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 7일 동안 잘 오다가 서울 넘어가는 남태령 8차선 대로에서 갑자기 경찰이 차 벽을 세우고 트랙터를 막아서는 바람에 대치를 하게 된 건데, 길이 통제되니까 승용차나 버스에 탄 일반 시민들도 하나 둘 씩씩거리시면서 내리는 거예요. 아, 우리는 시민들이 우리한테 욕하려는 줄 알았죠. '농민들이 왜 시위를 해서 차 막히게 하냐' 할 줄 알았죠.
근데 시민들이 우리한테 항의를 하는 게 아니고, 경찰들한테 가서 '지금까지 한 줄로 잘 가시던 분들을 왜 막고 난리냐', '경찰들 빨리 차 빼라'고 마구 소리를 치시는 거예요. 이번에 유명해진 '차 빼' 구호가 거기서 처음 나온 겁니다. 시민들이 먼저 외친 거죠. 내 나이 곧 칠순인데, 그때 막 눈물이 날라 카대요."
하원오(68)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틀 전인 지난 21일 낮 12시 서울 남태령 상황을 회상하며 다시 한번 울먹였다. 하 의장을 비롯한 농민 100여 명은 12·3 내란 사태를 벌인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외치며 트랙터 30여 대, 화물차 50여 대를 끌고 지난 16일 전남 무안과 경남 진주를 출발해 무려 엿새 만에 서울 도착을 앞둔 상태였다.
시속 30킬로미터 트랙터를 타고 6박 7일간 300킬로미터 넘는 길을 달려온 농민들은 경기도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남태령 경계에서 멈춰서야 했다. 트랙터 시위대의 총대장을 맡은 하 의장은 "경기도까지는 신호도 잡아주고 잘 인도하던 경찰이 서울이 되자마자 예고도 없이 '교통 혼잡이 우려된다'며 차 벽을 세웠다"라고 했다. 일부 농민이 트랙터를 몰고 경찰차 벽으로 돌진하겠다며 항의하자, 경찰은 트랙터의 창문까지 깨고 농민을 강제로 끌어냈다.
서울을 코앞에 두고 발길이 묶여버린 농민들을 지켜낸 건 시민들이었다. 하 의장은 "남태령 도로에서 우릴 본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기 시작하더니, 저녁부터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그날 남태령 고개에 오른 1000여 명의 시민들은 영하 6도의 추위 속에 농민들 곁에서 밤을 지새웠다. 각종 SNS에 이 광경이 생중계되자 수많은 시민들이 핫팩과 따뜻한 커피, 설렁탕, 팥죽, 햄버거들을 남태령으로 사 보내 연대했고, 경찰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감시했다. 이윽고 날이 밝자, 응원봉을 들고 남태령에 모인 시민들은 3만여 명까지 불어났다.
이튿날 오후 4시, 경찰은 결국 남태령 대치 28시간 만에 차 벽을 열었고, 협의 끝에 농민들이 탄 트랙터 30여 대 중 10대는 윤 대통령 관저 근처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강진역까지 닿을 수 있었다.
하 의장은 "내 평생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농민들과 함께해준 젊은 여성분들, 시민들이 눈물나게 고맙다"고 했다. 하 의장과 23일 오전 통화할 수 있었다. 이틀간 밖에서 몸을 떤 하 의장의 목소리는 심하게 쉬어있었다.
"겨울 밤 남태령 와준 젊은 여성들… 약자와 같이 행동하겠다는 마음 느껴"
- 21일 밤새워 남태령을 지키고, 차 벽을 뚫으라며 "차 빼"를 외친 주축은 20대 여성들이었다.
"정말 꿈에도 상상 못한 일이었어요. 지금까지 우리 농민들 집회에 그렇게 젊은 분들이 같이 오시거나 한 적이 없었어요. 그 추운 날 밤에 제 손녀뻘 되는 젊은 분들이 밤을 새워 응원봉을 들고 '차 빼'를 외친다는 게… 참 눈물이 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날 여러 시민 분들이 계셨지만, 그 중에서도 20대 젊은 여성분들이 많았다는 건… 아마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같이 행동하겠다는 마음들이 컸던 게 아니었나 싶었어요. 농민들은 그동안 사실 소외돼 있었잖아요. 시골에 멀리 있고. 만약 그날 밤 시민들이 안 계셨으면, 아마 저희 농민들은 다 연행됐을 겁니다. 겨우 100명밖에 안 되는 대오였으니까요... 다들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고…"
- 대치 28시간 만에 경찰차 벽이 뚫렸다.
"지금까지 숱하게 시위를 해봤지만, 이런 적은 저도 처음입니다. 사실 우리 농민들은 별로 힘쓴 것도 없어요. 시민들이 뚫은 거였죠. 남태령 그 고개가 찾아오기도 참 사나운 길이던데. 못 오신 분들은 각종 물품을 넘쳐나게 보내주시고. 다 젊은 분들 힘 같아요. 차 벽이 열리니까, 시민분들이 또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사당역까지 걸어서 같이 가주시고, 다시 지하철 타고 한강진역까지 오셨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라고 감동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번에 윤석열 계엄과 탄핵 과정에서도 봤지만, 겉으로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진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민중들이구나. 농민이고 여성이고 약자들이구나. 이런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 농민 2명이 연행됐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오보입니다. 저희 농민 중에는 연행된 사람이 없어요. 아마 나중에 조사는 받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남태령으로 오던 시민분들 중에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져 연행된 사례가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 트랙터는 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 가운데 하나 아닌가.
"옛날로 치면 소죠. 농민들한테 최고로 필요한 재산입니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걸었다는 건 실상 가진 걸 다 걸었다는 거죠. 근데 그걸 막았으니… 6박 7일 왔으니까 바퀴도 많이 상했을 거예요. 서울까지 트랙터를 끌고 온 농민들의 심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저도 창원에서 나락 농사(벼 농사)랑 하우스 채소 농사를 짓는데, 전농 의장 한다고 하우스 채소는 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내색은 안 하지만 걱정이 많겠죠.
어제 한남동 집회를 마치고 농민들은 다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도 어젯밤에 뻗어버려서 다들 잘 도착했는지 확인도 못 했네요. 트랙터들은 아직 서울에 있어요. 남태령 차 벽 피해서 움직이던 트랙터 3대는 동작대교에 아직 세워져 있을 거고. 동작대교 건너 한남동까지 갔던 10대는 여의도 둔치 주차장에 있을 겁니다. 트랙터로 돌아가려면 또 너무 오래 걸리니까 화물차로 옮기든 해야겠죠. 어제 어떤 농민들은 여의도에 트랙터 대놓고 너무 피곤해서 그냥 여의도 근처에 방을 잡고 쓰러졌대요."
- 한강진에 돌아오던 트랙터에는 '국민의힘 해체, 윤석열 체포' 외에도 '농민헌법 쟁취'란 구호도 걸려있었다. 무슨 뜻인가.
"예컨대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나 노동권을 법으로 보장받지만, 농민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법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어요. 농민들에게도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농민들을 완전히 무시했죠. 양곡관리법을 포함해 농민 4법을 다 거부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친 해에 농민들을 보호하는 내용도 담겨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올해 사과 한 개가 만원, 배추 한 포기가 만원이라고 정말 난리가 났었죠. 근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 농가가 다 망했다는 겁니다. 올해 기상 이변으로 농가들이 정상적으로 농작물을 생산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그만큼 수확 물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값이 비정삭적으로비싸진 겁니다. 그럼 농민들이 그만큼 벌었나? 농가에 한 번 가보세요. 열 집이 농사 지었으면 아홉 집은 망했고, 한 집만 겨우 살아남았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윤 정부는 애초에 농가가 망해가는 건 방치해 놓고는, 그 결과 농산물 가격이 오르니 농민들이 마치 물가 전체를 올린 주범인 양 몰아갔어요. 아니 어디 농산물만 값이 올랐습니까? 모든 물가가 다 올랐는데. 농민들이 제일 만만한 거죠. 겨우 살아남은 10%의 농가들도 비료 값, 사료 값, 기름 값 오른 것 제하면 남는 게 없어요. 그런데 정부는 농산물 가격 내리라고 농민들만 압박했죠. 이러니 참다 참던 농민들이 터진 겁니다. 사실 농민들은 지금까지 많이 외롭고, 억울했습니다.
그런데 어제와 그제, 남태령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우리 농민들이 그걸 다 위로받고도 남을 인생의 경험을 했습니다. 젊은 여성분들이, 시민분들이 혹한의 밤에 모여 농민들의 어려움을 함께해 주고, 또 억울함을 풀어줬습니다. 마음뿐 아니라 몸으로 행동해 주시고, 후원으로 관심을 보내주셨습니다. 농민들도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에 우리도 사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줘서 진짜 고맙습니다. 사실 시골 가면 밤 되고 해 떨어지면 아무도 못 보거든요. 어제 농민들이 전부 다 '살다 살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호응해줄 줄은 몰랐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면서 돌아갔습니다.
게다가 남태령에서 보낸 밤이 동짓날이었잖아요. 그 긴긴밤, 1년 중 제일 긴 겨울밤에 달려와 주신 분들 모두 고맙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고 감동했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달리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네요."
농민들이 경찰차 벽에 막히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21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절기, 동지였다. 동지가 지나면 밤은 조금씩 짧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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