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좌절과 절망을 양식으로 삼는 업이 있다면 다름 아닌 작가일 테다. 인간이란 제가 선 자리, 겪어낸 경험을 넘어서 사고하기 어렵고, 그리하여 불행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이란 그를 감내할 깜냥 없는 이를 쉬이 비틀어서 못쓰도록 하기도 한다지만, 그릇이 되는 이에겐 도자기를 굽는 불길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작가 박완서에게 불행이 미친 영향이 꼭 그러하지는 않은가. 참척(慘慽), 세상 일만가지 고통 중 가장 크다는 자식 잃는 슬픔을 그녀는 삶의 한 가운데서 감내해야만 했다. 주목받는 작가로 부러울 것 없던 그녀가 1988년 한 해 동안 남편과 아들을 연달아 잃었다. 남편은 암으로, 자식은 교통사고로 그녀 곁을 연거푸 떠나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해 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아들은 이승에서 꼭 25년2개월을 살았다 했다. 자식이 살아 가져다 준 행복만큼 고통의 골짜기가 깊었을 게 자명하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도망쳐 숨었던 시간들이 짧지 않았다 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망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스스로 징그럽다 표현한 삶에의 욕구가 그녀를 일으켜 다시금 생을 살아내도록 하였다. 전과 같으나 또 완전히 같지는 않은 그 삶을 지탱한 박완서의 자세, 그 태도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학가라 해도 좋을 박완서를 빚어냈다. 그러니 작가란 좌절과 절망을 양식으로 삼을 밖에 없는 고단하고 괴로운 업인 것이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책 표지 ⓒ 세계사
추리고 추린 박완서 수필의 정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박완서 작가의 수필 모음집이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17년 간 발표한 글 가운데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작품 35편을 추려 실었다. 발췌한 작품집이 2002년 출간됐다 뿐이지 실제 쓴 것으로 따지자면 박완서 생애 전체를 오르내린다 해도 좋을 만큼 해묵은 글도 적잖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은 물론이고, 이제 막 작가로 자리 잡았을 무렵의 생생한 마음을 찾아볼 수 있는 글도 상당하다. 다시 말해 박완서 생애 전반을 그녀의 글을 가이드 삼아 오갈 수 있는 특별한 저술이라 하겠다.
나는 이 책을 지역 도서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다. 지난 십여 년 간 십 수 개의 독서모임을 해온 나는 지난해부턴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즐기는 이들과도 함께 모임을 열고 있다. 중장년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청한 이가 하나 있었고, 다수가 박완서의 글을 읽기를 기꺼워 한 탓으로 나 또한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지난 수년 동안 박완서의 글을 여럿 읽었으나 모두가 소설이었기에 수필은 전혀 다른 감흥을 주리라 일면 기대도 되었다.
수필이 대개 그러하듯, 책에 실린 글들 또한 일상을 살며 느낀 소회, 나아가 삶 가운데 지표가 될 깨달음 따위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작가, 그것도 당대 제법 인정받던 중견작가씩이나 되어 저의 편견이며 고정관념과 맞닥뜨린 순간들을 솔직하게 적어낸 이야기가 각별히 흥미롭다.
이를테면 이런 것, 3호선 전철 안에서 청년을 밀치고 빈 자리를 차지한 어느 뚱뚱한 중년남자를 보며 그녀는 속으로 못마땅한 마음을 풀었더랬다. '반소매 밑으로 드러난 끈끈한 팔'이며 '호랑이가 우짖는 것처럼' 하품을 했다는 둥 단단히 못마땅한 마음이 비어져 나오는 표현이었다.
작가는 그의 못마땅한 인상에 대한 불쾌감을 지우려 맞은 편에서 전철에 오른 젊은 여자를 바라봤다고 이야기한다. 피부가 맑고 아주 화려한 모양의 모자를 들고 있었다는 그녀에게, 특별히 그 흔치 않은 모양의 모자에 작가는 마음을 빼앗겼더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곁에 앉아 있는 무신경한 남자가 모자를 든 여자를 불러 제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오십도 넘어보이는 사내가 이십대 젊은 여자에게 아부를 하는 꼴이 또 못마땅했던 저자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상황을 바라보았는데, 그제서야 그녀의 배가 불러 있었단 게 눈에 띄었다고.
말하자면 제 곁의 못마땅한 남자가 임산부에게 자리를 비켜줄 정도의 아량 있는 이였고, 저는 그조차 알아챌 줄 모르는 무신경한 사람이면서도 도리어 그를 속으로 비난하고 있었단 이야기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오해하는가
위의 글 '유쾌한 오해'에 실린 것과 비슷한 구성의 얘기가 책 가운데 거듭 등장한다. '나는 나쁜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엔 문학상 심사를 맡아보게 되어 후보작이 실린 문예지를 받기로 하였으나, 택배용역회사가 인근 다른 동네에 있는 같은 이름의 아파트로 오배송을 하여 벌어진 이야기가 담겼다.
그녀는 기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가까운 동네인데 직접 찾아가는 게 어떻느냐는 말을 듣고 그에게 발칵 화를 냈다고 한다. 여차저차하여 결국 밤 늦은 시간 제 집으로 배송을 온 그가 고작 열다섯 쯤 되어 보이는 키 작은 학생이란 것을 확인하고 아차 싶었다고. "할머니, 해도 정말 너무하십니다. 거기서 여기 오자고 제가 어디에서 온 줄 아십니까." 말하는 그를 앞에 두고, 불같이 화를 낸 제 모습이 아연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사십 대의 비오는 날'엔 버스에서 곤히 잠든 차장 아가씨에게 그녀가 도망쳤을 가난한 농촌과 여전히 나아지지 못하고 불량한 생활환경 따윌 안쓰럽게 여겨 차마 깨우지 못한 이야기가 담겼다.
버스가 멎자 반짝 눈을 뜬 차장이 제게 거스름돈을 건네고 그것이 누구 잘못인지 알 수 없게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자 그녀는 대뜸 "그것 하나 제대로 못 받고 속을 썩혀, 빨리빨리 주워 가지고 내려욧" 하고 성질을 부리더란다. 동전은 질퍽한 버스 바닥에 달라붙어 주워지지를 않고 겨우 백 원 짜리만 주웠는데 차장이 저를 문 밖으로 내던지다시피 밀었다는 이야기.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 담긴 여러 수필, 그 속의 많은 에피소드 가운데서 저자의 기대며 편견을 단박에 뒤집는 많은 이야기가 이와 같이 담겨 있다. 그 기대 가운데 상당수가 부족한 지혜와 비좁은 아량, 지나친 감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저자는 그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어 저의 모자람이 가져온 긍정적 변화로 소화해낸다.
이 밖에도 책 가운데는 저자가 겪은 실패와 상실, 그로부터 비롯된 고통의 순간들도 빼곡하다. 이대로 살아서 무얼하나 싶을 만큼 절망적인 순간도 없지 않지만, 저자는 끝끝내 저의 생을 지키고 그 생을 가꿔내는데 성공한다. 즐거워 하고 가엾어 하며 실망하고 슬퍼하는 삶의 모든 곡절들이 하나하나 글과 이야기가 되었음을, 또 고단한 작업 속에 이야기를 갈고 닦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을 그녀가 얼마나 가치 있게 여겼는지를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이 책 가운데 때때로 떠올려 지침으로 삼아도 좋을 글귀 몇을 얻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 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151p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아도 마음 속으로 제 자식들이 이렇게 커나가길 바란다는 박완서의 글이 그녀가 꼭 어떠한 자세로 생을 대했는지를 알도록 한다. 나는 이전보다도 그녀의 글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