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블루스> 전시회가 올해 10회를 맞았다(2024년 12월 7일~12월 14일 진행). 고보연 설치 미술가가 대표인 미술공감채움은 순수 예술가 단체이다. 장애인단체와 노인정에 미술활동을 지원하고, 벌써 십 년째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엔 군산 이당 미술관에서 진행됐다.
구성원 16명 중 15명은 회화, 설치 미술가여서 미술작품을 전시했고, 나는 글작가로 출판한 책 두 권을 전시했다. 개성 넘치는 회원들의 작품과 작가들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있는 전시에서는 다채로움에서 비롯된 신선함을 맛볼 수 있었다.

▲제 10회 사각지대 블루스 전시장소: 군산 이당 미술관 ⓒ 김준정
지난 12일, 추진장애인자립작업장, 군산시 정신건강복지센터, 길벗공동체, 정신재활시설 희망의 쉼터 회원들이 전시장에 방문했다. 함께 관람하면서 회원들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건 지혜고, 저건 산이예요."
"이 그림이 지혜씨라고요?"
발달장애인 곽승환씨의 설명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승환씨는 사람을 얼굴, 팔, 다리로 보이게 그리지 않고, 타원과 사각형을 조합해서 표현했다.
만약 승환씨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사람이라고 짐작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림에서 지혜씨가 연상이 되었다. 이처럼 회원들에게서 신선한 자극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안에 있는 고정된 틀이 깨지는 기분을 느낀다. 장애인이 제한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작 작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건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곽승환씨가 그린 지혜씨(첫 번째 그림) ⓒ 김준정
한편, 언젠가부터 나는 추진장애인자립작업장의 한 회원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는 했다. 다른 발달장애 회원들의 지적 연령은 차이는 있지만, 다수가 5세에서 7세 정도라고 한다면 내가 보기에 그 회원은 11세나 12세 정도로 보였다. 지적 연령 차이 때문에 그가 회원들과 하는 활동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형이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들과 놀면 재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회원이라면 카페 같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돈도 벌고 더 좋을 텐데...'
지금 떠올리면 부끄럽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문득 그 회원이 비장애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가 카페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돈을 벌고 싶어 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비장애인의 삶이 더 낫다고 정해놓고 그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가 스스로 살아갈 기반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 방법이 꼭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는데, 나는 그의 취향과 재능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거다.
돌아보면 내가 이렇게 부주의하게 생각해 온 것은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몸이 아플까 봐 불안해하고, 돈 때문에 걱정하는 이유도 오랫동안 내가 노인, 환자, 빈자에 대해 편견을 가져왔기 때문은 아닐까.
편견이 계속해 깨지는 경험들

▲전시 포스터(고나영 디자인) ⓒ 김준정
그들을 다양한 의지와 취향을 가진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소외해 왔기 때문에 내가 그런 존재가 될까 봐 두려운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가졌던 편견이 화살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는지 모른다.
회원들과 만나는 일은 그런 나를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4년 전부터 추진장애인자립작업장 회원들과 2주에 한 번 만나 그림을 그리고, 월명산 또는 은파 호수 공원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내가 변해가는 걸 느꼈다.
올해 사생대회에서 신승철씨는 다른 회원들이 그림을 제출하고 놀고 있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해 그림을 완성했다. 주변에서는 물감과 크레파스 등 재료를 정리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승철씨가 느리지만 꼼꼼하게 색을 칠하는 모습을 나는 지켜보았다.
승철씨의 정직한 태도는 나에게 작은 감동을 주었다. 동시에 그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그 모습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는 건, 내 안에 있는 틀이 깨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회원들 한 명, 한 명의 남다른 특별함을 내가 발견해 나간다면, 언젠가 나 또한 비로소 불안과 망상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나를 팔자에도 없는 "미술쌤"으로 부르는 이들. 그런데 이 사람들과의 만남은 오랜 시간 좁은 생각에 갇혀있던 나를 꺼내주었다. 그들은 기꺼이 내 손을 잡고 그들의 넓은 세상으로 데려가 주었다. <사각지대 블루스> 전시 회차가 매년 더해갈수록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 드러날 거다. 이 사실이 나에게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