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소설 쓰는 글쟁이가 되었습니다. 최근 작품으로 청소년 소설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밥은 굶더라도 일기예보는 챙깁니다. 밥보다 중요한 날씨 이야기를 24년간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연계하여 최대한 재밌고 쉽게 풀어보았습니다. 특히 이번 기사는 과학철학에 대해 다 같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2편으로 나누어 게재했습니다. 그중에 1편 ‘과학을 악마의 소굴로 빠트린 양자역학과 나비효과’ 입니다.[기자말]

두 사건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오사카 반도 연안에서 규모 9.1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서도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쳐 방사능이 누출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경제협력기구에서 정하는 국재원자력사고등급 중 최고 위험단계로 1986년 소련 체르노빌원전사고와 동급의 대재앙이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방사능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도 불안에 떨었다. 국민의 불안을 불식시키고자 기상청에서는 방사능물질이 한국엔 안 날아 온다고 수시로 발표했다. 대기로 퍼진 방사능은 편서풍을 타고 지구 한바퀴를 돌아 맨 마지막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고, 바다로 흘러간 방사능은 인근을 지나는 구로시오해류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태평양을 한바퀴 돌아야만 우리나라 인근 해안으로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민은 기상청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방사성 물질 기사 동아일보(2011년 3월 14일)
방사성 물질 기사동아일보(2011년 3월 14일) ⓒ 동아일보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5년 12월 서해대교 주탑 케이블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고로 소방관 1명이 사망했고, 2명이 다쳤다.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도로공사, 소방본부 합동으로 화재 원인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낙뢰로 인해 주탑 케이블에 불이 붙어 난 사고로 결론지었다. 그런데, 기상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던 기상청에서 이 결론에 대해 반론을 제시했다. 기상청은 전국에 낙뢰 관측 장비를 설치하여 24시간 감시하는데, 서해대교 화재 사고 시점에 낙뢰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일기예보는 과학의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다. 자연현상을 정확히 관측하여(지구과학과 화학, 천문학), 전 세계 관측자료를 실시간 공유하고(정보통신과학), 수많은 자료를 수치예보 모델(물리학과 컴퓨터과학)을 거쳐 예보를 생산한다. 지금은 1위를 내주었지만, 10여 년 전 만 해도 최고성능의 슈퍼컴퓨터는 항상 기상청 수치예보 모델에 쓰였다.
슈퍼컴 성능 순위 슈퍼컴 성능 순위
슈퍼컴 성능 순위슈퍼컴 성능 순위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인간이 만물의 영장, 즉 호모 사피엔스가 만물을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된 건 종교도, 철학도, 문학도 아닌 과학 때문이다. 아무리 신심이 돈독한 사람도 그날의 날씨를 절대자에게 묻지 않고, 일기예보를 챙겨본다. 철학자나 문학가도 자신이 지닌 지혜로 그날의 날씨를 예측하는 걸 포기하고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가지고 나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한때 인간은 과학으로 신의 경지에 오르려 했다

뉴턴 이전까지 우주 만물의 동작 원리는 신의 섭리라 여겼다. 그러다가 아이작 뉴턴이 나타나 우주 만물의 움직임은 신이 아닌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라는 인과율(因果律)의 법칙이라는 걸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뉴턴의 영향을 받은 라플라스는 '주어진 한순간 자연의 모든 존재의 위치와 운동 상태를 안다면, 미래는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다른 말로, 전 세계에 기상관측망을 촘촘히 구축하면 100% 일기예보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정확한 이동 경로와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변화하는 과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하는 걸 보면 라플라스의 말이 맞는 듯했고, 실제로 뉴턴과 라플라스 등이 활발히 활동하던 17∼18세기에는 신의 섭리를 알아채는 것도 머지않았다고 하면서 희망에 들떠 있었다.

인류사를 뒤돌아봤을 때 항상 신에 도전하려는 인간을 절대자는 그냥 두지 않았다. 바벨탑을 쌓아 신의 경지에 오르려는 인간들에게 각각 다른 언어를 만들어 소통을 못하게 하여 흩어지게 했으며, 극심한 가뭄에 태양을 떨어트린 중국의 요순시대 예라는 사람은 이 일로 신의 노여움을 사 혹독한 고초를 당했다. 당연히 인과율이란 과학 도구로 신의 경지에 오르려는 인간을 절대자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절대자는 거만해진 인간을 양자라는 악마의 소굴로 빠트렸던 거였다.

관측을 하지 않으면 파동의 형태로 있다가 관측당하면 입자가 된다는 양자역학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위대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조차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양자역학을 부정했다. 물결이나 소리처럼 파동의 형태였다가, 누군가에 의해 관측당하면 입자가 된다고? 인류가 구축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꽃모자해파리가 떼로 몰려다닌다는 걸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어른이 되면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경험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반백 년을 지내다가, 5년 전에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면, 나도 이해하게 된다는 거야. 나조차 이해 못 할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힘들어서 탈이지만 말이야."<남극 펭귄 생포 작전 208-209쪽>

양자역학에 인과율의 과학이 무너진 이유는 파동의 형태로 있을 때 입자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양자의 세계로 들어가면 원인이 되는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기에 결과도 오리무중에 빠졌다. 양자는 우주 만물의 근본을 이루는 아주 작은 입자다. 그러니까 양자역학은 우주 만물을 혼돈에 빠트린 것이다.

양자역학에 비실비실하던 인과율의 과학에 치명타를 입히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실험하다가 카오스이론을 생각해 냈다. 카오스이론을 가장 쉽게 설명한 건 바로 나비효과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나비효과다.

인과율의 과학에 의하면 전 세계에 기상관측망을 촘촘히 구축하면 미래 날씨 예측이 정확하다. 하지만, 아무리 촘촘히 관측망을 구축한다고 해도 간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미세한 간격에서 발생한 오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져 심각한 오류를 일으켰다. 전 지구에 10cm 간격으로 관측망을 구축해도 정확도 100% 일기예보는 불가능하다.

악마 양자에 희롱당하고, 나비의 날갯짓에 속수무책으로 휘청거려도 여전히 인과율의 과학은 건재했다. 오히려 인류문명이 고도화되면서 과학은 급속하게 발전했다. 불확실하지만 신의 영역에 가장 근접한 학문은 신학도, 철학도, 문학도 아닌 바로 과학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인류는 불확실한 과학과 함께할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 다음 기사 '과학, 의심할 건가 타협할 건가 그것이 문제로다'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일기예보#양자역학#나비효과#과학의불확실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과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작『남극 펭귄 생포 작전』(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블루픽션-85)은 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