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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공초(全琫準 供招)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전봉준 공초이다. 전봉준 공초(全琫準 供招)는 법무아문 재판관(法務衙門 裁判官)과 일본영사(日本領事)가 심문(審問)하였고, 전봉준이 진술한 내용으로 모두 5차에 걸친 질문과 답변의 275개 문항이다. 이 사진의 전봉준 공초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공개한 자료이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 복사본을 전시중이다.
전봉준 공초(全琫準 供招)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전봉준 공초이다. 전봉준 공초(全琫準 供招)는 법무아문 재판관(法務衙門 裁判官)과 일본영사(日本領事)가 심문(審問)하였고, 전봉준이 진술한 내용으로 모두 5차에 걸친 질문과 답변의 275개 문항이다. 이 사진의 전봉준 공초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공개한 자료이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 복사본을 전시중이다.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녹두장군 전봉준 마지막 모습 녹두장군 전봉준 마지막 모습(연재 글에서 몇 번 설명을 붙였음으로 생략합니다.)
녹두장군 전봉준 마지막 모습녹두장군 전봉준 마지막 모습(연재 글에서 몇 번 설명을 붙였음으로 생략합니다.) ⓒ 동학혁명기념관

전봉준 공초(全琫準 供招)

전봉준 제2차 심문과 진술
을미(1895) 2월 11일 전봉준 재초문목
(乙未 二月 十一日 全琫準 再招 問目)

「전봉준 2차 공초는 주로 불법적 탐학의 문제와 중앙세력인 민씨의 부정행위, 초토사 홍계훈과 전주에서 맺은 약속, 전봉준이 동학 접주가 된 동기, 동학교단의 조직와 역할, 동학 2차 기포의 동기와 목적, 흥선대원군과 소모사 관련, 법헌 최시형과의 관계 등을 다뤘다.

또한 심문자가 동학에 대해 물어봤을 때 전봉준은 의미있는 평가를 한 반면 또한 가볍게 평가를 하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전봉준의 동학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답변 등의 견해는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 동학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그런 답을 했다고 생각한다.
둘, 전봉준은 동학에 있어 사회적인 실천가이지 교단의 신앙인이 아니다. 더구나 당시 정신과 육체가 몹시 힘들 때라 신중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셋, 기록자가 동학에 대하여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이기 때문에 일부러 낮게 평가하는 의미로 그렇게 기록했다는 생각이다.」

문(問): 네가 작년 3월에 기포한 뜻은 백성을 위하여 해로운 것을 제거할 뜻으로 하였다는데 과연(果然) 그러했는가?
공(供): 그렇다.

문(問): 그렇다면 내직(內職)에 있는 자들이나 외임(外任)을 맡은 관원이 모두 탐학(貪虐)했는가?
공(供): 내직에 있는 자들도 매관육작(賣官鬻爵)을 일삼으니 내외를 막론하고 모두 가 탐학한 것이다.

문(問): 그렇다면 전라도 일대의 탐학한 관리를 제거하기 위하여 기포했느냐, 아니면 8도(八道)를 일체(一體)로 제거하려는 뜻도 함께 있었느냐?
공(供): 전라도 일대의 탐학한 무리를 몰아내고 또 내직으로 매작(賣爵)하는 권신(權臣)을 모조리 쫓아내면 팔도가 자연히 하나가 될 것이다.

문(問): 전라도 감사(監司) 이하 각 고을의 수재(守宰)가 다 탐관인가?
공(供): 십중팔구(十中八九)는 그렇다.

문(問): 어떤 일을 가리켜 탐학(貪虐)이라 하는가?
공(供): 각 고을의 수재(守宰)가 상납(上納)이라 칭하고 혹은 가렴(加斂) 결복(結卜)하고 호역(戶役)도 함부로 징수(徵收)하고, 잘사는 백성에게는 공연히 죄를 씌워 돈과 재물을 빼앗고 전장(田庄)을 침범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이다.

문(問): 내직(內職)으로 매관(賣官)하는 자는 누구인가?
공(供): 혜당(惠堂) 민영준(閔泳駿)과 민영환(閔泳煥), 고영근(高永根) 등이다.

문(問): 이 사람들뿐이었는가?
공(供): 이 밖에도 역시 많았으나 모두 기억할 수 없다.

문(問): 이들이 매관(賣官)한 것을 어찌 그리 분명하게 아느냐?
공(供): 세상 사람들의 입으로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문(問): 너는 어떤 방법으로 탐관(貪官)들을 제거하려 하였느냐?
공(供): 별도로 계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본심(本心)이 백성을 편하게 하는 일에 간절하였으므로 관리의 탐학(貪虐)을 보고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일을 일으켰다.

문(問): 그렇다면 소장을 올려 원통함을 말하지 않았는가?
공(供): 감영과 고을에 소장을 올린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다.

문(問): 감영과 고을에는 네가 친히 소장(訴狀)을 올렸는가?
공(供): 매번 뜻한 바를 내가 짓고 소장은 원민(寃民)들로 하여금 관청에 내게 하였다.

문(問): 그렇다면 조정에도 원통함을 상소한 적이 있었는가?
공(供): 조정에 상소할 길이 없어 홍계훈(洪啓勳) 대장(大將)이 전주에 유진할 때에 그 연유를 써서 올렸다.

문(問): 그때 수령들이 모두 부패했는데 비록 소장을 올린다 해도 어찌 들어 주겠는가?
공(供): 비록 그러하나 호소할 곳이 그곳밖에 없어 부득이 소장을 올렸다.

문(問): 감영과 고을에 소장을 올린 것이 언제인가?
공(供): 작년(昨年) 정월(正月)과 2~3월 사이었다.

문(問): 정월 이전에는 소장을 올리지 않았느냐?
공(供): 정월 이전에 고부(古阜)에는 백성의 송사나 청원뿐이었으므로 특별한 소장은 올리지 않았다.

문(問): 감영과 고을에 여러 차례 소장을 올렸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으므로 기포(起包)하였는가?
공(供): 그렇다.

문(問): 너는 고부군수로부터 피해가 많지 않았는데 무슨 연유로 이러한 거사를 행하였는가?
공(供): 세상 일이 날로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 분연히 한 번 세상을 건져볼 뜻이 있었다.

문(問): 너와 공모한 손화중(孫化中), 최경선(崔慶善) 등은 모두 동학을 대단히 좋아하였는가?
공(供): 그렇다.

문(問): 소위 東學(동학)이란 어떤 주의(主意)이며 어떤 도학(道學)인가?
공(供): 마음을 지켜 충효(忠孝)로 근본(根本)을 삼아 보국안민(輔國安民)하자는 것이다.

문(問): 너도 동학을 몹시 좋아하는가?
공(供): 동학은 수심경천(守心敬天)하는 도(道)이기 때문에 나도 매우 좋아한다.

문(問): 동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공(供): 동학이 시작된 것은 30여 년 전에 비롯되었다.

문(問): 어느 사람이 시작하였는가?
공(供): 경주(慶州)에 사는 최제우(崔濟愚)이다.

문(問): 지금도 全羅道(전라도)에는 동학을 존숭(尊崇)하는 자가 많은가?
공(供): 난(亂)을 겪은 뒤에는 목숨을 잃는 자가 속출하여 지금은 많이 줄었다.

문(問): 네가 기포할 때 거느린 무리는 모두 동학도인가?
공(供): 이른바 접주(接主)는 모두가 동학도이지만 그 나머지 거느린 자들은 충의지사(忠義之士)라고 일컫는 자가 많았다.

문(問): 접주(接主), 접사(接司)는 무슨 직책의 이름인가?
공(供): 부하들을 거느리는 영솔(領率)의 호칭이다.

문(問): 그렇다면 접주, 접사란 기포할 때에 군기(軍器)와 군량미(軍糧米)를 마련하는 자인가?
공(供): 모든 일에 있어서 다 지휘(指揮)하는 사람이다.

문(問): 접주, 접사는 본래부터 있었느냐?
공(供): 이미 전부터 있었으나 기포할 때 혹 창설한 것도 있다.

문(問): 동학 중에 무리를 거느리는 지휘자가 접주, 접사뿐이냐?
공(供): 접주, 접사 이외에도 교장(敎長), 교수(敎授), 집강(執綱), 도집(都執), 대정(大正), 중정(中正) 등 여섯 종류가 있다.

문(問): 접주라는 사람은 평소에는 무엇을 하는가?
공(供): 별로 하는 일이 없다.

문(問): 이른바 법헌(法軒)이란 어떤 직책(職責)인가?
공(供): 직책이 아니라, 장로(長老)의 별칭이다.

문(問): 이상의 여섯 가지 직책은 무슨 일을 하는가?
공(供): 교장과 교수는 어리석은 자를 가르치며, 도집은 풍력(風力)이 있고 기강(紀綱)이 밝아야 하고 경계(經界)를 알아야 하며, 집강은 시비(是非)에 밝아 기강을 바로 잡고, 대정은 공평(公平)한 마음을 가지고 삼가 교인을 후원하며, 중정은 능히 직언을 할 수 있고 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

문(問): 접주와 접사는 직책이 같은가?
공(供): 접사는 접주의 지휘를 듣고 행하는 사람이다.

문(問): 이상의 많은 직위는 누가 차출(差出)하느냐?
공(供): 법헌(法軒)이 교도(敎徒)의 능력이 적고 많음을 보아 차례로 차출한다.

문(問): 동학 중에는 남접(南接)과 북접(北接)이 있다던데 남·북접을 어떻게 구별하느냐?
공(供): 호남(湖南)을 남접이라 칭하고 호중(湖中)은 북접이라 칭한다.

문(問): 작년에 기포할 때 각종 내세우는 일들은 어떻게 지휘하였느냐?
공(供): 각기 맡은 것을 행하였다.

문(問): 각기 맡은 것은 너의 지휘를 듣고 행하였는가?
공(供): 내가 다 지휘하였다.

문(問): 수심경천(修心敬天)하는 도(道)를 어찌 동학(東學)이라 칭하는가?
공: 우리 道(도)는 동쪽에서 나왔기 때문에 동학이라 칭한다. 처음부터 본뜻은 시작한 사람이 분명히 알 일이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칭하는 것을 따라서 그렇게 칭하였다.

문(問): 동학에 들어가면 능히 괴질(怪疾)을 벗어날 수 있다는 과연 그런가?
공(供): 동학경전에 이르기를, 3년 괴질(怪疾)이 앞으로 있다하니 경천수심(敬天守心)하는 사람만이 이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문(問): 동학이 8도(八道)에 전하여 모두 퍼졌는가?
공(供): 5개도(五道)에는 모두 교(敎)를 행하였으나 서북(西北) 3도(三道)는 모르겠다.

문(問): 동학을 배우면 병을 면하는 외에 다른 이익은 없는가?
공(供): 다른 이익(利益)은 없다.

문(問): 작년 3월 기포할 때는 탐관을 제거한 뒤에 또 어떤 일을 하려고 하였는가?
공(供): 별다른 뜻은 없었다.

문(問): 작년 홍계훈 대장에게 절목(節目)을 올린 것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
공(供): 그렇다.

문(問): 절목을 올린 뒤에 탐관을 제거한 징조(徵兆)가 보였느냐?
공(供): 별로 징조가 없었다.

문(問): 그렇다면 홍계훈 대장이 백성을 속인 것이 아니냐?
공(供): 그렇다.

문(問): 그렇다면 백성들은 왜 다시 어찌 원통함을 호소하지 않았느냐?
공(供): 그 뒤에 홍계훈 대장은 서울에 있었으니 어찌 다시 원통함을 호소할 수 있었겠는가.

문(問): 재차 기포한 것은 일본군이 대궐을 침범한 탓이라고 말했는데 재차 거사 뒤에는 일본군에 대하여 어떤 일을 하려 하였느냐?
공(供): 대궐을 침범한 연유에 대해 책임을 캐묻고 꾸짖고자 하였다.

문(問): 그렇다면 일본군과 서울에 머무는 각외국인을 물리쳐 몰아내고자 하였는가?
공(供): 그렇지는 않고, 각국의 사람들은 단지 통상(通商)만을 할 뿐이지만 일본인들은 서울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므로 우리나라의 영토를 침략하려는 것이라고 의심을 아니 할 수 없었다.

문(問): 이건영(李健永)이란 사람은 아는가?
공(供): 잠시 만났었다.

문(問): 만났을 때 무슨 말이 있었는가?
공(供): 그는 자기가 소모사(召募使)라고 말하기에 '소모사라면 마땅히 어느 곳에 소모영(召募營)을 설치하라'고 내가 말하였지만 나와는 더불어 상관이 없다고 하니 그만 금산(錦山)으로 먼저 갔다.

문(問): 그를 어느 곳에서 만났는가?
공(供): 삼례역(參禮驛)에서 만났다.

문(問): 이건영을 만났을 때 그는 어디에서 왔다고 하였는가?
공(供): 서울에서 왔다고 말했다.

문(問): 누가 그를 보냈다고 하였는가?
공(供): 정부(政府)로부터 파견되었다고 말했는데 그 뒤 3~4일이 지나 들어보니 가짜 소모사라 하기에 잡아들이도록 명령했다.

문(問): 소모사를 가히 증거(證據)할 문서가 있었는가?
공(供): 가히 증거할 문서는 보지 못했다.

문(問): 그 무렵에 네가 거느리고 있던 도당(徒黨)은 몇 명이었는가?
공(供): 수천(數千)여 명이었다.

문(問): 그 밖에 소모사라 칭하면서 기포를 권한 사람은 없었는가?
공(供): 그런 사람 없었다.

문(問): 송정섭(宋廷燮)을 아는가?
공(供): 그가 충청도 소모사라는 소문만 들었다.

문(問): 재차 기포할 때 최시형 법헌(法軒)과 의논(議論)하였느냐?
공(供): 의논하지 않았다.

문(問): 최시형 법헌은 동학의 괴수(魁首)인데 동학당(東學黨)을 모집하면서 어찌 의논이 없었느냐?
공(供): 충의(忠義)는 각자의 본심(本心)에서 우러나오는 것인데 하필이면 법헌과 의논한 뒤에 이 일을 하겠는가.

문(問): 작년 8월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공(供): 태인(泰仁)에 있는 나의 집에 있었다.

문(問): 그 나머지 도당(徒黨)은 다 어디에 있었느냐?
공(供): 각기 자기 집에 있었다.

문(問): 충청도 천안(天安) 지방에도 너의 도당이 있느냐?
공(供): 그곳에는 나의 도당이 없다.
아룀(白)

[목판화] 금강 농민화가 박홍규의 목판본 '금강'이다.
[목판화] 금강농민화가 박홍규의 목판본 '금강'이다. ⓒ 박홍규

<도움말>
내직_기관의 중앙부서에 있는 직책을 말함
외임_예전에 지방 관청의 벼슬을 이르던 말이다.
탐학_욕심이 많고 포악하다는 뜻
매관육작_돈이나 재물을 받고 벼슬을 시켜주다.
팔도_조선시대, 전국을 여덟 개로 나눈 행정구역
매작_작위, 벼슬 등을 등급으로 나눠 판다는 말
권신_권력이 높거나 힘이 있는 신하
수재_고을의 수령,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을 이르는 말
가렴_조세, 금전이나 재물 등을 정한 액수보다 더욱 거두어들이는 일을 이르던 말
결복_조선 시대, 토지 넓이의 단위인 결, 짐, 뭇을 한꺼번에 이르는 말
호역_부역, 집집마다 모두 나와서 의무적으로 하는 힘든 일을 이르던 말
징수_행정기관이 법에 따라 조세나 수수료 따위를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인다는 말
전장_농가, 농촌 등 밭과 토지의 넓은 땅을 이르던 말
비일비재_어떠한 일들이 한두 번이나 한둘이 아니고 많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
매관_돈이나 재물을 받고 벼슬을 시켜주는 것을 말함
소장_청원할 것이 있을 때에 관청에 내는 서면을 뜻한다.
도학_조선 시대에 크게 번성한 유교 철학, 여기서는 동학이 유교에 비교해 무슨 철학사상인가를 여쭙는 말
수심경천_마음을 지키고 하늘을 공경함을 이르는 말
최제우_1860년 동학을 창도한 천도교 제1세 교조를 이르는 말
존숭_높이 받들어 공경하고 숭배함을 이르는 말
_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뜻
접주_동학의 조직인 접의 책임자를 이르는 말
충의지사_충성스럽고 의리가 있는 선비를 뜻하며, 요즘말로 정의롭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접사_접주를 보좌하는 직책을 이르는 말
법헌_동학 2세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별칭으로서 도와 덕이 높다는 것은 물론이고 동학의 최고 지도자로서 동학종단의 법을 집행하고 교도들을 통솔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장로_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사람을 존중하여 이르는 말
풍력_여기서는 사람의 위력을 뜻함
교도_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 여기서는 동학에 입도한 동학도인을 뜻함
괴질_원인을 알 수 없이 확산되며 증상이 심한 악성 질병을 이르는 말
경천수심_하늘을 공경하고 마음을 지킨다는 동학의 수행방법을 이르는 말
절목_초목의 마디와 눈. 나무를 꺾거나 부러뜨림을 뜻한다.
소모사_군사를 모집하는 임시 직책
도당_불순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이룬 무리, 여기서는 동학당을 이르는 말

덧붙이는 글 | 이윤영 기자는 동학혁명기념관장입니다.


#동학#천도교#동학혁명#동학농민혁명130주년#수운최제우선생탄신2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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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은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장」,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공동의장,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또 현(現)천도교선도사·직접도훈, 전(前)전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전(前)전주민예총 고문, 전(前)세계종교평화협의회 이사 등 종교·환경단체에서 임원을 엮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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