핵이 가결되던 날은 집에서 결과를 지켜봤어요. 그때 마음은… 일단 '좀 빨리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웃음) 탄핵 투표를 시작하고 결과가 거의 1시간 뒤에 나오잖아요. 결과가 나온 다음에는 탄핵이 가결된 게 기뻤지만 동시에 분노하는 마음도 컸어요. 아무리 '탄핵 반대'가 당론이라고 하더라도 반대 표가 너무 많더라고요. '저들은 정말 견고하고 끈끈하구나' 싶었죠. 탄핵 이후에 시민들이나 시민단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고민도 들었고요."
- 이번 집회에서는 '응원봉', '선결제' 이런 키워드가 많이 화제가 되었어요.
"그런데 집회 참여를 위해 일부러 응원봉을 사는 것을 보며 소비자본주의가 시위 현장에서도 작동한다는 생각에 씁쓸했어요.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물건을 새로 사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물건 중에서 빛을 내는 걸 가져가면 어떨까 싶어요. 또 커피나 빵 등을 선결제해서 나누는 분들도 많았는데, 이제 그 마음을 '다양한 시민단체 후원'으로 보여주면서 지속적으로 연대하면 좋겠어요. (대형 무대나 음향 등을 설치하면서) 집회 준비하는 게 단체들에는 다 재정적으로 빚일 텐데..."
- 활동가들이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모습이 저도 눈에 밟히더라고요. 그러면 회원님은 이번 집회 때 어떤 걸 준비해 가셨어요?
"저는 깔개, 담요, 핫팩, 그리고 간식을 한 보따리 챙겨갔어요. 남는 깔개는 나눔을 했고요. 또 집에 응원봉이 없으니까 '빛이 나는 물건이 뭐 있을까' 고민하다가 집에 있는 스탠드 조명을 가져갔어요. 기둥을 분리하고 머리 부분만 뜯어냈는데 보조배터리로 불을 켤 수 있더라고요. 그 조명이 빛이 되게 강하거든요. 이왕이면 센 불빛으로 더 환하게 밝히고 싶었어요. 빛은 어둠을 몰아낼 수 있잖아요."
- 이번 집회에서는 케이팝과 민중가요가 함께 등장했어요. 중장년 세대는 '다만세(다시 만난 세계)' 가사를 외우고, 2030 세대는 '바위처럼' 가사를 외웠다고 하더라고요. 회원님은 어땠나요?
"사실 저는 케이팝보다 민중가요가 더 익숙해요. 스무 살 때부터 집회에 참여했거든요. 꽃다지의 '주문', '이 길의 전부', 이런 노래를 좋아합니다.(웃음) 그래도 케이팝을 틀어준 게 청년 세대를 불러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주최 측의 노고가 엿보였어요."
- 청년들이 집회에 나와서 기특하다고 말하는 중장년층도 많았죠. 지수님처럼 오래전부터 집회에 나간 청년들도 많은데 말이에요.
"청년들, 특히 여성 청년들은 그 전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집회를 해왔어요.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 계속 존재한 거죠. 한편으로는 집회에 나갈 때 여성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신분을 가리는 경우가 많아서 존재가 더 안 드러난 것 같기도 해요. 이번 집회에서도 (여성 참가자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며 발언을 할 때 야유가 나왔잖아요. 또 '집회에 젊은 여성들이 많이 나오니까 (이들을 만나기 위해) 젊은 남성들도 나오라'는 발언도 논란이 됐죠.
그리고 집회에 나온 청년을 기특하게 여기는 중장년층은 사실 청년을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이건 우리가 할 일인데 너희가 도와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느껴지거든요. 청년들은 (비상계엄이) 자신에게 닥친 일이라서 나온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행동인데 말이에요.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어 학생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학교, 일하다 죽은 청소년과 청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 부동산으로 돈을 벌게 하고 청년에게는 안전한 주거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 이것들은 윤석열정부 집권 이전부터 청년들이 마주한 일이에요. 거기에 쌓여온 윤 정부에 대한 불만이 비상계엄으로 폭발적으로 나온 것뿐이에요. 청년들에게 기특하다고 말하는 중장년층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들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의 일이라서 함께하는 것'이라고."
-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민주주의를 위한 집회 현장에서조차 다양한 주장들, 특히 소수자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경우가 많죠. 어떤 사람들은 "윤석열 탄핵에 초점을 맞춰야지, 왜 페미니즘 등의 다른 이슈를 이야기하냐"고 말해요. 또 운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해일이 오는데 조개 줍는 행동"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요.
"(단지 비상계엄 때문만이 아니라)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과 청년, 장애인 등 여러 소수자의 삶을 파괴해왔기 때문에 그 결과가 탄핵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이들이 모인 광장에서 한 가지 목소리만 나올 수는 없지 않을까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만큼 윤석열 정부의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래도 이번 집회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고 느꼈어요.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앞으로 운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 탄핵 이후에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과 정치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자신 안의 여성혐오, 소수자혐오를 인지하고 바꿔나가도록 노력해야겠죠. 단체들은 집회 현장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도록, 그리고 혐오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고요. 집회 참가자들에게 잘 안내해주면 좋겠어요. 당신 곁에 퀴어가 있을 수 있다고, 또 어린이를 동반한 사람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그런 식으로요. 그런데 광장 안에서는 그나마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광장 밖에서는 어떻게 될지... 쉽지가 않네요.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상상력이 필요한데 답을 찾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민주당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탄핵이 가결된 것은 당신들이 잘해서가 아니고 시민들이 이끌어낸 거라고요. 그러니까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시민 중에는 소수자도 많이 있으니까 차별금지법을 꼭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말이에요. 그동안 민주당이 못하면 국민의힘이 집권하고 국민의힘이 못하면 다시 민주당이 집권하고, (상대 정당의 무능 덕분에 정권을 잡는) 이런 식의 흐름이 이어졌잖아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소수자를 보호하는 일은 굳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지수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 ⓒ 정인욱
- 이제 청년참여연대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지수님은 이전부터 다양하게 활동을 해오셨죠.
"예. 사회 문제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었어요. 학교 안에서 사회참여 동아리랑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했죠. 사회참여 동아리에서는 실제 사회 문제를 겪은 분들과 만났어요. 김용균씨를 위한 추모제나 오체투지에도 가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만나서 집담회도 하고요. 제가 인천에 살았는데, 한국GM 부평공장에 불법파견 논란이 있었거든요. 동아리 선배를 따라서 관련 노동 집회에도 많이 나갔어요.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간 건 제가 경험한 문제들이 '여성혐오' 때문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서 제가 고등학교 때 자취를 했는데, 집에 배달 온 알바가 같은 학교의 남자 선배였거든요. 그런데 혼자 자취한다는 게 여러 남자 선배들에게 알려진 거예요. 그땐 그냥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말았죠. 돌이켜보니 제가 겪었던 일은 여성을 물건처럼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 다수가 경험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였어요. 단순히 기분 나쁘고 찝찝한 일이 아니라 여성의 개인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남성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문화, 그 정보를 가지고 여성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공포심을 유발하여 남성 자신이 상대 여성을 통제하려는 행위였던 거죠. 이런 경험들을 페미니즘의 언어로 정리할 수 있게 되니까 짜릿하고 시원했어요."
- 2024년에는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8기에 함께 하셨고 캠페인 어벤져스 활동을 거쳐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도 맡게 되셨죠. 청년참여연대까지 오게 된 이유는 뭘까요?
"코로나 이후에 동아리 활동이 중단되어서 사실상 사라졌어요. 그 무렵에 저에게 우울증도 왔고요. 그러다가 이제 좀 좋아져서 다시 활동을 시작한 거예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도 컸고, 졸업 시기가 다가오니까 학교 바깥으로 시야를 넓히고 싶기도 했어요. 실제로 활동해보니 청년참여연대는 열린 공간이라서 더 다양한 청년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한 가지 사안을 논의해도 의견이 정말 여러 가지로 나와요."
- 앞으로 청년참여연대에서 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요?
"청년참여연대 젠더 소모임을 재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참여자가 부족해서 모임이 없어졌거든요. 그리고 '청년'참여연대로 이름이 붙었지만, 청소년들과 더 교류해서 앞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청소년·청년이 함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 지수님은 2025년 〈월간참여사회〉 신년 호 인터뷰의 주인공이에요. 새해의 소원이나 목표가 있을까요?
"아, 새해의 첫 인터뷰군요. 감사합니다.(웃음) 제가 2월에 학교를 졸업해요. 회계 쪽으로 취업하고 싶은데 이 분야의 채용공고가 확 줄었어요. 자리가 나오는 경우도 거의 없고, 간혹 있어도 경쟁률이 200 대 1까지 가요. 이제 상황이 나아져서 취업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아, 그리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회원인터뷰 공식 질문입니다. 나에게 참여연대란?
"'믿을 수 있는 소통창구'요. 사실 그동안 참여연대 소식을 받아보지 않다가 계엄 이후 참여연대 텔방에 들어가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해보니 좋은 소통 채널이더라고요. 참여연대는 활동 경력도 많고 네트워크도 있잖아요. 그게 강점 같아요."

▲김지수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 ⓒ 정인욱
글
박효원 / 사진
정인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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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5년 1-2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