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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바다를 끼고 살아온 사람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모두 다른 이유로 그곳에 머물렀지만, 바다와의 인연은 하나였다.

숙박업을 운영하던 민박집 주인은 한때 바다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했고, 횟집 상인은 바다의 풍요로움을 손님들에게 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단순히 바다가 좋아 그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바다는 삶의 일부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사근진-순긋해변 고향을 잃은 마을 주민들이 옛삶터를 찾았다. (2025/1/23)
사근진-순긋해변고향을 잃은 마을 주민들이 옛삶터를 찾았다. (2025/1/23) ⓒ 진재중

"사라진 고향,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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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이들은 삶터를 뒤로하고 떠나야만 했다. 땅속에 묻혀버린 고향은 더 이상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그들에게는 실향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했던 이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이곳에서의 추억과 감정은 여전히 가슴 깊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다시금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라진 고향의 기억을 함께 되새겼다.

"여기는 단순히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니었어요. 우리 삶의 중심이자 역사가 깃든 고향이었죠." 정현옥(67세) 실향민은 감회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삶터가 물리적으로 사라졌을지라도, 고향에 대한 그들의 애정과 기억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이날의 만남은 단순한 방문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평생을 살아온 삶터였던 그곳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터전이 아니지만, 기억 속의 고향은 여전히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사근진-순긋마을 45가구가 터를 잡고 살던 어촌마을(2022/12)
사근진-순긋마을45가구가 터를 잡고 살던 어촌마을(2022/12) ⓒ 진재중

"고향의 그리움 담아, 지역 역사와 미래를 잇는 노력"

잃어버린 삶터에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은 이 마을에서 뿌리를 두고 살아온 전찬길(64세)씨다. 전씨는 고향집이 철거되고 공원이 조성된 후 고향을 가슴에 묻은 실향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면서, "삶터를 한순간에 잃은 마을 주민들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주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전씨는 지역의 역사를 이곳에 녹여 지역사회와 깊이 연결하기 위해 협의체를 만들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청했다. 이들과 함께한 사람들은 강원대학교 해안침식 전문가와 리빙랩연구진이다.

사근진-순긋해변 안심해변으로 조성된 공원에서 해안침식 전문가와 마을주민들이 함께하고있다(2025/1/23)
사근진-순긋해변안심해변으로 조성된 공원에서 해안침식 전문가와 마을주민들이 함께하고있다(2025/1/23) ⓒ 진재중

1월 23일, 겨울바람이 스치는 해변은 고향을 찾은 이들에게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사근진-순긋해변은 45가구가 터를 잡고 살아온 소규모 마을로, 경포해수욕장 북쪽에 위치한 아담한 간이해수욕장이다. 경포 해변이 젊은이들이 찾는 장소라면, 이 해변은 조용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사근진-순긋해변 45가구 53개동의 건축물이 자리했던 어촌마을(2022/12)
사근진-순긋해변45가구 53개동의 건축물이 자리했던 어촌마을(2022/12) ⓒ 진재중

"해안침식의 위기와 대책, 인공구조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

그러나, 이곳은 너울성 파도와 이상파랑 내습으로 해안침식이 심각해지면서 위험등급인 D 등급 판정을 받아왔다. 인공구조물인 잠제(수중방파제)를 설치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해안가의 주택과 해안도로는 해안침식에 그대로 노출된 해변이었다. 해양수산부와 강릉시에서는 임시방편으로 복구작업을 매년 해왔으나 그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이에 2020년 제3차 연안정비기본계획에 포함돼 당초 인공시설물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주변 지역 2차 피해 발생이 우려되어 육지에 침식 완충구역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해안 침식을 줄이기 위해 바다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던 그레이 인프라 조성 방식에서 육지에 완충구역을 만드는 그린 인프라 조성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는 수온상승과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해안침식에 근본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공간을 많이 확보해 해안선 자체를 내륙 쪽으로 후퇴시키는 개념이다.

장유비 해양수산부 동해청 과장은 "사근진-순긋해변은 '국민안심 해안'으로 조성돼 나무숲 외에 어떤 인공구조물도 들어설 수 없는 친환경 공원으로, 해안 완충지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강릉시의 해변 녹지축 공원화 사업과 맞물려 연안재해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또한 동해안 명소로 조성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상습침식구역 매년 반복되는 침식지역으로 임시방편으로 침식복구. (2023/12)
상습침식구역매년 반복되는 침식지역으로 임시방편으로 침식복구. (2023/12) ⓒ 진재중
 사근진-순긋해변, 유채꽃밭(2024/5)
사근진-순긋해변, 유채꽃밭(2024/5) ⓒ 진재중

"해안침식 방지를 위한 주민과 전문가들의 협력, 친환경 공법의 필요성"

해안침식 전문가와 강원대학교 리빙랩 연구진들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연안 침식을 막고 안심해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공동으로 기울이기로 했다. 이를 위하여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 지역주민들과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사근진-순긋해변이 안심해변사업에 걸맞게 구조물이 없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친환경 공법을 위해 염생식물(사구식물 )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해안침식 연구를 하는 이형석 박사는 "파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려면 서해안 기지포해변처럼 갯그령, 통보리사초, 순비기나무 등 사구식물을 조성하여 친환경적인 해안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사구식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인호 강원대 교수는 미국 플로리다 해안을 예로 들며, 해안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해안도로와 건물을 후퇴시키고 모래해변을 복원해 공원을 조성한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사근진-순긋해변도 앞에 설치된 돌제와 구조물을 철거하면 해안 복원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관광명소로 변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근진 어촌계 과거를 회상하며 사라진 마을을 설명하는 마을 주민(2025/1/23)
사근진 어촌계과거를 회상하며 사라진 마을을 설명하는 마을 주민(2025/1/23) ⓒ 진재중

"사라진 집, 남은 향수-고향의 정취를 이어가는 노력"

삶의 터전인 고향이 공원으로 변했지만, 주민들은 이곳이 탐방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장소로 계속 남기를 바라면서 파도에 추억을 담아 보낸다.

박삼랑(80세) 사근진 어촌계장은 공원 조성으로 집은 사라졌지만, 이곳이 본래 목적에 맞게 잘 조성되어 탐방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다른 한 주민은 과거 자신의 집터를 바라보며,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이곳이 아름다운 해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발길을 돌렸다.

송동섭 강원대학교 연안항만방재리빙랩 책임교수는 "리빙랩은 주민들과 협력해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사업"이라며, "사근진-순긋, 안심해변이 연안침식을 방지하고 지속적인 관리로 고향을 떠난 주민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근진-순긋해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안현동
사근진-순긋해변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안현동 ⓒ 진재중

#사근진#순긋해변#안심해변#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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