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집회 현장 주변에 '계엄군이 점령했던 과천 선관위 조작 선거 내용 밝혀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 김성욱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성욱
'비상계엄 헌법수호'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는 정당한 대통령의 통치 행위다'
'계엄군이 점령했던 과천 선관위 조작 선거 내용 밝혀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처음 맞는 주말,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 내걸린 대형 현수막들이다. 전광훈 목사 등 극우 세력들이 끌어 모은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21일 오후 광화문 광장 일부와 동화면세점부터 덕수궁 방면 세종대로 10차로를 가득 메웠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으로 보였다. 군중들 위로 '육군 3사 구국동지회', '대한민국 ROTC 자유통일연대', '해병대 호국 특명단',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비상계엄 헌법수호' 등과 같이 주로 군과 관련된 깃발들이 나부꼈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이재명 구속", "문재인 구속", "민주당 해체"였다. 주최 측에서 다량 배포한 손 피켓에는 '탄핵 반대 이재명 구속' 문구가 적혀있었다.
극우 집회는 '부정 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고 있었다. 전광훈 목사가 "야당 192명 중 절반은 부정 선거로 뽑힌 가짜 국회의원"이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불렀다. 집회 현장에는 '계엄군이 점령했던 과천 선관위 조작 선거 내용 밝혀라!', '선관위 해체'라는 펼침막이 걸렸다. '4.10 부정선거 수사하라!'고 적힌 부스에서는 연서명을 받고 있었다. 광화문 사거리 쪽 주 무대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는 부정 선거 관련 영상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은 "선관위 척결해야 메리크리스마스, 부활이 답이다, 윤석열은 부활한다"로 개사한 캐럴을 불렀다.
부정 선거 음모론을 앞장서 퍼뜨려온 전광훈 목사가 주축이 된 자유통일당 당깃발도 다수 보였다. 자유통일당 관계자들은 1호선 시청역 개찰구까지 내려와 노인들에게 다가가 입당원서를 내밀고 다달이 몇 만원 한다는 당비를 요구하고 있었다. 집회 행렬 곳곳에서도 '헌금'이라고 적힌 명찰을 달고 다니는 인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19일 윤 대통령을 대신해 언론에 나와 "내란이 아닌 소란"이라고 강변한 석동현 변호사 역시 지난 총선 때 자유통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왔다.
2017년 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의 태극기 부대처럼 이날 집회 참가자들 손에도 태극기는 물론 성조기가 많이 들려있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라고 선을 긋고, 예정됐던 로이드 오스틴 국방 장관의 방한마저 보류한 바 있다.
계엄 후 무시 못하게 된 부정선거 음모론
전광훈 "192명 야당 의원 절반이 가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시청역 개찰구에까지 전광훈 목사 주축의 자유통일당 관계자들이 내려와 입당원서를 내밀고 있다. 이들은 연령이 높아보이는 시민들에게 다가가 다달이 나가는 당비를 요구했다. ⓒ 김성욱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는 정당한 대통령의 통치 행위다' 라고 적힌 현수막이 대한민국 ROTC 자유통일연대라는 단체의 명의로 걸려있다. ⓒ 김성욱
전광훈 목사를 비롯해 탄핵 반대 집회 무대에 올라선 참가자들의 발언은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계엄을 정당화했던 논리와 판박이였다.
집회가 시작한 지 무려 3시간 30분 만에 무대에 등장한 전광훈 목사는 "진짜 계엄을 하려면 새벽에, 국민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꼼짝 못하도록 군인들을 길거리에 딱 세워놓고, 탱크도 세워놓고 해야 하는데(그렇지 않았다). 사실은 이번에는 계엄령이 아니고 계엄령 쇼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목사는 '부정 선거' 음모를 되풀이하며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기도 했다. 전 목사는 "군인들이 선관위에 왜 갔겠나. 중앙선관위가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는 것"이라며 "군인들이 국회에 간 것도 부정 선거로 당선된 야당 192명 중 절반은 나가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전 목사는 "윤석열 대통령 만세"를 외치며 "계엄령 선포가 이 나라를 살린 것"이라고 했다.
예비역 장성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전광훈 만세", "윤석열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3성 장군으로 퇴역한 조영호씨는 무대에 올라 "민주당은 예산 폭거를 자행했다"라며 "12월 3일 비상계엄은 명예혁명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 사람도 피를 흘리지 않았고 한 방의 총도 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내란을 일으킨 건 저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자"고 했다.
또 다른 한 참가자는 "야당은 가장 심각한 선관위 보안과 해킹의 문제 등 도대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라며 "윤 대통령 계엄령을 지지하고 탄핵을 반대한다"고 했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역시 "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두관씨가 4.10 총선거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얘기를 직접 했다"고 소리쳤다. 이영풍 전 KBS 기자 등도 모습을 드러냈다.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은 "탄핵에 찬성한 아이유는 문재인과 연결돼있다. 방송사에 전화해 아이유 출연을 금지시켜라", "이재명이 지금 뇌진탕에 걸렸단다", "저 뒤에 있던 민노총이 다 죽었단다"는 수준 이하의 발언도 이어갔다.
극우 집회 발언들, 윤 대통령 담화와 판박이
전직 3성 장군 "12.3 계엄, 명예혁명"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성욱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성욱
이들의 '부정 선거' 주장은 평상시였다면 일부 극우 세력들의 음모론으로 치부해버리고 말 내용이지만, 12.3 내란 사태 때 군이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침탈하려 했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 돼버렸다.
12.3 계엄 선포 이틀 전인 1일 경기도 안산의 롯데리아에서 계엄을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전현직 군인 4인 중 한 명인 정아무개 정보사 대령 측은 전날 변호사를 통해 계엄 당시 정보사가 선관위를 장악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실토했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정보사 병력들은 3일 밤 계엄이 선포된 지 단 2분 만에 선관위 과천 청사에 도착했다. 이중 일부는 선관위 전산실에 난입해 서버를 촬영해가기도 했다. 당초 계엄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 군이 왜 선관위에 곧장 병력을 투입했는지 그 배경에 갖은 의문이 따랐는데, 윤석열 대통령 등 계엄 세력이 '부정 선거' 음모론에 집착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2차 국회 탄핵안 투표를 앞뒀던 지난 12일 계엄 관련 2차 대국민 담화에서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선관위는 이에 "21대 총선에서 제기된 126건의 선거 소송 중에서 인용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부정선거에 대한 강한 의심으로 인한 의혹 제기는 (윤석열)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과 다름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고 부정 선거 음모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극우 예비역 장성들이 전광훈 목사가 앞장서 퍼뜨려온 부정 선거 음모론에 경도돼 있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800여명의 예비역 장성들로 이뤄진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은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집회 때 부스를 차려놓고 '핵무장 천만인 국민서명운동'을 받기도 했다. 대수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원식 국가안보실 실장이 주도했던 단체로, 계엄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과거 대수장 주최 국회 토론회의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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