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면서, 현 정부 주요 정책들도 함께 멈출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탄핵 정국 속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의 내년도 원전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증액된 정부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해 환경단체들이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윤석열과 함께 윤 정부의 친원전 정책도 탄핵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산업부 '원전 예산' 감액 없이 국회 통과…전년 대비 증액
24일 <소리의숲>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부의 내년도 원전 관련 예산은 예년보다 증액된 정부안이 감액 없이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 관계자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올라온 예산 중) 원전 관련 예산은 감액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소리의숲>과의 통화에서 전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가 지난달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산업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원전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22% 늘어난 규모다.
구체적으로는 체코 원전을 지원하는 사업인 '전력해외진출지원사업' 예산 183억원이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올해 해당 예산인 84억원보다 99억원가량 늘어난 액수다. 산업부의 'SMR(소형모듈원전) 제작 지원센터 구축사업' 내년도 예산도 54억원으로 감액 없이 통과됐다. 올해 해당 예산 2억원보다 52억원가량 증액됐다.
산업부의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사업' 내년도 예산 1500억원도 삭감 없이 정부안대로 통과됐다. 올해 해당 사업 예산 1000억원보다 500억원가량 늘어났다. 이 예산은 원전 중소‧중견기업에 시설자금‧운전자금 등 저금리 융자지원을 해 주는 예산이다.
금융위‧과기부 '원전 예산' 일부 삭감됐지만…"미미한 수치" 평가
다만 국회 정무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관 원전 관련 사업 예산 중 일부가 삭감됐다. 구체적으로는 금융위원회가 관장하는 '원전산업성장펀드' 사업 예산이 400억 원에서 50억 원이 감액돼, 350억 원으로 편성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관장 예산인 '민관합작선진원자로 수출기반구축사업(R&D)' 예산도 70억 원에서 7억 원으로 줄었다. 63억 원가량이 감액된 것이다. 이 예산은 이번에 신규로 편성된 예산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체 원전 관련 예산에 비하면 삭감액은 미미한 규모라는 평가가 나온다.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성명을 내고 "정무위‧과방위(에서 올라온) 원전 관련 예산이 삭감되긴 했지만, 산자위 등에 올라온 전체 (원전 관련) 예산 약 5000억 원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치"라고 평가했다.
감액 사유도 기술적 검증 불충분 등으로 알려졌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민관합작선진원자로 수출기반구축사업' 예산 감액 사유와 관련해 "SFR(발전용 소듐냉각고속로)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원전을 실증하기 위한 사업인데, 아직 기술적으로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사유로 조정이 됐다"고 <소리의숲>과의 통화에서 설명했다.
또 '원전산업성장펀드' 예산 감액과 관련해서는 "이 펀드는 일부는 정부가 대고, 일부는 민간이 출자하는 방식으로 조성되는데, 정부가 출자하는 비중이 다른 펀드에 비해 높아서 정부 출자 비중을 낮춘 것"이라며 "전체 펀드 규모는 똑같고 그 중 정부가 출자하는 돈만 50억 원이 감액됐다"고 전했다.
환경단체 "윤석열과 함께 '원전 확대 정책'도 탄핵돼야"
환경단체들은 탄핵 정국인 만큼, 윤 정부의 '원전 확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재논의 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이날 <소리의숲>과의 통화에서 원전 관련 예산과 관련해 "감액이 됐다고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이 변경된 것은 전혀 아니다. '원전 최강국' 정책 기조가 예산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며 "민주당이 지난해에는 원전 관련 예산 삭감 의견들을 계속 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탄핵 정국임에도 ('친원전' 기조의 예산이 바뀌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인 재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며 "핵 발전 예산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예산 등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수연 플랜1.5 정책활동가도 통화에서 "'친원전'은 윤석열 정권의 에너지 정책의 특징 중에 하나"라며 "올해 대비 원전 예산을 확대한 윤 정부 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결정이 안 됐지만 만약 윤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또 대선 정국으로까지 넘어간다면, 원전을 띄우는 윤석열 정권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녹색연합도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탄핵돼야 할 정책'으로 윤 정부의 친원전 정책을 꼽았다. 녹색연합은 "원전 사고 위험도 있고 핵폐기물 처리방안도 없는 상황에서 핵발전의 폭주 행보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며 현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 폐기를 촉구했다.
내년 원전 예산 증액됐는데… 윤 "야당 원전 예산 삭감 폭거" 허위 발언
한편 이처럼 산업부의 내년도 원전 관련 예산이 전년 대비 증액됐음에도 윤 대통령은 '야당의 원전 관련 예산 삭감으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해,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해제 후,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민주당은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무려 90%를 깎아버렸다"며 "차세대 원전 개발 관련 예산은 거의 전액을 삭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거대 야당은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까지 꺼트리려고 하고 있다"며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로 국정이 마비되고 사회 질서가 교란되어, 행정과 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원전 예산 삭감' 등을 대응하기 위해 계엄이 필요했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사업'은 삭감 없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윤 대통령의 원전 예산 관련 담화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허 의원은 윤 대통령의 '야당의 원전 예산 삭감' 주장에 대해 "명백한 거짓말"이라며 "윤석열은 마치 원전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처럼 호도하면서 내란을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리의숲'(https://forv.co.kr)에도 실립니다. ‘소리의숲’은 2024년 9월 문을 연 대안언론입니다. 소리의숲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더 많은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각종 제휴 문의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