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 남소연
12월 3일 밤 10시 27분 비상 계엄이 선포됐다. 1시간 반 후,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담장을 넘고 있었다. 담장을 막아선 경찰들을 시민들이 다시 막아섰다. 세 명의 시민들이 그의 등을 받쳐줬고, 담장을 넘어 떨어지려는 그의 머리를 또 다른 시민이 받아줬다고 한다. "국민들이 지켜줬다"고 했다.
2시간 34분만인 4일 오전 1시 1분 재석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 계엄이 해제됐다. 이 의원도 무사히 190명 중 1인이 될 수 있었다. "'잡혀가서 맞아 죽으면 시체라도 찾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던 밤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의원은 그간 윤석열 대통령 및 그의 친위 조직을 향해 "윤석열 사단은 전두환 하나회에 비견될 정도"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해왔다. 지난 8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윤석열 사단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활용해 정적을 제거하고 검찰을 사유화해서 정권을 가졌다"라며 "하나회와 윤석열 사단의 운명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장담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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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윤석열 탄핵 심판 소추위원에 자원했다는 이 의원의 목표는 "하루라도 빨리 윤석열을 탄핵하는 것"이다. 더불어 향후 있을 내란죄 재판에서도 "최소 무기징역을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계엄을 통해서 특별 조치를 할 수 있는 기관은 행정·사법 밖에 없다. 그런데 무장한 군인이 국회, 선관위 모두 쳐들어갔다. 그 자체로 내란이다. 계엄 선포가 요건에 맞지 않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전두환 때도 국무위원 서명을 하나하나 받아서 계엄 해제를 선포했고 국회에 정식 통보했다. 전두환보다 더 한 무데뽀다. 절차적 형식적으로 모두 내란이다. 내란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는다. 그런데 윤석열이 감경사유가 있나? 최소 무기징역이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과 맞서다 기소됐던 서울중앙지검장, 그런 경력을 갖고 있는 이 의원이 올해 초 내놓은 책의 제목은 <그것은 쿠데타였다>(오마이북). 책에서 그는 "헌법은 무너지고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그 증거가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단언했었다.
다음은 18일 이 의원과 나눈 주요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국회 담장에 올라가 있다. ⓒ 권우성
"평생 가장 빨리 뛴 12월 3일의 밤, 국민들이 지켜줬다"
- 비상 계엄 선포 후 2주가 지났다. 소회가 어떤가.
"국민들에게 고맙다는 마음 뿐이다. 12월 3일 그 밤,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을 지켜줬다. 국회 앞에 시민들이 없었다면 계엄안 해제 결의는 못했을 거다. 정말 목숨을 걸고 경찰들을 막아줬다. 경찰이 문이란 문은 다 막아서고 국회 담장도 요소요소마다 지키고 있었다. 나도 정문에서 막혀서 LG 여의도에클라트 맞은편 담장을 넘으려는데 나를 저지하는 경찰을 국민들이 '의원이다, 빨리 가야 한다'며 막아줬다. 여성 세 분이 나를 밀어 올려줬고, 머리부터 떨어지려는 걸 담장 안에서 또 다른 시민이 받아줬다.
그렇게 담을 넘고는 뛰었다. 내 평생 그렇게 빨리 뛴 적이 없다. 뛰는 내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내려오더라. 본회의장에 가까스로 도착한 게 자정 넘어서였던 거 같다. 험한 꼴 볼 각오를 하고 들어갔던 거였다. '잡혀가서 맞아 죽으면 시체라도 찾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더라. 국회 보좌진들도 정말 고생했다. 국회 본청 로텐더홀 점거를 해 본 적 있는 10년 차 이상 보좌진들이 앞장서서 의자로 막고 몸으로 막았다. 언론인들은 계엄군이 국회 안으로 창문 깨고 들어오는 모습, 표결하는 현장을 모두 기록했다. 그렇게 모든 현장들이 증거로 남게 됐다. 국회 안팎의 시민들 덕분이다.
4일 새벽 1시쯤에도 150석(계엄령 해제를 위해서는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을 하나하나 수기로 세니까 된 건가 안 된 건가 계속 웅성웅성 상태였다. 그 때까지도 '계엄군이 국회의원들을 묻어버릴 거'라는 얘기가 돌았다. 최소한 개머리판(총기 손잡이 뒤쪽 부위)으로 머리통은 맞겠다 싶었다.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고도 '2차 계엄이 있을 수 있으니 의원들 몸을 쇠사슬로 묶자'는 의견도 나왔다. 험한 꼴 봤다, 정말."
- 올해 초 낸 책 <그것은 쿠데타였다> 제목이, 현 시국에 매우 공교롭다.
"책 제목이 너무 세다고 몇몇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었다. 윤석열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왜 그렇게 윤석열을 비판하냐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내 생각이 맞았다. 내가 윤석열을 처음 본 게 1992년도다. 30년이 넘었다. 내가 지켜 본 윤석열은 전쟁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원래 무도하다.
책에도 썼지만, 윤석열은 검찰 내 자신의 패거리를 동원해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 의지를 방해했다. 결국 윤석열이 선거라는 합법적 제도를 이용해 권력을 쥐었으나 내용상으로는 전두환의 하나회와 다르지 않다. 정치적 야망을 위해 검찰 조직을 팔아 먹었다. '검찰 내 쿠데타'를 이미 한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국회 담장에 올라가 있다. ⓒ 권우성
- 그런데 진짜 비상계엄을 선언했다.
"대통령이 돼서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진짜 쿠데타를 해버렸다. 본인을 대통령으로 생각 안 한 거 같다. 검찰총장인데 자리만 옮겨서 용산에서 집무를 본 거다. 검사일 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수사로 쳐냈다. 대통령이 되고도 이재명 대표를 기소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총선에서 졌다. 그렇다면 쳐낼 방법이 뭘까, '내 권한, 계엄'을 떠올린 게 아닐까.
영장 받아서 체포·압수수색을 하듯 그렇게 계엄을 했다. 수사 검사는 영장 집행할 때 현장 지휘를 한다. 1팀, 2팀, 3팀 어떻게 움직여서 누구는 체포하고 어디서 어떤 자료를 가져오라 혹은 대기하라고 지시한다. 계엄 상황 보면 영장 집행 과정과 똑같다. 일반적인 쿠데타면 계엄 사령관이 전 과정을 맡아서 한다. 그런데 본인이 일일이 전화해서 보고 받지 않았나. 그의 행동은 '용산 검찰총장'으로 생각하면 딱 맞아 떨어진다."
- 계엄 직후 검찰은 '12·3 내란 사태' 자체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여왔다.
"검찰은 하이에나 본성이 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 이 사건 벌어지자 마자 법률 검토를 했다고 들었다. 죽은 권력을 물어 뜯어서, 검찰 조직 회생의 기회로 삼으려던 거다.
그런데 검찰은 이미 내란죄 수사를 네 번 한 적이 있다. 1994년 전두환 12.12 쿠데타 사건을 수사했고 기소유예 처분했다. '사회의 안정과 국가발전을 위해' 기소유예한다고 했다. 국민들이 분노했고 다시 고발해 1995년에 수사를 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다. 김영삼 대통령이 수사를 재지시했고 드디어 전두환·노태우를 기소했다. 전두환에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마지못해, 밀려서 겨우 한 것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 때 계엄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 대해서도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했다. '실질적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검찰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손 떼라'는 거 아닌가."
- '실질적 위험성' 부분은 윤석열이 12.12 담화에서 '내란이 아닌 경고였다'고 말한 것과 연결된다.
"맞다. 윤석열은 '경고였을 뿐, 실질적 위험성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총 들고 무장한 군인이 쳐들어왔다. 1500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국민들은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걸 생중계로 봤다. 이게 폭동이 아니면 뭔가. 내란죄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이 동기를 밝히는 거, '왜 내란을 일으켰나'다. 윤석열은 12.12 담화를 통해 스스로 동기를 자백한 셈이다.
'국헌문란을 할 목적으로 폭동한 죄'가 내란죄다. 국헌 문란의 의미도 형법 제91조에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상세히 적혀있다. 계엄을 통해서도 특별 조치를 할 수 있는 기관은 행정·사법 밖에 없다. 입법기관인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전쟁 중에도 국회는 열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 선관위 모두 쳐들어갔다. 그 자체로 내란이다. 매우 중요한 내란의 지표다.
계엄 선포 요건에 맞지 않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전두환 때도 국무위원 서명을 하나하나 받아서 계엄 해제를 선포했고 국회에 정식 통보했다. (계엄법 2조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차 안 했다. 전두환보다 더 한 무데뽀다. 내란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는다. 그런데 윤석열이 감경사유가 있나? 12.12 담화 때 국민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겠다'지 않나. 최소 무기징역이다."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1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전두환의 비상계엄 해제 공고'에 국무위원들의 사인이 날인 된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이주연
- 헌법재판소 결정도 '당연한 수순'으로 갈 거라고 예상하겠다.
"국민 80%가 탄핵을 지지한다. 증거는 이미 모두 공개돼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막아낸 국민이 증거다. 어떻게 이 탄핵안을 인용하지 않을 수 있겠나. 빨리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탄핵 소추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내가 자원했다. 탄핵이 신속하고 빨리 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주 동안 국회에서 먹고 자고 했다. 새벽 3시, 4시에 나가보면 시민들이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고 계시더라. 탄핵안 통과되기 전까지 많은 시민들이 밤새도록 국회 문 앞을 지켜줬다. 모든 상처는 지나고 나면 아리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윤석열은 하루라도 빨리 탄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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