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12월 29일 서거했다. 한미관계의 특성상 미국의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큰 영향을 주었으며 카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카터는 퇴임한 이후에도 한반도와 한미관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터는 전쟁발발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군사적 긴장상태가 고조되던 1994년 6월 북한을 방문하여 미국과 북한 사이의 협상의 물꼬를 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카터의 방북이 없었다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는 북한과의 협상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클린턴 행정부는 제재 일변도의 강경책을 밀고 가면서 군사적 옵션까지 고려했을 것이다.
이때는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등이 발생한 1968년과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한 1976년과 함께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의 전쟁 재발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순간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위기였다. 이런 위기를 해소하는 데에 카터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카터의 방북은 카터와 클린턴 행정부가 처음부터 고안한 기획이 아니었다. 이것은 평소 카터와 인연이 깊었고 1993년 1차 북핵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일괄타결 방식의 평화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던 당시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아이디어였다.
김대중은 전쟁 발발 가능성이 고조되던 1994년 5월 미국을 방문하여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연설했다. 이때 김대중은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협상 재개와 성공을 위한 방안으로 카터 방북 카드를 제시했다. 김대중은 이 제안을 하기 전에 카터와 협의하여 그의 승낙을 받았다. 결국 카터 방북 카드는 김대중-카터 연대활동의 산물이었다.
당시 민간인이었던 김대중과 카터, 두 사람이 한반도의 전쟁을 막고 1차 북핵위기를 평화적으로 극복하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김대중과 카터는 이토록 중대한 일을 함께 협력해서 추진할 정도로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카터 대통령 서거 이후 두 사람의 역사적인 관계를 알려주는 사료를 공개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자료는 김대중의 2차 미국 망명 시기(1982.12~1985.2)인 1983년 2월 26일 카터가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 1983년 3월 30일 김대중과 카터가 처음 만났을 때의 사진 2장과 회동 당시 김대중-카터의 2분 분량의 음성파일이다.
김대중과 카터의 첫 만남

▲1982년 2월 26일 카터가 김대중에게 보낸 친필 편지카터가 김대중에게 보낸 친필 편지입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김대중과 카터는 김대중이 미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만남을 추진했다. 이는 1983년 2월 26일 카터가 김대중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통해서 확인된다.
존경하는 김대중 님께
이번 주에 만나 뵙지 못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일정을 조율하여 만나 뵙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레이니(James T. Laney) 총장에게 일정 조율을 요청하였습니다. 로잘린과 저는 귀하와 가족께 따뜻한 개인적인 인사를 전합니다.
지미 카터
두 사람은 일정을 조율하여 1983년 3월 30일 애틀란타의 에모리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녹음된 2분 분량의 음성자료를 보면 김대중과 카터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두 사람의 짧은 대화 녹취문이다.
지미 카터: 이렇게 살아있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뵐 수 있어 기쁩니다. 애틀랜타와 에모리 대학에까지 함께 방문해 주셔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대중: 우리는 항상 당신을 존경해왔습니다. 특히 당신의 인권 정책을 존경했습니다.
지미 카터: 그 말을 들으니 기쁩니다. 물론,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헌신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저를 찾아와 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카터의 환영사가 이어진다.
지미 카터 : 여러분 모두가 이곳에 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김대중씨와 그의 가족을 이곳에 모실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제가 대통령이었을 때, 저는 대한민국 정부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과도 긴밀히 협력하여 인권을 증진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모두에게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을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많은 진보, 평등,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를 이루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다른 형태의 정부를 갖는다는 사실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로 향한 진보가 현재 공적인 자리를 맡고 있는 정치지도자뿐 아니라 야당의 노력에 의해 증진되었다고 믿습니다. 과거에 이루어낸 일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우리가 우리 나라와 지구상의 다른 나라들에서 앞으로 기본권과 자유를 향한 더 큰 진보를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음성자료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유튜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카터, 역사적 인연의 시작
카터 대통령은 1977년 1월 취임한 이래 인권외교를 내세웠으며 유신독재를 하고 있던 박정희 정권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리고 카터 행정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주인권 지도자로서 유신독재 정권으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고 있던 김대중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카터 대통령은 1979년 6월 방한했을 당시 연금 중이던 김대중과의 만남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유신 정권은 이에 강력히 반대했고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리고 카터 대통령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서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자 김대중의 사형집행을 막기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카터 대통령은 1980년 11월 대선에서 패배하여 재선에 실패한 이후에도 레이건 당선자 측에 김대중의 구명을 주요 외교과제로 강조했을 정도로 김대중의 사형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결국 카터-레이건 두 대통령의 관심과 노력으로 김대중은 1981년 1월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받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목숨을 구한 김대중은 1982년 12월 23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됨과 동시에 미국으로 출국하여 2차 미국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도착 직후 김대중은 카터 대통령에게 연락을 했고 일정 조율 끝에 1983년 3월 30일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대학교에서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1983년 3월 30일 김대중-카터김대중과 카터가 처음 만났을 때의 사진입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국제적인 민주·인권·평화를 위한 가치 연대의 모범 사례
김대중은 2차 미국 망명 기간 동안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각종 활동을 전개했다. 이때 카터는 김대중에게 여러 도움을 주었다. 특히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김대중이 제2의 아키노가 되지 않도록 카터는 김대중의 안전귀국을 위한 지원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김대중의 2차 망명시기는 두 사람의 유대가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그 이후에도 돈독한 관계를 이어왔으며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에는 한반도의 전쟁을 막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카터의 방북을 통해서 미국과 북한 사이의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었으며 그해 10월 제네바합의를 통해서 1차 북핵위기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제네바합의를 통해서 미국과 북한은 관계정상화를 위한 외교적인 기반을 마련했으며 1998년 2월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냉전해체를 위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제네바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는 좀더 속도감있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고어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2001년과 2002년에 북미관계정상화, 북일관계정상화를 포함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지역 냉전의 잔재를 완전히 일소하여 이 지역에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었을 것이다. 극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렇듯 김대중과 카터, 카터와 김대중은 인류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한 정치가였으며 두 인물의 연대는 한국 현대사의 긍정적인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김대중 2차 망명 시기 두 인물에 관한 사료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김대중육성회고록>(한길사, 2024) 편집과 윤문 작업의 책임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