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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채화 모녀전(2010년 2월1일~12일, 3월8일~26일 두 차례)을 개최하며 모녀간의 그림 사랑을 널리 알렸던 이영주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이씨의 어머니 고 김향연씨는 60세에 그림 공부를 시작하여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까지 했으나 82세에 치매가 왔다. 요양원에 가지 않고 딸가족과 함께 살며 몰라보게 회복되어 주변 친척들의 감탄 속에 아름다운 생을 마감하셨다.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며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기자말]

 어머니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풀어놓은 이영주 이사장.
어머니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풀어놓은 이영주 이사장. ⓒ 이영주

- 어머니에 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십시오.

"엄마는 충청북도 음성의 두메산골인 ′창골'이라는 곳에서 큰 딸로 1934년에 태어났어요. 그 당시 엄마의 아버지인 외할아버지께서 국민학교까지 공부를 시키신 거예요. 외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철도 역무원을 하시다가 늑막염에 걸리셔서 귀향 후 별세하셨어요. 엄마가 7살 때였어요. 가장이 안 계신 가운데 외할머니 혼자 3남매를 키우실라니 엄마를 중학교에 못 보내신 거죠.

설상가상으로 집에 불이 나서 거의 몰락하는 상태가 되니까 외할머니께서 우리 엄마를 서울 영등포로 시집 보내셨어요. 엄마는 서울로 시집 온 걸 좋아하셨대요. 후에 야간학교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남편인 우리 아버지가 꿈이 많아서 사업하시다가 실패하셨대요. 엄마 꿈도 멀어져 간 거죠."

 60세에 붓글씨 공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하신 만학도 화가이셨던 故 김향연 화가
60세에 붓글씨 공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하신 만학도 화가이셨던 故 김향연 화가 ⓒ 이영주

- 어머니께서 그림을 늦게(1993년도) 배우셨다고요?

"엄마가 슬하에 5남매를 두셨어요. 막내가 결혼한 게 60세쯤이었을 거예요. 동사무소에 주민등록 등본을 발급 받으러 가서 붓글씨반 모집 안내문을 보셨대요. 가벼운 취미 생활의 시작이었죠. 신청하셔서 재미있게 다니시다가 더 수준 높은 사군자반에서도 배우셨고, 또 욕심이 생겨서 서울 영등포 동아문화센터에서 한국화, 수채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때 엄마한테 개량 한복을 사드렸는데 그걸 입고 화선지, 붓, 벼루가 든 가방을 메고 전철을 타기 위해 경기도 부천시 소사역으로 걸어 나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대요. 전시회도 개최하시고 심지어 100호짜리(가로 162 × 세로 112cm) 그림도 그리셨어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서울미술전람회 입선, 한양미술대전 특선,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2000년) 등 여러 차례 수상하셨어요."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모녀전(2010.2.1.~2.12. 부천시 오정구청 갤러리 / 3.8.~3.26. 소사구청 갤러리)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모녀전(2010.2.1.~2.12. 부천시 오정구청 갤러리 / 3.8.~3.26. 소사구청 갤러리) ⓒ 김부규

- 어머니의 삶에서 어떤 걸 배우셨어요?

"저는 늘 두 가지 '엄마만큼만, 엄마처럼만 살면 된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 나이가 50이 넘어가면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지금 이 상황이라면 우리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지금 65세인데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제 판단이 흐려지지가 않더라고요.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는 거예요. 엄마한테 되게 감사하죠. 엄마는 '나는 그래도 참 잘 살았다고 생각해. 시골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제때 못했지만,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며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게 너무나 행복해. 내 삶에 후회가 없어' 이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어요."

- 어머니의 치매는 언제 아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럭저럭 5년쯤 지나고 나니까, 2015년 엄마가 노인성 치매가 오더라고요. 엄마가 지역의 자연생태공원에서 생태식물 해설사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일주일에 두 번 나가고 한 달에 20만 원 정도 급여를 받는 일을 하셨어요. 첫 월급을 받으시고 추석 때 "내가 돈을 벌었다" 하시면서 자식들뿐만 아니라 손주들까지 다 만 원씩 주셨어요.

거기 다니시다가 치매가 오니까 자꾸 깜빡깜빡하시잖아요.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어머니께서 자꾸 깜빡깜빡하셔서 이제 하실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엄마가 그 일을 너무 좋아하셔서 포기시키는 게 아주 힘들었어요. 치매 말고 다른 핑계로 엄마를 포기시켰어요. 활동이 줄어드니까 치매가 금방 더 깊어지더라고요.

엄마 건강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혼자 사니까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고 약 복용도 안 돼서 3개월 치 약 중에서 보름치가 부족한 일이 생겼어요. 약 먹은 걸 까먹고 또 드신 거죠. 며느리나 딸들이 음식을 해다 드려도 그걸 꺼내 드실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더라고요. 냉장고에도 곰팡이가 많아지고요.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날파리가 나오는 거예요. 냉장고가 고장이 난 거예요."

 故 김향연 화가. 가장 최근 모습으로 건강한 노후를 가족과 함께 즐기셨다.
故 김향연 화가. 가장 최근 모습으로 건강한 노후를 가족과 함께 즐기셨다. ⓒ 이영주

- 어머니의 치매가 깊어지자 어머니댁에서 함께 사시기로 하신 건가요?

"엄마의 치매가 깊어지면서 음식을 못 드시고, 약 복용도 안되는 과정들이 점점 심해져서 '엄마를 모셔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제가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어요. 엄마방을 새로 꾸미고 도배도 하고 깔끔하게 정리했건만 엄마는 엄청 불편해 하시더라고요.

우리집에 온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2016년도 봄)에 "택시비 만 원만 줘" 하셔서 위험하니까 저녁에 퇴근하고 같이 가려고 안 드렸죠. 그런데 엄마가 걸어서 엄마집으로 가신 거예요. 큰일나겠다는 생각에 제가 직장 퇴직할 시점도 되고 해서 우리집을 팔고 엄마집으로 이사했어요.

이사 후 엄마가 "내가 내 집이 있는데 왜 니네 집에서 살아야 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집이 있는데 조그만 방 한 칸에 내 물건도 없고 내 이불도 없이 갇혀 사는 느낌이 든 것 같아요. 치매와 더불어 엄마 몸이 전체적으로 쇠약해졌더라고요.

노인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로움'이에요. 노인은 누구든 투닥투닥 티격태격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엄마는 가족들과 대화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어울리니까 건강이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제 아들이 결혼하고서 3층에 들어와서 살았어요. 엄마한테 더 좋은 일이 생긴 거죠. 손주하고 손주며느리까지 생겼잖아요. 또 우리 며느리가 바로 증손주 아기를 낳았어요. 손주며느리가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얼마나 살갑게 했든지 엄마가 생기를 찾은 것 같더라고요.

바깥에 못 다니시고 활동하지 못하고 친구 만나러 갈 자신도 없어진 상태가 되시니까 어느 날 하루는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셨대요. "우리집 3층에 올라가 떨어져 죽고 싶었어. 만약에 그렇게 되면 너희들이 무슨 꼴이 되니? 그러면 안 되잖아?"라고 하셨어요.

엄마랑 같이 살면서도 적응 과정이 필요하더라고요. 무조건 처음부터 엄마라고 해서 사이가 좋을 수는 없어요. 엄마는 워낙 말을 예쁘게 하시고 이해심도 깊어서 큰 다툼은 없었지만, 함께 사는 것은 안 맞는 뭔가를 하나씩 맞춰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故 김향연 화가, 손자, 손자며느리, 증손자와 함께 공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故 김향연 화가, 손자, 손자며느리, 증손자와 함께 공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이영주

- 어머니의 치매가 많이 호전된 게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엄마를 모신 일이에요.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요양원이 나쁘다는 건 아님), 엄마집에서 마지막까지 함께 살면서 엄마의 자존심, 존엄성을 지켜드릴 수 있었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잘한 일 같아요.

엄마가 치매 후에 5년 더 사셨거든요. 시간이 갈수록 엄마 상태가 좋아졌어요. 깜빡깜빡 까먹는 거 외에는 치매가 거의 없어졌어요. 며느리들이 와서 시어머니를 보고선 "어머니가 무슨 치매예요? 치매 아니구만" 이렇게 말할 정도로 좋아졌거든요.

엄마가 저랑 같이 살면서 약 제대로 드시고, 하루 세끼 식사 제대로 하시고, 가족들과 대화 자주 하고, 요양보호사의 돌봄이 제때 이루어진 게 엄마의 여생에 큰 도움이 되었지요. 요양보호사하고도 딸처럼 되게 친하게 지내셨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날 요양보호사와 함께 불고기 식사를 하시고 그 다음날 돌아가셨어요. 함께 식사하는 게 작은 일이지만 내 인생에 어떤 보답 또는 감사를 해야 될 사람이 있으면 그분한테 감사할 수 있는 시간과 뭔가 맛있는 걸 대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故 김향연 화가(맨오른쪽)와 딸 이영주 이사장(가운데)과 큰아들(맨왼쪽)이다. 이영주 이사장의 책 출판기념회에서 기념 사진 한 장 남겼다.
故 김향연 화가(맨오른쪽)와 딸 이영주 이사장(가운데)과 큰아들(맨왼쪽)이다. 이영주 이사장의 책 출판기념회에서 기념 사진 한 장 남겼다. ⓒ 이영주

- 어머니와 함께 사시면서 감사한 일이 있었다면?

"2020년 6월 6일 엄마가 돌아가실 때 저는 하나도 울지 않았어요. 87세 생신 무렵이었어요. 저는 엄마가 마지막 삶을 너무나 아름답게 사시다 돌아가셨다고 생각해요. 그때 더 사셔서 만약에 누워서 병 간호받는 노인이 되고, 코에다 호스 끼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계셨다면 많이 울었을 거예요.

마지막에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커피를 두 잔이나 드시고 구운 계란, 쑥찰떡도 드시고 "맛있다! 이거 다 먹어도 되니?" "엄마 먹으라고 내가 구워놓은 거야" 그렇게 다 드시고 점심 전에 소파에 앉으셔서 눈을 감으셨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많은 것을 정리한 후 '내가 엄마만큼만 살면 정말 성공하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치매셨던 어머니와 같이 사시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일이 있으셨다면?

"엄마는 참 똑똑하셨어요. 엄마가 저랑 같이 살기 전에는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시고 붓글씨 공부, 그림 공부 등 당신이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면서 혼자서 아주 바쁘고 재미있게 사셨어요. 착한 치매가 온 후로 엄마가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없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예를 들면 요리를 할 수 없는 것, 음식 조리 능력을 상실해버려요. 용돈을 드리면 배가 고프니까 편의점에 가서 초코파이, 새우깡을 사다 드세요. 또 당신이 혼자서 어디를 갈 수가 없어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거예요."

- 어머니의 치매를 통해 가장 큰 교훈을 얻은 게 있다면?

"저도 이제 여생이 많이 남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뭔가를 대비할 수 있으면 좋은데... 제가 장기요양요원 지원 일을 하면서 인생 소망 목록 1번으로 꼽는 게 장기 요양 등급을 받지 않는 거예요. 치매가 걸리는 삶이 되면 나의 자주적 존엄성이 다 뭉개져 버리는 거죠. 요양원에 가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고 자식이 결정하는 거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웰빙 식품 먹고, 운동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에요. 욕심 내지 말고 가능한 선한 마음을 갖고 꼭 책을 읽으세요. 눈이 나빠서 책 읽기 힘들면 책을 읽어주는 것도 있으니까 이용하시면 돼요. 의외로 '독서'가 건강 수명을 좌우하는 핵심으로 운동이나 식생활보다 크게 좌우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어요.(일본 NHK방송)"

 故 김향연 화가의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작품이다. 모 경로당 계단실 벽면에 붙어있다.
故 김향연 화가의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작품이다. 모 경로당 계단실 벽면에 붙어있다. ⓒ 김부규

- 엄마와 같이 살면서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을 것 같아요. 또 '부모를 모시는 자녀' 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합니다.

"엄마처럼 어차피 저도 노인이 되어 가는 거잖아요. 내 일이잖아요. 이것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얼마나 큰 존재였어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 말씀 다 잘 듣고 엄마가 밥 안 주면 밥 못 먹었잖아요. 그런 엄마였는데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 해서 함부로 대해서 되겠어요?

부모와 따로 산다는 것 자체가 삶을 배우는 기회를 박탈하는 거예요. 부모로부터 배우고 사람 사는 거를 배우고 부모가 어떻게 늙어가는지를 배워야 해요. 나도 늙을 거니까 나도 저런 모습을 보일 거니까 같이 겪으면서 미리 배워야 하는데 스스로 그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와 자녀는 상호 연결되어 있는 존재지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다음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노후#화가#제2인생#어머니#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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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 저자. 은퇴(퇴직) 후 새 인생을 개척하여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 이야기 인터뷰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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