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국을 앞두고 상해공항에서. 앞줄 가운데 소년이 이종찬 전 국정원장. ⓒ 조호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는 중경에서 일제 패망 소식을 듣고 상하이를 거쳐 11월 23일 환국하였다.
백범 일행이 서대문 경교장(京橋裝)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5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미군 장갑차는 일행을 경교장에 내려놓고 곧 철수해버렸다.
임시정부환영준비위원회는 기업인 최창학의 집 죽첨장(竹添莊)과 충무로에 있는 한마호텔을 요인들과 백범의 숙소로 마련하였다. 백범은 환국 이후 줄곧 경교장에서 머물다가 이곳에서 암살되었다.
미군정청 공보과는 6시경 백범 일행이 서울에 도착하였다는 하지중장의 성명을 라디오 방송으로 발표하였다.
"오늘 오후 김구 선생 일행 15명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오랫동안 망명하였던 애국자 김구 선생은 개인자격으로 서울에 돌아온 것이다." 라는, 간단한 공식발표문이었다. '개인자격'을 유난히 강조한 내용이다.
백범 일행의 환국소식이 전해지면서 시내 도처에 환영하는 벽보가 나붙고 환영인사들이 경교장으로 몰려들었다. 취재 기자들도 찾아왔다. 백범은 엄항섭을 통해 귀국성명을 발표하였다. 환국 제1성이다.
김구의 성명
27년간 꿈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 강산을 다시 밟을 때 나의 흥분되는 정서는 형용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조국의 독립을 전취하기 위하여 희생하신 유명무명의 무수한 선열과 아울러 우리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피를 흘린 허다한 연합군 용사들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다음으로는 충성을 다하여 3천만 부모 형제 자매 및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소 등 우방군에게 위로의 뜻을 보냅니다.
나와 나의 동사(同事)들은 과거 20, 30년 간을 중국의 원조하에서 생명을 보지하고 우리의 공작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더욱이 금번에 귀국하는데에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하 각층 각계의 덕택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동사는 중미 양국에 대하여 최대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또 우리 조국의 북부를 해방하여 준 소련에 대하여도 동량(同量)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금번 전쟁은 민주를 옹호하기 위하여 파시스트를 타도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 승리를 얻은 원인은 연합이라는 약속을 통하여 호상단결 협조함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금번전쟁을 영도하였으며, 따라서 큰 공을 세운 미국으로도 승리의 공로를 독점하려 하지 않고 연합국 전체에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겸허한 미덕을 찬양하거니와 동심육력한 연합국에 대하여도 일치하게 사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다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이라고 확신합니다. 나와 나의 동사는 각각 일개의 시민으로서 입국하였습니다. 동포 여러분의 부탁을 맡아가지고 27년간을 노력하다가 결국 이와 같이 여러분과 대면하게 되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에게 벌을 주시지 아니하고 도리어 열렬하게 환영하여 주시니 감격한 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나와 나의 동사는 오직 완전 통일된 독립자주의 국가를 완수하기 위하여 여생을 바칠 결심을 가지고 귀국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조금이라도 가림없이 심부름을 시켜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유익한 일이라면, 불 속이나 물 속이라도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과 또 소련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북쪽의 동포도 기쁘게 대면할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 우리와 함께 이 날을 기다립시다. 그리고 완전히 독립 자주하는 통일된 신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공동 분투합시다.
경교장에서 첫 밤을 지낸 백범은 다음날부터 찾아오는 인사들을 맞기에 쉴 틈이 없었다. 송진우, 정인보, 김병로, 안재홍, 권동진, 김창숙 등이 찾아오고 유명 무명의 인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귀국 후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환국 첫 밤을 지낸 감상을 묻는 질문에 "내가 혼이 왔는지 육체가 왔는지 분간할 수 없는 심경"이라 말하고, '개인자격 환국'과 관련해서는 "군정이 실시되고 있는 관계로 대외적으로는 개인자격이 된 것이나 우리나라 사람입장으로 보면 임시정부가 환국한 것이다."라고 분명한 의지로 밝혔다.
미군정당국은 백범은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하는 국민의 여론을 외면할 수 없어서였는지 이날 저녁 백범의 육성방송을 허락하였다. 단서가 붙었다. 단지 2분 이내라는 조건이었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27년간이나 꿈에서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놓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물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나와 나의 각원(閣員)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완성을 위하여 진격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 동포가 하나가 되어 우리의 국가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시간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기에 오늘은 다암 나와 나의 동사일동(同事一同)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주석 1)
주석
1> 김삼웅, <백범 김구평전>, 480~482쪽, 시대의 창, 2004.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8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