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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의 최애 케릭터 '딱지맨'(공유)이 망가져서 슬퍼. 살짝 웃음 짓고 단정하게 있을 때가 더 무서웠는데."
"그래? 나는 그의 연기에 감탄했는데."

우리 가족은 뉴욕 맨해튼 인근 주택지역에 산다. 연말에 아들 친구들이 놀러 와 같이 음식을 만들며 떠드는 중에 <오징어 게임> 시즌2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다. 호기심에 귀를 쫑긋 세우고 20대 청년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오징어 게임> 공개 후 달라진 반응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딱지남을 연기하는 공유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딱지남을 연기하는 공유 ⓒ 넷플릭스

사실 지난해 12월 26일, <오징어 게임> 시즌2가 막 공개됐을 때만 해도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호평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극의 진행은 늘어지고 이전 시즌에서 보여줬던 임팩트는 없어졌으며 잔혹함만 남았다는 부정적 평이 많았다.

그런데 공개된 지 10일여가 지난 지금, 미국은 '오징어 게임 열풍'에 휩싸였다. 각종 밈이 쏟아지고, 맨해튼 중심가에 '오징어 게임 체험관(Squid Game: The Experience)'도 생겼다. 직접 게임을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로 티켓이 빠르게 매진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나오는 음식은 물론 운동복과 운동화, 화장품, 게임 도구, 소품을 이용한 콜라보 상품들이 줄을 이었다. '호주 맥도날드처럼 미국에도 빨리 달고나가 포함된 오징어게임 세트를 판매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 중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미국의 인기 슈팅 게임(FPS· 게임 플레이어가 1인칭 시점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슈팅 게임)중 하나인 '콜오브듀티(Call of Duty)'의 오징어 게임 이벤트에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시청자의 의견도 나뉘더니, 아들과 친구들도 평도 비슷했다. 어떤 장면, 어떤 인물, 어떤 게임마다 호불호가 갈렸다. 얼른 게임이 시작되지 않아 지루했다는 평도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할 충분한 시간이 있어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편의 강렬한 빌런(villain·악당)이 없었다는 말에 다른 친구는 "대신 (비트코인에 투자한 유튜버 캐릭터 등) MZ스런 빌런이 나왔다"고 했다.

'트렌스젠더' 조현주에 보인 관심

 <오징어 게임2>의 트랜스젠더 조현주는 박성훈의 전작 전재준을 잊게 해줄 만큼 강렬한 캐릭터다.
<오징어 게임2>의 트랜스젠더 조현주는 박성훈의 전작 전재준을 잊게 해줄 만큼 강렬한 캐릭터다. ⓒ 넷플릭스 화면 캡처

미국에서 <오징어 게임> 시즌2를 본 이들은 딱지맨(공유 분) 외에 프런트맨 역의 이병헌 배우와 조현주 역의 박성훈 배우에 관심을 보였다. 아들 친구는 박성훈 배우가 극 중에서 '언니'라고 불리다 보니, 언니가 이름인 줄 알았다고 했다. 아들은 오빠, 언니, 형 같은 한국식 호칭을 일러주기도 했다. 이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트랜스젠더 군인이라는 주제로 옮겨갔다.

개인적으로 조현주 캐릭터를 보며 '변희수 하사'를 떠올렸다. 극 중 성전환자인 조현주라는 인물이 특전사 출신으로 설정된 부분에서 잠시 뜨끔했다. '변희수 하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성별을 선택하느냐와 별개로 개인의 재능과 역량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터이다. 절차나 상황, 여건에 따라 사회적 고민도 더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미국 역시 트랜스젠더 군인이나 운동선수와 관련해 여전히 진통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첫날, 모든 트랜스젠더 군인을 미군에서 추방하겠다고 공언해 왔고,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인력 보강이나 군내 여성 리더십과 관련해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강하다.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에 대한 제한적 조치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나소카운티의 경우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는 카운티 내 경기장 사용을 금하는 행정 명령이 내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현주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반전 매력이 미국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아들의 친구는 "한국은 총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그럼 어떻게 다들 싸우는 거야?"라고 물었다. 이에 또 다른 친구가 "BTS 맴버 입대 소식 못 들었냐"며 "한국 남자들은 다들 군대를 가는데 군대에서 군사 교육을 받는다. 태권도는 기본이고"라고 답했다.

K 놀이와 서바이벌

 친구들과 연말 모임을 하러 가는 아들에게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놀이 도구와 간식을 챙겨 줬다.
친구들과 연말 모임을 하러 가는 아들에게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놀이 도구와 간식을 챙겨 줬다. ⓒ 장소영

아들과 친구들은 어느새 K전통 놀이로 대화 주제를 바꿨다. 아들은 나를 두고 '공기놀이 마스터'라 불렀다. 아무래도 놀이를 가르쳐 달라고 할 것 같아, 공기놀이 세트도 꺼내고 신문지로 딱지를 접기 시작했다. 로제의 '아파트'가 유행하면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는 놀이를 가르쳐 줬는데, 점점 알려줘야 할 놀이가 늘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주변에서는 다들 '공기놀이'를 좋아한다. 어느 연말 모임에서는 시범도 보였다. '오징어게임'에서는 공깃돌을 바닥(테이블)에 흩뿌려서 한 단계씩 해 나갔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던 대로 공깃돌 하나를 공중에 던지고 재빨리 나머지를 바닥에 흩었다. 단계마다 두 개씩, 세 개씩, 네 개씩 붙어 놓이는 공깃돌에 서커스를 보는 듯 엄마들과 아이들이 감탄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이 외에도 K 놀이를 알려달라는 요청도 종종 받고 있다. K 놀이를 알려주는 유튜브 없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오징어 게임>을 안 봤으면서도 관련 놀이는 궁금해하며 알고 싶어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문장이 다소 길고 발음이 어려운지 미국에서는 'Green light, Red light' 놀이로 바꿔서 즐기기도 한다.

아들의 친구들은 놀이뿐 아니라 <오징어 게임> 속의 '서바이벌'에 자신들의 상황을 대입하기도 했다.

"나는 시즌2를 보기 직전에 영화 '기생충'을 봤었어. 한국의 계급과 문화가 담긴 작품을 보고 바로 '오징어 게임'을 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시즌1은 오락물로만 즐겼다면, 시즌2는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어. 내년에 (대학) 졸업인데, <오징어 게임>속 세상이 마치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서바이벌하듯 살아가야 한다니... 내가 너무 무겁게 본 걸까?"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긴 청년들의 대화에 마음이 저렸다. 서로 반목하는 세상, 인생을 서바이벌로 느끼게 만드는 세상을 물려주고 있다는 죄책감도 들었다. <오징어게임> 시즌3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함께 살아가고 함께 노는 세상'을 담아낼 누 있을까. <오징어 게임> 속 어떤 캐릭터들이 외면한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 이 작품의 여러 인물 속에서 더 강하게 보여질 수 있을까.

전문가의 평가와는 별개로 이곳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을 각자에 맞게 소비하며, 공유하고, 놀이로 즐기고 있다. 어린 시절, 놀이가 끝나면 서로를 가르던 편은 없어지고, 친구로 돌아갔다. <오징어 게임> 시즌3, 그리고 우리의 현실도 그러면 좋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 2.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 2. ⓒ 넷플릭스







#오징어게임#K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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