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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7 10:28최종 업데이트 24.12.17 10:28

비상계엄의 토대

[주장] 윤석열이 내란죄를 범하고도 당당한 이유와 사회 대개혁의 길

이제 민주화가 굳건해졌다고 자부하던 나라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윤석열이 얼마나 무도하고 광기에 휩싸인 인간인지 온 국민이 더욱 공포로 체험하였다. 다행히 '한밤의 푸닥거리'로 끝났고, 그 일로 탄핵까지 당하였다. "한국 시민의 저력, 회복력"을 운운하는 보도들도 이어졌다. 과연 그런가? 윤석열의 오판과 광기, 분열증적 망상이 빚은 것은 맞지만, 그 저변에는 쿠데타를 표출할 만한 세 가지 토대, 곧 신자유주의 체제, 공론장의 붕괴, 재현의 위기(the crisis of representation)가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30년 넘게 이어지면서 우리 가슴에 사람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탐욕'이 내면화하였다. 이 체제의 가장 큰 희생자이자 극복할 수 있는 주체인 노동자조차 주식, 부동산, 코인 투자 등으로 이재(理財)에 참여하면서 점점 보수화하였다. 계급은 노동자인데 경쟁과 성장을 선호하는 '자본가적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구조적으로 언론과 자본의 유착이 심해지고, 개인적으로 언론인들도 물신주의와 실력주의와 경쟁에 시나브로 물들면서 점점 정론 직필에서 벗어났다.

17세기부터 교회 바깥에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 이성의 각성을 한 시민들은 이곳에 공론장을 만들고 합리성과 과학성을 바탕으로 토론과 검증을 거쳐 진리를 캐내고 이를 공론화하였다. 주술의 정원을 밝힌 계몽의 빛은 중세에서 근대로, 봉건 왕정 체제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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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디지털혁명, 인공지능이 결합하자 공론장이 붕괴되었다. 수많은 가짜뉴스들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매개로 양산되고 퍼졌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짜영상은 진실과 허위의 구분마저 무너트렸다. 이에 조작되거나 마취된 대중은 반향실효과(echo chamber effect)를 서로 증대하며 확증편향을 키웠다. 좌우 할 것 없이 대중들은 객관적 진실보다 허위, 이성보다 정동에 기울어졌고, 윤석열 내외는 이를 넘어 분열증적 망상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이 계엄의 망상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화물연대의 파업이라 추측한다. 필자가 "화물연대 파업·물류대란 책임은 합의 파기하고 직무유기한 정부에"(2022년 11월 28일 자 <한겨레신문>)라는 글에 기고한 대로, 2020년에 안전운임제를 도입하여 과적과 사고가 줄자 윤석열 정권도 이의 지속과 확대를 약속했다가 이를 파기하고 개악을 강요한 것이기에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정당성이 있었다.

윤석열 정권이 화물연대의 파업에 파시즘적인 탄압을 했음에도 오히려 지지율이 올라갔다. 여론이 둘로 갈라치기한 상황에서 극우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체 지지율이 오른 것으로 착시 현상을 빚은 것이다. 총선 참패 이후에도 윤석열은 협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했지만, 결국 야당 지지층은 자신이 잘해도 비판할 터이니 보수층을 확실히 잡자고 마음을 다잡은 듯하다.

12월 12일의 담화는 계엄선포로 판 무덤에 스스로 흙마저 덮는 처사였다. 그는 왜 탄핵과 구속이 코앞에 이른 상황에서도 극우 유튜버들의 가짜뉴스를 사실로 확신하고 그들의 선동을 따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을가? 디지털화가 되면서 재현의 위기(the crisis of representation) 현상이 일어났다. 좋은 연기자일수록 촬영이 끝난 후 오랫동안 드라마와 현실 사이에서 혼동한다. 윤석열 내외는 지금도 극우 유튜버들이 만든 가상의 대한민국을 실제로 착각하며 그 안에서 대통령 놀이를 하고 있다고 본다. 가상에서 그치면 별일이 없는데 가끔 현실로 나와 세상과 사람들을 뒤집어 놓는다.

이 세 토대를 바꾸지 않으면 제2의 윤석열, 제2의 쿠데타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 땅의 수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내 안의 신자유주의적 탐욕을 없애며 신자유주의 체제와 기득권 동맹을 해체하고 공론장을 복원하고 언론을 개혁하고 재현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필자가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본부의 공동대표를 하면서 안과 밖에서 마르고 닳도록 외쳐도 메아리가 없었는데, 이제 사회 대개혁이 점점 대세로 자리 잡을 듯하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방향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이는 시늉에 그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조국 사태 이후 검찰개혁을 소리 높이 외치며 공수처를 만들고 검수완박을 했지만, 검찰은 변하기는커녕 검찰독재를 행하고 있다. 당시 필자가 언론 기고와 토론회를 통해 주장한 대로, 검찰의 힘은 기소 독점에서 나오니 이를 약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시민도 기소할 수 있는 시민검찰제, 시민위원회의 검찰 통제, 검찰총장과 지검장의 직선제, 프랑스식 사인 소추제, 독일식 부대공소제 등을 추진해야 한다. 교육개혁도 대학평준화와 입시철폐 없이는 어떤 대안도 미봉책에 그친다. 민영화한 곳의 재공영화, 비정규직과 대량해고의 철폐, 자본의 야만을 규제하는 법과 획기적인 소득 분배책 없이 신자유주의의 극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며칠 전 부산의 탄핵 집회에서 노래방 도우미라고 밝힌 여성이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주십시오"라고 한 말이 다시 가슴을 저민다. 그 환하고 아름답던 빛조차 희망만이 아니라 아픔으로도 다가온다.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 불을 켤 때마다 간혹 그 빛에 발전소 노동자의 피가 배어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 장애인, 가부장적 폭력에 희생당하는 여성, 성소수자,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 빈민, 시간강사, 이주노동자, 취업하지 못한 청년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사는 세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 복합 위기를 극복한 사회로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퇴진 운동은 절반만 의미를 가질 것이다.

#윤석열#퇴진운동#사회대개혁#비상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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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ahurum1) 내방

ㅇ 현직: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백기완 노나메기 재단 부설노나메기연구소 소장, 윤석열퇴진운동본부 공동대표 ㅇ 역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의장, 한국기호학회 회장, 한국시가학회 회장,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한국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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