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고기로 태어나서>를 쓴 한상태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어떤 동사의 멸종>이다. 전작을 '고기' 만드는 곳에서 직접 일하고 썼듯이 이번 책도 그가 정한 동사가 직업인 곳에서 일을 하고 썼다.
이번엔 콜센터 상담원, 택배 '까대기', 뷔페 레스토랑 주방 보조, 빌딩 청소업으로 활약한다. 글을 쓰기 위해 잠시 체험한 게 아니고 정말 생계를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일했기에 더 생생하다.

▲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전작에 이은 노동 에세이 기획력에 감탄하며 읽다보면 내게 없는 기획력을 저절로 한탄하게 된다. 노래도, 음식도 아닌데 읽는 순간에 소리가 들리고 맛과 냄새가 느껴진다.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가 감각을 일깨우면서도 재치있어서 더 그렇다. 한 페이지 걸러 풉, 하는 웃음이 터진다.
그렇다고 마냥 재미있을 수 없는 책이다. 최근 몇 년 사이 AI로 축소되고 멸종되는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직업에는 작가도 포함된다. 한승태 작가 역시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에게 직업 너머의 '일'이 어떤 의미인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무엇에 달려 있는지, 슬픔과 기쁨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며 성공과 실패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 그 웃음 사이에서 서늘하게 질문한다.
<1부, 전화받다>는 마치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현대사회의 분노를 들여다보게 한다. 날선 말들이 상담사의 마음에 꽂히고 억눌린 울음이 가슴에 쌓이는 하루하루를 한승태는 사진 찍듯이 그려놓는다.
작가는 고객 응대의 기술은 관심을 가장한 무관심의 예술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기묘한 아이러니인가. 그러나 그들의 침묵 속에는 사회의 그늘이 서려 있다.
사라지는 직업으로 첫 번째 택한 게 콜센터 상담원이지만 읽다보면 과연 상담원이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싶다. 책에 민원인들은 90프로가 본인의 열받음을 드러내려고 전화한다. 만일 그 전화를 로봇이 받으면 민원인이 뭐라 하든 메뉴얼대로 대답할 테고 그 무심함은 "야! 사람 바꿔!" 의 식으로 더한 분노가 될 거 같아서다.
콜센터 하루를 읽고 있으면 무심히 뱉어진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얼마나 깊이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 콜센터 상담사의 스트레스는 개인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섰다. 구조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그 '구조적'을 안 하려고 대체되는 직업으로 꼽히나 싶은데 민원인이 있는 한 로봇 상담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 같기도 하다.
일명 '까대기'라 하는 <2부, 운반하다>야말로 로봇이 바로 대체할 수 있는 직업으로 보이긴 한다. 실제로 쿠팡 물류 센터 중 대구풀필먼트센터는 무인운반로봇이 상품을 가득 실은 선반을 실어나르고 있어서 더 그렇다.
그런데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까대기가 제일 힘들지만 제일 성취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우울증 환자도 없다고 한다. 사람에게 즉각적인 성취감을 주는 일이 로봇으로 완전하게 대체할 수 있을까. 전화 받다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완전대체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3부, 요리하다>도 비슷했다. 어느 뷔페에서 우동 만드는 로봇 팔을 본 적이 있는데 속도가 너무 느렸다. 사람 속도까지 올리는 개발비를 쓸까, 아님 지금처럼 최저임금으로 사람을 부릴까. 개발비가 획기적으로 낮아지지 않는 이상 후자일 거 같다.
뜨거운 불 앞에서도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서로를 챙기기보다 작은 실수 하나로 몰아세우고, 음해하며 뒤에서 험담이 오갔다. 주방은 음식만 뜨거웠을 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불편하고 삭막했다.
청소하다도 비슷했다. 건물 외벽 스테인리스 광택을 낼 때도 너무 반짝거리게 하면 그 반짝임 자체가 얼룩으로 보일 수 있으니 적당한 광택을 내야 된다고 한다. 대체직업이 되려면 로봇이 그걸 인식해서 닦을 만큼 섬세해야 한다. 기업이 그 개발비를 쓸 것인가 아니면 최저시급으로 사람을 부릴 것인가.
멸종되는 동사라기보다는, 그 동사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마치 소모품처럼 닳아 없어지는 게 문제였다. 전화받는 사람의 감정은 민원인의 분노에 짓눌리고, 운반하는 사람의 몸은 무거운 짐에 지친다. 요리하는 사람은 뜨거운 불 앞에서 삶의 온도를 잃고, 청소하는 사람은 끝도 없는 얼룩 속에서 자신도 지워진다.
동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동사를 수행하는 인간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희미해진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노동이 있다면, 그 노동의 가치를 지키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동사를 보존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보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읽다보면 동사가 멸종되는지, 인간다움 자체가 멸종되는지 헷갈린다.
결국 이 책이 묻는 질문은 단순히 동사의 생존 여부가 아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전화받다의 공감, 운반하다의 성취, 요리하다의 온기, 청소하다의 섬세함을 잃는다면, 과연 남는 것은 무엇일까?
멸종하는 것은 동사가 아니라 그 동사를 통해 이어지던 관계와 감각, 그리고 삶의 존엄이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기계로 대체되는 사람을 '저렴한 선택'으로만 치부하는 한, 인간도 스스로를 멸종의 길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일과 삶의 의미를 다시 물으며, 우리가 잃어가는 무언가를 선명하게 들추어낸다. 그것은 바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