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부터 24일까지 산동성의 문화유산을 답사했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태산과 곡부의 공자유적 답사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태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결합된 복합유산이고 공자유적은 문화유산이다. 약 18회 답사 여행기를 통해 중국 유학의 뿌리와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려고 한다.

▲태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 이상기
한 사람이 운영하는 전문여행사가 있다. ㈜세계문화투어라는 여행사로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을 함께 한다. 국내여행은 능원묘 답사, 서울 성곽 돌기, 북한산성 종주, 남한산성 답사, 인천 근대 문화유산 답사, 수원 화성 돌기, 경주 남산 완전정복, 섬(울릉도, 백령도, 굴업도) 여행 등을 진행한다.
서울 문화유산 답사와 서울, 멋대로 걷다 프로그램도 있다. 해외여행은 중국과 일본을 전문적으로 탐방한다. 일본은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권역을 여행한다. 큐슈 온천여행과 대마도 여행도 진행한다.
중국은 북경 문화탐방과 압록강 백두산 고구려 유적답사를 주로 한다. 산동성의 장보고 유적지와 태산 공자 맹자 유적지 탐방도 자주 한다. 초창기에는 소주 항주 관광 및 황산 트레킹도 진행했다. 장가계 세계자연유산 탐방도 했다. 그리고 복건성/무이산 여행도 꾸준히 진행한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따라가기는 9일 동안 이루어진다. 열하일기 관련 국내 답사로 의주대로 걷기를 진행하기도 한다. 더 나가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여행지가 확대되기도 했다.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묘의 중심건물 대성전(大成殿) ⓒ 이상기
그 때문에 2013년부터 ㈜세계문화투어라는 여행사를 등록하고 좀 더 전문적으로 관광상품을 만들고 있다. 10년 넘게 산동성, 북경, 요동지역, 만주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지난 3년 동안 여행을 접었다가 금년에 다시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백두산 연길 발해유적,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따라가기, 복건성과 무이산 여행, 태산 공자 맹자 유적지 탐방이 그것이다.
이번에 태산 공자 맹자 유적지 탐방에 13명이 함께 했다. 이들은 짧은 기간 집중적인 문화유산 탐방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압록강 백두산 고구려 유적답사를 다녀온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필자는 2013년 복건성과 무이산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오마이뉴스에 14회 연재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여행기를 쓰기 위해 사전에 공부도 하고 현장에 가서 책도 사고 자료도 수집했다. 대표적인 책으로 <유학 곡부(遊學曲阜)> <공자고향 전람(孔子故鄕全覽)> <공자 고사(孔子的故事)> <맹자 고사(孟子的故事)>가 있다.

▲산동박물관 ⓒ 이상기
심지어 산동항공사에 발행하는 월간지 <신항공 新航空 New Air>에서도 좋은 자료를 만날 수 있었다. <제나라와 노나라의 진기한 보물(齊魯瑰寶)>이라는 제목으로 산동박물관의 [화상석 예술전(畫像石藝術展)]을 소개하고 있다. 한나라 때 화상석을 통해 한나라 시대 그림(畵), 스타일(風), 정신(魂)을 보여주고 있다. 서왕모(西王母) 화상석과 공자가 노자를 만나(孔子見老子)는 화상적이 인상적이다. 나중에 이들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원래의 계획
이번 여행은 산동항공으로 제남(齊南)으로 들어갔다 청도(靑島)로 나오기로 계획되었다. 첫날 제남의 산동박물관 표돌천(趵突泉) 대명호(大明湖)를 보고 태안(泰安)에서 잔다. 태안은 태산(泰山)의 남쪽 도시로 인구가 534만 명이나 된다. 태안이라는 이름은 "태산이 편안하면 사해가 다 편안하다(泰山安則四海皆安)"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국태민안(國泰民安)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둘째 날 오전에는 태산의 산신을 제사하는 대묘(岱廟)를 둘러보고, 태산에 올라 오악(五嶽) 중 동악(東嶽)을 트레킹할 것이다. 오후에는 추성(鄒城)으로 이동해 맹묘(孟廟) 맹부(孟府) 맹림(孟林)을 살펴볼 것이다. 추성은 맹자의 고향으로 그곳에 사당과 무덤 그리고 후손이 사는 집이 있다. 계획에는 맹자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는 일정도 있다. 둘째 날 저녁에는 곡부로 이동해 잠을 잘 예정이다.

▲공림의 공자 무덤 ⓒ 이상기
셋째 날은 오전 곡부의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을 보고 치박(淄博)을 거쳐 청도까지 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동 거리가 가장 길다. 치박에서는 강태공(姜太公) 사당을 참배하기로 했다.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 무왕 성왕 3대를 모신 스승으로,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치박은 옛날 제나라의 수도였기 때문에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임치(臨淄)에서는 제릉진(齊陵鎭)에 있는 고차(古車)박물관, 차마갱(車馬坑), 순마갱(殉馬坑)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태산과 곡부다. 그것은 태산이 오악의 으뜸으로 중국의 황제가 봉선(封禪)의식을 진행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봉선이란 하늘과 땅에 제사(祭天祭地) 지내는 것을 말한다. 봉은 하늘에, 선은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이다. 곡부에는 중국 유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주공(周公)과 공자 그리고 그 제자들의 역사적인 자취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주공 사당, 공자 탄생지와 묘 그리고 사당, 안자 사당 등이 있다.
넷째 날에는 청도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살펴볼 것이다. 사실 청도의 역사는 1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1891년 청나라 정부가 교주만((膠州灣)의 교오(膠澳: Jiaoao)에 방어시설을 설치한 게 청도의 시작이다. 1897년 11월에는 독일해군이 교주만을 점령해 중국과 <교오조계조약(膠澳租界條約)>을 체결했다.
이때부터 교오를 식민지의 중심지로 만들어 대규모 건설과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청도의 볼거리는 독일 식민지시대 만들어진 근대 문화유산이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총독 관저와 청도 맥주박물관이다.
계획과는 달리 공자 유적지 탐방이 주가 된 여행

▲주공 사당인 원성전(元聖殿) 내부 ⓒ 이상기
그런데 셋째 날 일정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오전 곡부의 공묘 공부 공림 일정은 계획대로 진행했다. 오후에 치박과 임치로 이동해 순장된 말과 마차를 보아야 하는데, 곡부에서 공자와 유교 성인들의 유적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 때문에 주공묘(周公廟) 안자묘(顔廟) 니산성경(尼山聖境)을 살펴볼 수 있었다. 주공은 주 문왕의 넷째 아들로 무왕과 성왕을 도와 왕도정치를 실행한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유명하다.
주공은 민본(民本)과 덕치(德治) 그리고 예악(禮樂)사상을 새롭게 받아들여 유가(儒家) 사상의 원조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원성(元聖)이라 불린다. 그러한 주공의 사상을 이어받아 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 공자다. 그 때문에 공자는 지성(至聖)으로 불린다. 주공은 나중에 노나라(魯國)의 왕으로 봉해져 노국의 시조가 되었다.

▲니산성경의 공자상 ⓒ 이상기
안자는 원래 이름이 회(回)고 자가 연(淵)이다. 그는 공자의 수제자였으나 마흔의 나이로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나중에 안자로 높여 불리게 되었다. 주공묘와 안자묘는 모두 곡부에 있다. 이들을 보고 나서 니산진(尼山鎭)에 있는 니산성경을 찾아갔다. 니산성경은 공자의 사상과 학문을 기리는 복합 문화여유(文化旅遊) 공간이다. 니산 오봉(五峰)과 소기하(小沂河)가 배산임수 형국을 이루는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공자가 태어난 부자동(夫子洞)이 있으며, 공자의 아버지가 살던 노원촌(魯源村)과 어머니가 살던 안모촌(顔母村)이 가까이 있다. 니산은 중국문화의 원류인 유학이 태어난 성산(聖山)이고, 소기하는 성수(聖水)고 부자동은 공자가 탄생한 성지(聖地)여서 성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니산성경은 공자상, 금성옥진(金聲玉振) 광장, 대학당(大學堂), 칠십이현랑(七十二賢廊)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5년 12월 72m 높이의 공자 동상이 만들어졌고, 2018년 9월에는 9층으로 높이가 65m나 되는 대학당이 개관했다.

▲공자가 태어난 니(구)산의 부자동 ⓒ 이상기
이곳 니산성경에는 송나라 때인 1043년 중건한 공묘와 니산서원이 있다. 공묘와 니산서원은 1975년 대대적으로 수리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1994년 곡부에 있는 공자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 때 이들도 포함되었다. 공묘에서 강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동굴을 만나는데, 그것이 부자동이다. 이곳에서 공자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어머니 안징재(顔徵在)가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부자동은 1978년 현재의 모습으로 정돈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여행은 맹자보다는 곡부의 공자 유적지 탐방이 주가 되었다. 공자가 태어나서 공부하고 후학을 가르치다 죽어 묻힌 자취를 하루 종일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공자는 유학사상을 집대성하고 후학을 양성해 유교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공자 사상은 인생철학이고 정치이론이다. 공자 사상의 핵심은 인(仁)이고, 인간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 예(禮)고, 화합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중용(中庸)이다.
여기서 귀인숭례(貴仁崇禮) 덕치인애(德治仁愛)라는 말이 나왔다. 중용의 중(中)은 중정(中正)과 중화(中和)를 말한다. 용(庸)은 길(道)이고 방법(用)이다. 공자는 인과 예 그리고 중용을 통해 대동세계라는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
공자에게서 시작된 유가 사상은 중국 역사와 문화의 바탕이 되었고, 전통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공자가 없었다면 중국문화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공자의 사상을 세계화하기 위해 중국 사람들은 공자연구원, 대학당, 공자학당 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