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을 악마의 소굴로 빠트린 양자역학과 나비효과'에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어느 연구과제가 모든 불확실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그 과제는 영원히 연구실 안에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불완전한 인간의 산물이고, 당연히 태생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연구 결과가 밖으로 나오면 퀴리 부인처럼 될 소지가 다분하다. 노벨상을 2번 수상한 퀴리 부인은 빛을 내는 방사능물질이 신기하다고 하여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암에 걸려 죽었다(퀴리 부인이 방사능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에 반론이 많지만, 연구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과학은 계속 발전하며, 당연히 불확실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과학의 모순을 철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두 사람이 있었다. 과학의 패러다임을 주장한 토머스 쿤과 과학 반증주의의 아버지 칼 포퍼다.
패러다임의 대표적인 사례가 지동설과 상대성 이론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세상이 지동설이 옳다구나 하면서 받아들인 게 아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도 계속 지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로부터 시작하여, 13세기 이란의 천문학자 알 투시까지 다양했다. 이미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기름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때마침 그때 코페르니쿠스가 나타나 기름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마찬가지다. 오래전부터 과학계는 역학의 상대적 원리에 관심 가지고 있었다. 상대적 원리란 뉴턴의 고전 역학에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맥스웰과 로렌츠다. 그리고 1904년 푸앵카레가 '상대성 원리'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그다음 해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그 유명한 논문 '운동체의 전기동역학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상대성 이론이 완성되었다.
맥스웰과 로렌츠 등이 사전에 뜸을 들이지 않았다면 상대성 이론은 나오지 못했을 거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공론이다.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지 않았어도, 조금은 늦을 수 있지만, 머지않아 누군가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거였다.
지동설과 상대성 이론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자잘한 물줄기로 흩어져 이곳저곳에 흐르고 있었다. 이 물줄기를 모아 강물로 만든 인물이 코페르니쿠스와 아인슈타인이고, 이처럼 하나의 이론이 득세하는 걸 패러다임 변화라고 한다. 지동설과 상대성 이론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 계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엄밀히 말해 패러다임은 과학적 진실을 다수결로 정한 거나 별반 다르지 않다.
칼 포퍼는 페러다임과는 다른 과학 반증주의 철학을 주장했다. 반증주의 철학의 핵심은 의심이다. 과학의 주체인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당연히 과학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기에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여 모든 의심이 사라질 때 비로소 과학적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칼 포퍼가 주장한 과학 반증주의의 핵심이다.
과학을 다수결로 정하는 패러다임보다, 의심하는 과학 반증주의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학에 더 가깝다. 과학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면,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운영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의 본질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과학은 끝없이 발전하고, 모든 의심이 사라진 결과만 인정했다면, 과학은 인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을 말이다.
"태풍 또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단다. 태풍은 모든 걸 파괴하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하늘과 바다를 깨끗하게 씻어 내기도 하지. 아마 태풍이 발생하지 않으면 더러워진 하늘과 바다 때문에 인간들은 지구를 떠나야 할걸?" <남극 펭귄 생포 작전, 206쪽>
태풍처럼 세상 만물의 진리가 중용(中庸)의 안개 속에 숨어있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았다. 패러다임의 변화로 상대성 이론이 정통과학이 되었지만, 아직도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인 것처럼 말이다.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지 백여 년이 지난 2017년 중력파를 발견하여 3명의 과학자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중력파는 상대성 이론을 통해 제시되었지만,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상대성 이론이 맞다면 생겨야 할 블랙홀 촬영에 성공해 다시금 상대성 이론이 옳다는 걸 만천하에 알렸다.
이처럼 의심 없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건 사이비 과학이고, 과학이 절대 진리를 찾고자 의심만 하는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릉도원을 찾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시, 후쿠시마 방사능과 서해대교 낙뢰
우리나라와 후쿠시마 원전 간 거리는 1000km다. 우리나라와 후쿠시마의 정중앙 동해에 슈퍼태풍이 발생하면 모를까. 사고가 일어난 시기는 태풍은 둘째치고 거대한 저기압도 발달할 수 없는 3월이었다. 작은 저기압이 연달아 발생하여 우리나라까지 방사능을 전달할 수도 있다고 여기겠지만, 저기압은 구술처럼 연달아 발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저기압이란 태생 자체가 옆에 반드시 고기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기상청에서 방사능 유입이 없을 거라고 자신있게 발표했던 거였다.
그럼에도 여론은 계속 의심했고, 국민은 계속 불안해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어느날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 우리나라 방사선영향 없다'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그 당시는 이미 대중의 관심사에서 멀어졌을 때이므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서해대교 낙뢰 사건은 달랐다. 낙뢰도 기상관측의 중요한 요소다. 기상청은 전국에 낙뢰 관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시간 감시했다. 서해대교 화재 당시 낙뢰 관측이 되지 않았으면, 기상 상황을 분석해 보아도 낙뢰가 칠 그런 날씨가 아니었다. 그래서 보수적 관공서인 기상청에서 이례적으로 화재의 원인이 낙뢰가 아니라고 큰 소리 냈던 거였다. 하지만, 최종 결론은 화재 원인이 낙뢰로 밝혀졌다. 기상청에서 구축한 낙뢰 관측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아주 작은 규모의 낙뢰였다. 규모가 작기에 기상 상황도 비교적 좋았다. 아마 그 사건 이후로 기상청 낙뢰 관측 시스템 개선과 분석 능력이 좋아졌으며, 무엇보다도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좀 더 신중하게 대응하겠지.
과학에는 항상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안별로 과학적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야 한다. 기상청을 구라청이라 욕하면서도 아침에 항상 일기예보를 챙기는 이유는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열 번 일기예보에 한 번 틀려도 손해날 건 없다. 하지만, 후쿠시마 방사능 유입 예측은 일기예보와 다르다. 열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당선인의 NBC 방송 인터뷰 중계 ⓒ NBC
지구 온난화는 지구 환경과 생태계 그리고 인간의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므로 세계 각국은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중략)..2015년에는 이를(1997 년 유엔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를 대체하는 파리 협정을 채택해 산업화 이전과 대비하여 지구 평균 기운 상승 폭을 2도 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합의하였다.<지구과학 1, 134쪽>
⇒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는 이 협정에서 곧 미국이 탈퇴할 것으로 예측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첫 대통령 임기 때 협정을 탈퇴했던 이력이 있고, 이번에 재임되면 또 탈퇴한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주축이나 마찬가지인 미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협정이 흐지부지될 소지가 다분하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존재라고 한다. 그렇다면 트럼프를 비롯한 그의 참모들에게 믿음의 근거를 준 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현재의 기후변화가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 때문이다. 과학은 태생적으로 불확실하기에 기후변화과학도 반론이 있는 건 당연하고, 이들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를 과학철학 관점으로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해 보자.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은 일기예보를 대하는 관점(패러다임을 중시하는 과학)으로 기후변화를 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같은 날씨 현상임에도 기후변화와 일기예보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후쿠시마 방사능 그 이상의 파괴력으로 인류를 덮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오랜 기간 날씨에 적응하며 진화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날씨를 '기후'라고 한다. 기후가 급변하면 지구상의 생명체가 대부분 사라지는 이유다. 후쿠시마 방사능은 인류 전체를 위협하지 못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는 아침 일기예보가 틀려 비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의심하고 의심하여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대비해야 하는 게 현재 일어나는 기후변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이전 '과학을 악마의 소굴로 빠트린 양자역학과 나비효과'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