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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고물상>이란 제목 자체가 60대 중반인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현지영 작가가 고물상을 직접 운영했던 엄마 덕에 고물상 추억을 직접 그린 그림책이다. 일단 정감 있는 그림책이라 그런지 그림이 주욱 눈으로 빨려들어왔다.

그냥 마음이 찡했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기도 하지만, 고물상 아저씨에 대한 추억은 나의 경험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유일한 군것질이 집에서는 누룽지였고 사먹는 것은 엿이었다. 아직도 '엿 사려-' 하면 가위 두들기는 엿장수 아저씨의 구성진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론 늘 용돈이 부족해 대개 고철 등을 모았다가 그걸 고물상에서 나온 분한테 팔아서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부산의 현직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현지영 작가가 서울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해서 신도림 어느 카페에서 12월 30일, 퇴근 후인 오후 7시가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그림책 이미지처럼 따뜻한 정감이 물씬 풍겨나오는 외모와 말투, 그림책 속 쌍둥이 주인공이 튀어나온 듯했다. 현 작가는 쌍둥이 언니로 동생은 대전에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고 한다.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첫 그림책을 펴낸 현지영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첫 그림책을 펴낸 현지영 ⓒ 김슬옹

먼저 현직 공무원이 이렇게 대중적인 책을 낼 수 있느냐고 했더니 겸직 신고를 해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필자보다 열 살은 어렸지만, 어렸을 적 추억은 공감되는 바가 많아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갔다.

- 대략 짐작은 했지만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셨죠? 첫 그림책의 소재를 힘겨웠던 시절 이야기로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얼마전 인사동에서 원화 전시를 했습니다. 사실, 전시회 제목을 '현지영 그림책 작가 데뷔전'으로 하려고 했었습니다. 저의 그림책 작가로서의 데뷔작품은 저를 있게 해준 엄마의 고물상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풍족한 가정환경도,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수준높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도 아니지만, 엄마가 계셨기에 풍족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던 고물상 이야기를 물질과 재산이 소중한 이 시대에 해주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6.25 전쟁 참전 용사로 전쟁의 상흔으로 인해 가정을 잘 지킬 수 없어 어머니가 고물상을 하며 5남매를 힘겹게 키우셨다고 한다. 94세의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다고 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쌍둥이 동생을 통해 소감을 받아 보았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딸이 나에 대한 그림을 예쁘게 그려줘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내 이야기로) 책 나온 거 보니 신기합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 이제는) 고물상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보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나서 고맙습니다. 혼자서 애들 키우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행복했습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생각나고, 보고 싶습니다."

그림책 ≪엄마의 고물상≫의 실제 주인공, 현지영 작가 어머니 주옥순 씨(94)
그림책 ≪엄마의 고물상≫의 실제 주인공, 현지영 작가 어머니 주옥순 씨(94) ⓒ 현소영

- <엄마의 고물상>에서 글과 그림 모두를 작업하셨는데, 그림 작업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은 무엇인가요?

"첫 그림책이라 정식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다른 작품들을 통해 독학했습니다. 먼저 이야기의 큰 줄기를 잡고 세부 이야기를 만들면서 떠오르는 장면들을 스케치했죠. 스토리보드를 만들며 자료도 많이 모았고요. 70년대 초반 고물상의 느낌을 따뜻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일반 스케치북에 색연필을 사용했습니다. 온갖 잡동사니와 흙바닥, 동물들, 금이 간 담장을 섬세하게 표현했죠. 42장의 그림을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 그림이 따뜻해요.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특별히 전달하고 싶으셨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5개월간의 채색 작업 전에 이치구 아저씨, 금순이 언니 등 습작을 많이 그렸어요. 사실 고물상은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위험한 물건도 많고 좋지 않은 사람들도 드나들었죠. 하지만 엄마가 계셨기에 그곳이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공간이 되었어요. 가난하고 더럽고 위험할지라도, 엄마의 사랑이 있는 곳은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게 느껴진다는 걸 전하고 싶었습니다."

- 글과 그림을 동시에 작업하며 느끼신 도전이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그림책은 어린이책이라기보다 수준 높은 예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주는 역할도 하고요. 저는 권정생 선생님의 <무명저고리와 엄마>와 <강아지똥>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작업이 글과 그림을 동심으로 엮어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되길 바랐고, 나아가 타인을 위한 치유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 독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점이 있으신지요?

"요즘 청년들과 아이들이 많이 아픕니다. 소통이 어렵고,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죠. <엄마의 고물상> 속 엄마는 혼자서 오남매를 키워내야 했지만, 지금도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십니다. 94세인 어머니의 말씀처럼, 저도 그때가 제일 즐거웠어요.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대신 고생해주는 게 아니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씩씩한 힘과 즐거움을 발견하길 바라며, 저도 창작활동에 매진하겠습니다."

전업 작가로 나설 생각은 없느냐고, 물으니 작가는 정색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부산시 공공 디자인 관련 일이고 자신이 그림책 그리듯 실제 일에 접목시키니 재미있고 보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공무원으로서 겪는 수많은 경험이 그림책 그리는데 중요한 자극이 된다고 한다. 그림책에 대한 직장 동료들의 반응도 그래서 좋다고 한다.

이 그림책이 2025년 볼로냐 국제도서전 출품작으로 뽑힌 이유가 아마도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세계인들이 누구나 공감하는 그림으로 그려서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엄마의 고물상>(현지영 작가 글 그림) 표지
<엄마의 고물상>(현지영 작가 글 그림) 표지 ⓒ 현지영





#그림책#현지영#고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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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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