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는 르네 마그리트의 명화이다. 매우 세밀하게 파이프를 그리고 나서는 파이프가 아니라고 적어 놓았다. 그림의 원제는 <이미지의 배반>이다. 이 작품은 현실과 이미지의 차이를 드러내고, 우리의 세계 이해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정치의 배반, 이것은 정당이 아니다.
ⓒ 이혁규
이러한 마그리트의 상상력을 빌려서 작품 하나를 구상해 보았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 가서 직접 찍은 사진이다. 그 밑에 "정치의 배반, 이것은 정당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이 사진은 초(超)현실주의 작품일까, 아니면 극(極)현실주의 작품일까? 르네 마그리트가 이를 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다.
비상계엄 후 계속해서 상식을 벗어나게 행동하는 국민의힘
비상계엄은 온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평범한 많은 시민은 국민의힘이 이에 대해 공당(公黨)으로서 합리적으로 대응하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계속해서 상식을 배반하는 결정을 이어갔다.
12월 3일, 국회 본회의장에 참석하지 않거나 당사로 이동하는 등 일관성 없는 행보로 비상계엄을 돕는 듯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12월 7일에는 윤석열 탄핵 표결에 집단으로 불참하며 시민들의 염원을 저버렸다. 이어 12월 12일, 한동훈 당 대표 사퇴 이후 도로 친윤 핵심 인사를 원내대표로 선출하며 내부 쇄신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후, 12월 14일의 2차 탄핵 표결에서도 당론으로 탄핵 반대를 고수했으며, 12월 26일에는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안 표결에서 본회의 불참을 결정하며, 한덕수 권한대행에게도 임명을 반대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무엇보다도, 계엄군이 헌법 기관을 침탈한 엄청난 사건에 대해 현재까지 국민 앞에서 제대로 된 사과와 참회조차 없다. 12월 30일 권영세 비대위원장의 사과는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모호한, 사과 아닌 사고였다. 태극기 부대와 사실상 동조하듯이 윤석열 체포 영장 집행을 방해하려는 모습을 보면, 국민의힘은 더 이상 공당(公黨)이 아니라 공당(恐黨)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정부 정책 추진을 방해하고 정쟁을 일삼으며 탄핵을 남발하는 등 헌법 질서를 위협하므로 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불어민주당에도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적지 않다. 사법 리스크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대응 방식도 여러 가지로 아쉽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여러 가지 결함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군대를 동원하여 헌법 기관을 침탈한 행위를 어떻게 옹호하고 정당화할 수 있을까? 야당의 행동이 경기 규칙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행위에 해당한다면, 비상계엄과 그 옹호는 마치 축구 경기에서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대한 항의로 심판을 무력화시키고 경기장을 뒤집어엎는 행위와 같다.
정치적 대립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행동은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이 사실 자체가 우리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다.
민주적 정당으로서 존립 가능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루소는 일반의지의 개념에 비추어 정당에 대해서 부정적 견해를 밝힌 바가 있다. 정당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할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한계와 나치 정당의 출현과 같은 수많은 역사적 오류를 극복하고 현대 정당 정치는 진화해 왔다. 그리고 폭력에 의해서 상대방을 제압하지 않고 헌법과 법률의 한계 내에서 공존하는 것을 제도로 정착해 왔다. 이러한 정당 정치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국민의힘의 퇴행적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현대 정치는 상호 공존의 게임에서 작동하는 문명적 행위이다. 서로의 대립을 대화와 정치적 토론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런 합의 절차가 잘 작동할 때 루소가 우려하였던 특정 세력의 분파적 이해를 넘어서서 일반의지로 수렴해 간다. 또한, 공동체의 이익을 증진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축제이자 예술로서의 정당 정치로 승화할 수 있다. 그런데 비상계엄에 대한 옹호적 태도는 폭력에 기대는 행위이다. 그것은 정치의 본질을 훼손한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정당(正當)하지도, 정당(政黨)하지도 않다.
이런 문제의식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힘 정당 해산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현재 진행 중이다. 12월 9일에 시작된 '헌법과 법률을 유린한 국민의힘 정당 해산에 관한 청원'에 이미 수십만 명이 동의하였다.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는 국민동의청원 조건인 5만 명을 훨씬 넘겼다. 정당 해산 심판 청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청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의 국회 청원이 직접적인 정당 해산으로 당장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민의힘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서 다루는 것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다. 그것은 정치의 사법화 및 사법의 정치화라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를 더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거대 정당의 해산 문제를 헌법재판소에서 다루는 것 자체가 우리 정치사의 후진적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힘이 스스로 환골탈태(換骨脫退)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건전한 정당으로 스스로 거듭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외부에 존립을 맡기기 전에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 우선이고 최선이다. 다행히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이들이 국민의힘 내부에도 존재한다. 김상욱, 김예지, 한지아 같은 이들이 그러한 사례다. 조경태 역시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냈으며, 유승민은 외부에서 국민의힘의 퇴행을 비판하며 보수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일관성 없는 태도로 빈축을 사기도 했으나, 한동훈도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 찬성을 주장했다. 특히, 외롭게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김상욱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까지 국민의힘 내부에서 상식적인 목소리는 미약하기만 하다. 이제라도 보수의 양심적인 많은 이들이 내부에서부터 정당을 재건하는 데 혼신(渾身)을 다해야 한다. 정당의 간판만 바꾸는 형식적 변화는 그만두라. 바꾸어야 할 것은 정당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다. 당장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내란 사태 종식과 정국 안정을 위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나아가서 극우와 명확히 단절하고,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하고, 철저한 내부 쇄신을 통해 민주적 정당으로 스스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만이 대한민국 정치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까지도 루이 16세는 세상이 달라진 것을 모르고 화려한 연회를 계속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이후 국회 본회의장 불참, 탄핵 표결 집단 불참, 헌법재판관 임명 반대, 체포 영장 집행 방해 등 스스로 퇴행적 역사를 쓰고 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인식과 행동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의 거대 정당이 위헌 심판을 통해 해산되는 비극적인 역사를 목도할지 모른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변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균형 있는 발전을 바라는 평범한 시민의 간절한 소망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거의 소진되어 가고 있는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말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