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에 실시된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 출마한 김충기 중앙농협장 후보측의 선거자료. ⓒ 오마이뉴스 구영식
"금뱃지, 금열쇠. 금두꺼비(각 5돈 합계 15돈) 증정과 해외선진지 견학 100% 무료 실시"
어느 대기업의 연말행사 행운권 추첨이 아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내건 사은행사도 아니다. 자동차 회사가 판매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판촉 행사도 아니다. "전국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이라는 농협의 지역 선거에서 한 후보가 내건 '공약'이다. 놀랍게도 이 '공약'을 내건 후보는 지역조합장에 당선했다. 이것은 '서울 중앙농협'에서 일어난 일이다.
성동농협이 뿌리... 김충기 조합장, 2019년과 2023년 잇달아 당선
서울 중앙농협의 뿌리는 지난 1972년에 설립된 '성동농협'이다. 서울 성동구 내 11개 이동조합이 합병해 성동농협을 설립했고, 지난 2001년 '중앙농협'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동안 7명의 조합장이 조직을 이끌어왔고, 재작년(2023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조합원은 총 1120명(2023년 현재)이고, 조합장과 상임이사 2명, 비상임이사 9명을 포함해 총 14명의 임원과 149명의 직원(기간제 42명 포함)이 근무하고 있다(2025년 1월 현재).
지난 2010년에는 상호금융예수금 1조 원을, 2018년에는 1조 5000억 원을, 2021년에는 2조 원을 달성했다. 지난 2021년에는 최초로 당기손익 100억 원을 달성했고, 2022년에는 금융자산 4조 원을 일구어냈다. 지난 2023년 8월 현재 상호금융예수금은 2조 5000억 원에 이른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영업이익 113억여 원과 45억여 원을 기록했다.
1987년 민주화 시기 전에는 농협·수협·산립조합 조합장이 임명제였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조합원들이 직접 조합장을 선출해 왔다. 하지만 금품 제공과 조작 등 부정선거가 많아지자 지난 2005년부터 산림조합을 시작으로 농협과 수협까지 선거사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했다. 그런데도 '돈 선거'가 끊이지 않아 선거관리위원회 주관하에 전국 조합장을 동시에 선출하도록 관련법(농협법, 수협법, 산림조합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2015년 3월 11일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실시됐다.
서울 중앙농협도 법 개정 이후인 지난 2015년과 2019년, 2023년 세 차례에 걸쳐 조합장 선거를 치렀다. 2015년에는 손형희 후보(324표, 50.46%)가 6표 차이로 김충기 후보(318표, 49.53%)를 누르고 당선했다. 하지만 2019년에는 김충기 후보(324표, 52.7%)가 52표 차이로 손형희 후보(47.3%)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2023년에는 김충기 후보(581표, 57.8%)가 염성철 후보(425표, 42.2%)를 156표 차이로 따돌리고 조합장 연임에 성공했다.
공공단체 위탁선거법' 위반 가능성
문제의 약속은 2023년 조합장 선거에서 나왔다. 김충기 후보가 선거 당시 전체 조합원들에게 '금 15돈 증정'과 '무료 해외견학'을 약속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김충기 후보 측 선거자료에는 이렇게 적시돼 있다.
금뱃지, 금열쇠, 금두꺼비(각각 5돈 합계 15돈) 증정과 해외선진지 견학 100% 무료(5월부터) 실시 등을 조속히 실천할 수 있도록 김충기에게 마음을 실어주십시오! 기호 1번 김충기 올림
김충기 후보가 '금 15돈 증정'과 '무료 해외견학'을 내걸고 선거활동을 벌였고, 결국 156표라는 큰 표 차이로 당선했다. 김 후보가 당선한 데에는 종합경영평가 경영향상부문 우수조합상 수상(2020년), 최초 당기순이익 100억 원과 총 자산 2조 원 달성(2021년), 금융자산 4조 원 달성(2022년) 등 경영성과뿐만 아니라 '금 15돈 증정' 등 김 후보의 약속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시 금시세가 1g당 8만 원 정도였다는 사실을 헤아리면 15돈(1돈은 3.75g)은 450만 원 수준이고, 4월 3일 현재 금시세(1g당 14만 원대)에 따르면 836만여 원에 이른다. 만약 김충기 조합장이 선거 직후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면 최소한 50억 원(450만 원×1120명) 이상의 조합비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농협조합장 선거에 적용되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제58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선거인이나 그의 가족 등에게 금전·물품·향응이나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이나 공사(公私)의 직을 제공하거나 제공의 의사를 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김충기 조합장 "법률적 판단 받아... 나중에 얘기하겠다"

▲김충기 현 서울 중앙농협 조합장. ⓒ 서울중앙농협 홈페이지
김충기 조합장은 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난 2023년 선거에서 금배지, 금열쇠. 금두꺼비 등 총 15돈을 조합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네"라고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그 약속에 따라 조합원들에게 금 15돈을 줬느냐?"라는 추가 질문에는 "왜 물어보나? 그것은 취재 대상도 아닌데"라며 "지금 회의 중이어서 나중에 말씀 드리겠다"라고 직답을 피했다. 또한 "이것이 '공공단체 위탁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라고 지적하자 그는 "법률적 판단을 받았다"라고 답변한 뒤 "나중에 얘기하겠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한편 김충기 조합장은 세종대 행정학과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실버타운 선택의사에 관한 결정요인 분석')를 취득했고, 중앙농협영농회장 겸 대의원, 서울시 4-H본부 회장, 한국가족보호협회 자산관리상담소장 등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중앙농협 홈페이지 조합장 인사말에서 "세계 유수기업의 경영 패러다임이 이윤추구와 주주우선주의에서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는 'ESG경영'으로 변화하고 있다"라며 "중앙농협은 그동안 쌓아온 농협의 '최고의 가치'에 '지속가능경영'을 더하여 'ESG 농협경영'이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여 조합원과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100년 농협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라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