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남쪽 유통 센터에서 식량을 기다리고 있다. 2024.12.17 ⓒ 연합뉴스=AFP
"제 친구가 지난해 12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친구에겐 4살짜리 아들이 있었는데요. 그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고 저랑 같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가족들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그 아들은 언제나 '살레 아저씨, 아빠 좀 빨리 보내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친구가 숨진 지 1년이 지났는데도요."
한국에서 난민 신청자로 체류 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살레(Saleh·27)가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살레는 "이것은 굉장히 작은 예에 불과하다. 이런 이야기들이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모두 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전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난민에게서 듣는 한국 민주주의와 노동 그리고 연대'라는 주제로 연 이야기마당 행사에서다. 이 행사에는 살레와 이일 난민인권네트워크 변호사가 참석해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한국 시민들에게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요청했다. 사회는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통역은 이재오 국제전략센터 활동가가 맡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4개월째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가자지구는 재앙적 상황, 말로 다 표현 못 해"
"가자지구는 현재 재앙적 상황입니다. 말로는 다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이날 살레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16일(현지 시각) AFP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인한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는 4만 5028명, 부상자는 10만 6962명이라고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발표했다. 또 보건당국은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은 여성과 어린이로 보고 있다. 살레는 "전 세계가 목격하고 있는 집단학살"이라고 비판했다.
살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숫자만을 말하는 것은 진실의 10%도 못 알려 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아이들을 포함해 수만 명이 죽었는데 그 부모들,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어떻겠나. 숫자만으로 알려질 수 없는 고통들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살레는 국제사회가 가자지구 상황에 대해 폭넓게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살레는 "가자지구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자지구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한국의 연대 운동도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는데, 한국도 일본으로부터 부당한 점령과 식민 통치를 겪어봤기에 팔레스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기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침묵하고, 한국은 난민 인정률 낮아"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난민에게서 듣는 한국 민주주의와 노동 그리고 연대’라는 주제로 이야기마당 행사를 열고 있다. ⓒ 소리의숲
이어 발언에 나선 이 변호사는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점령이 불법이니 철수하라"고 권고한 것과 달리, 각 나라들은 이 전쟁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국제사회가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국제사회는 연대의 원리 위에 성립됐지만 점점 그 가치가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가운데 개별 국가들이 실리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편을 들어주는 힘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 변호사는 한국에선 난민 인정률이 1% 정도로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법적인 제한 없이 일할 수 있지만, 난민 신청자들은 '단순노무업'에만 취업 허가를 받아 일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다양한 배경과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난민들에게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적성과 능력을 살려 일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가혹하다"고 말했다. 난민 신청자 신분인 살레는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한다"며 "향후에는 재정적으로 안정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한국에는 이미 5% 이상의 사람들이 한국 국적을 갖지 않고 살고 있지만, 한국 시민들은 이주민들에 대해 낯설어 하고 있다"라며 "더 많은 서로 마주침의 기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기회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더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리의숲'(https://forv.co.kr)에도 실립니다. ‘소리의숲’은 2024년 9월 문을 연 대안언론입니다. 소리의숲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더 많은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각종 제휴 문의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