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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공초(全琫準 供招)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전봉준 공초이다. 전봉준 공초는 이전의 글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전봉준 공초(全琫準 供招)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전봉준 공초이다. 전봉준 공초는 이전의 글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전봉준 공초(全琫準 供招)

「3차 공초는 흥선대원군의 사자(使者)인 송희옥 관련문제, 흥선대원군 효유문 등을 다뤘으며, 특히 송희옥과 대원군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추궁하였다. 삼례대회와 재기포, 대원군 효유문의 진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문제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전봉준 제3차 심문과 진술
을미(1895) 2월 19일 전봉준 3초문목
(乙未 二月 十九日 全琫準 三招 問目)

문(問): 네가 일전(日前)에 답변할 때 송희옥(宋喜玉)을 모른다고 하였는데 희옥(喜玉) 두 글자가 이름이냐 호(號)인가?
공(供): 희옥은 이름이고 자(字)는 칠서(柒瑞)이다.

문(問): 네가 이미 삼례역에서 송희옥과 함께 동모(同謀)한 바 있은즉 어찌 그의 이름과 자(字)를 자세히 모른다고 할 수 있는가?
공(供): 송희옥은 본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으로 홀연히 갔다가, 홀연히 오고하여 실재의 거처가 확실하지 않다.

문(問): 송희옥에 대해 듣자니 전라도(全羅道)의 도집강(都執綱)이요, 또한 너와는 친척간이라던데 이제 대답한 것을 들은즉 오로지 허물을 감추려고 숨기고 있으니 바르게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의심스럽구나. 하물며 너의 죄(罪)의 경중(輕重)이 송희옥을 감싸는 데 있지 아니하고 희옥의 죄상이 네가 덮어준다고 될 일이 아닌즉 오로지 신뢰할 수 있는 대답을 해야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한 것이냐?
공(供):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송희옥은 본디 부황(浮荒)한 무리로서 지난번 일본 공사관의 물음에 대답할 때 영사(領事)가 글 한 편을 내어 보이는데 그것이 송희옥의 글씨체였다. 그 글은 흥선 대원군과 상통(相通)한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내가 깊이 생각해본즉 그가 이러한 말을 꾸며 시국(時局)의 힘을 빌리려한 것으로 보이며, 이와 같은 거짓을 지어냄은 실로 남자가 할 일이 아니요, 또한 이는 존엄(尊嚴)을 모독(冒瀆)하고 공연히 시국의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 그를 덮어준 것이다.

문(問): 남자의 말은 비록 백 마디가 맞더라도 만약 한 마디라도 거짓이 있으면 백 마디 모두 속인 것이 된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어제 모른다고 한 것이라든가 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 어찌 모두 거짓이 아니겠는가?
공(供): 심신(心神)이 혼미(昏迷)하여 과연 잘못된 바가 있었다.

문(問): 송희옥이 갑오(甲午) 9월에 쓴 글에 의하면 어제 저녁에 두 사람이 비밀(秘密)리에 내려와서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개화파에서 먼저 효유문(曉喩文)을 따르면 뒤에 비밀리에 소식이 있으리라 하였다. 이는 누가 보낸 편지이기에 너는 역시 모른다고 하는가? 지난번 너의 대답에서 작년 10월 재차 기포한 것은 일본군이 군대를 이끌고 입궐한 것이라고 했으며, 이해(利害)의 소재(所在)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백성들을 위하는 자는 일각(一刻)을 안심할 수 없어 거사(擧事)가 있었다고 하였다. 이는 대원군으로부터 비밀 소식이 뒤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인데 그러고도 너의 재차 기포와 암암리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공(供): 그동안 비록 이러한 무리들의 왕래(往來)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평소에 그 얼굴을 알지 못했으니 그 중대한 사건을 그런 사람과 어찌 의논하겠는가? 그러므로 행적이 수상한 사람은 하나도 만나지 않았다.

문(問): 남원부사(南原府使) 이용헌(李用憲)과 장흥부사(長興府使) 박헌양(朴憲陽)이 입은 피해는 모두 누구의 소행이더냐?
공(供): 이용헌의 피해는 김개남(金開男)이 한 일이었고 박헌양의 피해는 누구의 소행인지 잘 모르겠다.

문(問): 은진(恩津)에 사는 김원식(金元植)이 입은 피해는 누구의 소행으로 보느냐?
공(供): 공주(公州)의 동학(東學) 괴수(魁首)인 이유상(李裕相)이 소행이요,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문(問): 작년에 재차 기포할 때 너는 조정에서 보낸 효유문(曉喩文)을 네가 보지 못하였느냐?
공(供): 대원군의 효유문은 보았지만 조정에서 보낸 효유문은 보지를 못하였다.

문(問): 비록 조정의 효유문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나 이미 대원군의 효유문을 보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일의 때가 어떠한지를 헤아리지 함부로 백성을 움직여 무단(無端)히 소요를 일으켜 백성으로 하여금 재난에 빠지게 하였으니 이 어찌 신하된 자가 할 일이더냐?
공(供):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함부로 백성을 움직였으니 과연 이는 잘못된 일이었다.
아룀(白)

녹두장군 전봉준 마지막 모습 녹두장군 전봉준 마지막 모습은 이전의 글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녹두장군 전봉준 마지막 모습녹두장군 전봉준 마지막 모습은 이전의 글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 동학혁명기념관

전봉준 제3차(2회) 심문과 진술
을미(1895) 2월 19일 전봉준 3초문목 일본영사 문초
(乙未 二月 十九日 全琫準 三招問目 日本領事 問招)

「전봉준은 거듭되는 심문과 진술에 의해 심신이 몹시 지쳐있었다. 더구나 심한 부상에다가 병든 몸으로 온갖 고문까지 받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아마 견디기 힘든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3차 심문과 진술을 하다가 중단하고 휴식을 가진 뒤 다시 3차 2회 문초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전봉준 제3차 심문과 진술까지는 일본 영사가 회심으로 참여하여 재판을 주도 지시한 것으로 판단되며, 주로 법무아문 대신 서광범이 심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3차(2회)부터는 일본영사가 직접 심문에 나섰고, 전봉준과 우치다 사다츠지의 치열한 공방이 시작된다. 」

문(問): 송희옥의 글 가운데 이른바 대원군의 글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정확히 알았는가?
공(供): 송희옥은 본디 부랑(浮浪)자이므로 이를 미루어 그렇게 말한 것이며 또 설령 대원군이 이런 일이 있다면 마땅히 먼저 나에게 알렸을 것이지 송희옥에게 먼저 의논했을 리가 없다.

문(問): 송희옥은 너보다 지위가 높은 것이냐 낮은 것이냐?
공(供): 별로 높고 낮음을 가릴 것이 없고 서로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문(問): 송희옥은 재차 기포할 때에 너와 의논하지 않았는가?
공(供): 내가 기포할 때에 비록 참석은 했지만 처음에는 좌(左)가 옳다 우(右)가 옳다 하여 말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문(問): 송희옥의 일 중에서 좌가 옳으니 우가 옳으니 하는 말이 없었더라면 가짜라고 하는 그 대원군의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 이유는 무엇인가?
공(供): 송희옥의 편지는 처음 한 포(包)로 시작되었으며, 비록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기도 어려우나 나의 일에 있어서는 관계하지 않고 지켜만 보았다.

문(問): 송희옥과 네가 이미 같은 포(包)가 아니라면 쌍방 간에 하는 일에는 서로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공(供): 그렇다.

문(問): 그렇다면 송희옥의 거짓 편지에 대하여 너는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는가?
공(供): 송희옥은 처음부터 서울에서 머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여 그렇게 말하였다.

문(問): 네가 진술한 앞뒤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송희옥은 본디 너와 친한 자이나 줄곧 모른다고 말하니 이 또한 의심스러운 일이다.
공(供): 지난번 귀관(貴館)에서 답변할 때 내어 보인 글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자들에 관한 것 같아 역시 모르는 바이므로 만약 그 글을 읽어본 자로 대한다면 반드시 그 글의 내력(來歷)을 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혹(疑惑)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잠시 그렇게 거짓말로 대답하였다.

문(問): 그렇다면 너에게 이로운 것을 물어보면 대답하고 너에게 불리한 것을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공(供): 이해(利害)를 따지는 마음에서 그런 것은 아니나 특별히 의혹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그러했다.

문(問): 전라도 사람이 말이나 행동을 이랬다저랬다 하며 일정하지 않다고 일찍이 들은 바가 있으나 이제 네가 말한 것은 역시 그러한 버릇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질문이 오래되면 정상(情狀)은 스스로 밝혀지는 법이니 비록 한마디라도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공(供): 송희옥의 한 가지 일은 비록 속여서 말했다 하더라도 그 나머지는 처음부터 한마디도 거짓으로 말한 꾸밈이 없다.

문(問): 이번 재판(裁判)은 양국(兩國)이 관계된 심판(審判)이므로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친 처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히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여 한때를 넘기려고 속인다면 탐관오리를 응징하여 몰아낸다던 처음의 말도 모두 믿지 못할 것이 된다.
공(供): 수개월 동안 묶여 갇혀 있었고 또한 병(病)에 걸린 몸이라 한마디쯤 실수한 것이 없지 않다.

문(問): 송희옥과 너는 인척(姻戚) 관계가 없는가?
공(供): 처족(妻族)으로 7촌(七寸)이다.

문(問): 기포할 때 어느 곳에서 처음 보았는가?
공(供): 비록 삼례에서 처음 보았으나 실제로 한 포(包)에서 일한 적은 없다.

문(問): 처음 만났을 때 무슨 일을 논의하였는가?
공(供):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하고 나 역시 추후(追後)에 기포하여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문(問): 그때가 언제인가?
공(供): 작년 10월 재차 기포할 때이나 날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문(問): 너의 재차 기포는 무엇을 위함이었느냐?
공(供):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모두 말하였다.

문(問): 너와 송희옥이 삼례에서 만났을 때 혹시 대원군의 말이라고 핑계로 둘러댄 것이 없었느냐?
공(供): 송희옥이 대원군으로부터 내려왔다고 말하면서 2월에 속히 위로 올라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기에 내가 무슨 증거가 될 만한 문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문서를 보여주지 않는 것을 책망(責望)하였더니 대답이 횡설수설(橫說竪說)하여 실로 황당무계(荒唐無稽)하였다. 또한 나는 대원군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당연히 하겠다고 대답했다.

문(問): 삼례에서 기포할 때 군중(群衆)의 수는 얼마나 되었는가?
공(供): 4천여 명이었다.

문(問): 그 뒤 접전(接戰)은 언제 있었는가?
공(供): 삼례에서 기포한 뒤 20여 일이 지나서 처음으로 접전했다.

문(問): 송희옥의 말에 의하면 대원군으로부터 두 사람이 내려왔다고 하였는데 그들의 이름은 누구인가?
공(供): 그때 들었을 때는 알았지만 지금은 기억하기 어렵다.

문(問): 두 사람의 이름을 비록 똑똑히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성이나 이름이라도 끝내 기억할 수 없느냐?
공(供): 그 성은 박(朴)가와 정(鄭)가였던 것 같으나 자세히 모르겠다.

문(問): 박(朴)과와 정(鄭)가라면 박동진(朴東鎭)과 정인덕(鄭寅德)이 아닌가?
공(供): 박동진은 분명하나 정(鄭)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문(問): 박동진과 정인덕은 송희옥을 만나 어떤 말을 하였느냐?
공(供): 송희옥이 말하기를 대원군은 역시 네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문(問): 송희옥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공(供): 이번에 올라오면서 듣기로는 고산(高山)에서 민병(民兵)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나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문(問): 대원군의 효유문(曉喩文)은 어떻게 얻어 보았느냐?
공(供): 9월 태인의 본집에 있을 때 한 명의 접솔(接率)이 베껴다가 보여주었다.

문(問): 그때도 세력이 뻗어나 바로 기포할 때였느냐?
공(供): 그때는 집에서 병을 치료할 때이므로 기포할 뜻이 없었다.

문(問): 그 무렵 전라도 내에는 동학도의 소요가 없었느냐?
공(供): 그 무렵에는 김개남 등이 여러 고을에서 소요를 일으켰다.

문(問): 여러 고을이라 함은 어디를 말하는가?
공(供) : 순창(淳昌), 용담(龍潭), 金山(금산), 장수(長水), 남원(南原) 등이며 그 나머지는 자세히 알지 모른다.

문(問): 대원군(大院君)의 효유문(曉喩文)은 단지 한 번만 보았는가?
공(供): 그렇다.

문(問): 효유문은 무슨 말로 꾸며져 있었는가?
공(供): 『너희들의 이번 소요는 실로 수령들이 탐학(貪虐)과 백성들의 원통(寃痛)함에 말미암은 것이니 앞으로는 관리의 탐학을 반드시 다스리고 백성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줄 것이니 각자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약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마땅히 왕명으로 다스리리라.』고 말했다.

문(問): 효유문에 도장의 자취가 있었는가?
공(供): 내가 본 것은 베낀 것이므로 도장은 없었으나 관청에 도착한 원본(原本)에는 도장이 있다고 들었고 이를 방방곡곡(坊坊曲曲)에 게시하여 붙였다.

문(問): 방방곡곡에 붙였다면 일은 누가 하였는가?
공(供): 관(官)에서 나온 사람들이 하였다고 들었다.

문(問): 효유문은 누가 가지고 갔는가?
공(供): 주사(主事)의 직함을 지닌 자가 가지고 갔다고 들었다.

문(問): 그때 본 효유문을 네가 보기에 진짜였는가, 가짜였는가?
공(供): 이미 관에서 내걸어 붙였으니 어찌 이를 가짜로 보겠는가?

문(問): 너는 이미 그것이 진짜인 줄 알았으면서도 어찌 다시 기포하였는가?
공(供): 일본의 속내를 상세히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문(問): 이미 상세히 속내를 안 뒤 장차 무슨 일을 하려고 계획하였는가?
공(供):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을 하고자 하였다.

문(問): 네가 재차 기포한 것은 대원군의 효유문을 믿지 못해서인가?
공(供): 지난날 조정의 효유문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실시되지 않아서 백성의 뜻을 위에 전달하기 어렵고 임금의 은덕(恩德)을 살피기가 어려워 일차(一次)로 서울에 이르러 백성의 뜻을 자세히 진정하고자 하였다.

문(問): 이미 효유문을 보고서도 감히 재차 기포한 것은 실수한 바가 아닌가?
공(供):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 전에는 깊이 믿기 어렵기 때문에 재차 기포하였는데 어찌 실수라 하겠는가?

문(問): 앞서 말한 실수라 함은 무슨 말인가?
공(供): 앞서 실수라 말한 것은 시사(時事)를 자세히 알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효유문을 보았다거나 못 보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問): 네가 재차 기포한 것은 대원군의 효유문이 개화파(開化派)의 압박에 의한 것으로 보고 아울러 대원군이 너희들이 한양으로 올라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거사(擧事)를 행한 것인가?
공(供): 대원군의 효유문이 개화파로부터 압박(壓迫)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내가 생각한 바 없고, 재차 기포한 것은 나의 본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또한 비록 대원군의 효유문이 있었다고 해도 깊이 믿기 어려웠으므로 재차 기포를 도모(圖謀)하게 되었다.

문(問): 일본군이 대궐을 침범하였다는 말은 언제 들었는가?
공(供): 7~8월 사이에 들었다.

문(問): 누구에게서 들었는가?
공(供): 소문이 널리 퍼져있으므로 자연히 알게 되었다.

문(問): 이미 의병을 일으킨다 하였으면 소식을 들은 즉시 행동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10월까지 기다렸는가?
공(供): 때마침 몸이 아팠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아울러 새 곡식이 아직 익지 않아서 자연히 10월까지 이르렀다.

문(問): 대원군이 동학과 관련이 있는 것은 세상이 모두 아는 일이다. 또 지금 대원군이 위엄(威嚴)과 권세(權勢)가 없은즉 네 죄(罪)의 경중(輕重)은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대원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너는 끝까지 바른대로 말하지 않고 대원군이 두둔해 줄 것만을 깊이 믿는 것 같은데 이는 과연 무슨 뜻에서인가?
공(供): 대원군이 다른 동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비록 수백 무리라 하더라도 나와는 처음부터 관계된 바가 없다.

문(問): 대원군이 동학과 관계했다는 것은 세상이 모두 아는 일인데 어찌 너만 못 들었다고 하는가?
공(供): 정말로 아직 듣지 못하였다.

문(問): 대원군이 동학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처음부터 하나도 듣지 못하였는가?
공(供): 그렇다. 나의 것도 숨기지 않았는데 하물며 남의 것을 숨길 리가 있겠는가.

문(問): 송희옥이 대원군과 관계 있는 것을 너도 알고 있었느냐?
공(供): 송희옥과 대원군은 전혀 관계가 없다.

문(問): 그들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아는가?
공(供): 송희옥과 대원군의 관계에 증표(證票)가 있으면 모르겠으나 그들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 밝혀질 것이다.
아룀(白)

탐진강 전야 농민화가 박홍규의 '탐진강 전야'이다.
탐진강 전야농민화가 박홍규의 '탐진강 전야'이다. ⓒ 박홍규

<도움말>
_사람들의 본이름이나 자(字)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을 가리킨다.
_남자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 본명 외에 부르는 호칭을 이른다.
도집강_동학의 교직인 육임 가운데 세 번째 직위 '집강'을 이르던 말, 여기서는 송희옥이 도집강이란 것은 전라도 집강소의 책임자라는 말이다.
부황_언행에 조심스러움이 없는 들뜨고 거친 사람을 이른다.
부랑_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 없이 떠돌아다님, 여기서 송희옥에게 부랑자라고 말한 것은 전봉준의 본심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한 포_동학에서 조직단위인 接(접)과 包(포)에서 한 포가 아니라는 것은 같은 포 소속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상_구체적 범죄에 대한 처벌의 가볍고 무거운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사정을 말함
인척_혼인 관계로 맺어진 친척을 말함
처족_아내의 친정 겨레붙이를 말함
횡설수설_일의 앞뒤 없이 말하는 것을 뜻하며, 명확한 논리 없이 어떤 주제나 의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황을 말함
황당무계_말이나 행동이 헛되고 터무니없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이르는 말
접전_전력이 서로 비슷하여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 싸움을 이르는 말
민병_민보군(民堡軍), 관군의 지원을 받는 민간인들로 조직된 군대를 일컬음
접솔_동학 조직인 접에서 일을 보는 수하를 이르는 말
시사_그 당대 사회에서 일어난 일, 국내외 시국에 관한 일을 말함
개화파_조선 말기 개화를 주장한 정치세력을 일컫는 말로, 통설로 개화변(開化邊)이라고 하였다.
증표_어떤 일에 증명이나 증거가 될 만한 표, 여기서는 증거에 대한 물증 등을 말한다.




덧붙이는 글 | 이윤영 기자는 동학혁명기념관장입니다.


#동학#천도교#동학혁명#동학농민혁명130주년#수운최제우선생탄신2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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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은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장」,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공동의장,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또 현(現)천도교선도사·직접도훈, 전(前)전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전(前)전주민예총 고문, 전(前)세계종교평화협의회 이사 등 종교·환경단체에서 임원을 엮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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