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1일 저녁 7시 한노보연 젠더와 노동건강권센터 11월 월례토론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A 학교 성폭력 사안과 교과 운영 부조리에 대해 공익 제보한 지혜복 교사가 강연을 맡았다.
지 교사는 2023년 5월 사회 교사이자 상담지도부장으로 근무하던 A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담하던 중 2년간 지속해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장과 교감 등에 알렸고, 다행히도 몇몇 학생이 사건을 학폭위에 신고하겠다고 결심하여, 조사절차가 시작됐다. 그러나 조사 담당 교사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의 신원이 노출되고 사실조사서에 기재한 피해 사실 역시 유출되면서 2차 가해와 피해 학생들의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이에 지 교사는 서울 중부교육지원청과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사안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 교사는 학교-중부지원청-시 교육청은 학생 간 성폭력 사건을 축소 은폐하며 마무리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지 교사는 다른 학교로 전보 발령이 났다가 출근 거부를 하던 중 지난 9월 27일 해임되었다. 지난 11월 13일은 지 교사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연좌 투쟁한 지 3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지혜복 교사는 공익제보자 지위 인정, 보복성 부당전보철회를 요구하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매일 출근 투쟁을 하고 있다. ⓒ 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부조리 공익
학교에서 드러나는 위기의 징후
A 학교에서 벌어진 사안이 단지 한 학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울시 전체, 한국 교육 전체의 문제로 인식의 폭을 넓혀보자는 제안으로 강연은 시작됐다.
19세기 근대에 시작된 학교는 민주국가의 발전에 따라 국민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이자,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공장 노동자들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발전되었다. 여전히 학교는 획일화된 건축구조를 유지하며 지어지고 있다. 지 교사는 이러한 근대적인 학교를 "산업주의 공장 모델"이라고 설명하면서 학교 제도는 근대 산업 사회 교육에서 다수 학생을 효율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교육했으며, 다수를 관리하기 위해 집단주의와 통제가 작동하는 공간이자 대량생산과 표준화의 적용으로 개별화는 무시되는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또 근대에서 현대까지 학교는 자본주의에 필요한 노동력을 얼마나 잘 양성할 것인가 또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교육할 것인가가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학교는 보통교육을 제공하는 사회 평등 기제로서의 기대도 있으며 기존 질서에 대항하고 거부하는 주체를 양성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첨예하게 모순된 학교라는 공간을 잘 활용할 방법을 여러 교육노동자가 고민하고 있다고 지 교사는 설명했다.
지 교사는 이런 공간인 학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위기의 징후 세 가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수단이 되어 사회 불평등을 강화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들었다. 예전에도 학교는 그런 공간이었지만, 경쟁을 학습의 중요한 동기로 지나치게 중요하게 다룬다든지, 지배계급의 문화와 가치관 등을 내면화하는 교육과정 편성이 강화되면서 재벌가의 누구누구가 장래 희망이라거나 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는 우려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교사들의 고민을 담은 교육과정 편성권이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지역별로 폐지 절차를 밟고 있는 백래시 현상과 교사에 대한 통제 강도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두 번째 학교의 위기 징후는 자본주의의 이윤 확보를 위한 노동력 양성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입시제도를 통한 계층상승에 집착하는 경향과 다양한 경쟁 시스템 도입으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의 증가, 성적 압박으로 인한 자살률 증가,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전인적 교육 또는 가치교육의 실패, 창의성과 개성을 억압하는 교육 분위기와 더불어 학생과 교사 사이의 위계적인 관계 등을 이러한 위기의 양상으로 소개했다.
세 번째 징후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차별, 공격성과 소외다. 기본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구조가 통제적이라는 점, 더불어 점차 사법화되면서 예방보다 처벌 위주의 대응, 이러한 분위기와 경쟁의 심화로 올바른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학교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 교사는 A 학교에서 벌어진 사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이런 일들이 이 학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했다. 스쿨미투로 인해 매뉴얼이 만들어졌지만, 이번 과정에서 매뉴얼이 현장에서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성폭력 사안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함께 대응했던 선생님이 전보된다면 피해자, 가해자를 포함한 학생들이나 교사들마저 '함부로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다가 쫓겨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어 전보 조처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며 준비한 강연은 마무리됐다.
강연 이후에는 약 한 시간 동안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학생 인권과 교권으로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학교 현장에 대한 지 교사의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지 교사는 교권이라는 단어가 위계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학생 인권과 교사의 노동권이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교사의 당연한 임무라고 했다.
아직도 낯설다, '학교'와 '안전'이라는 단어의 조합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을 하던 2016년, 어느 기계과 교사의 제보로 특성화고 실습실 작업환경이 얼마나 유해한지 알아보게 되었다. 그 후 2018년 한노보연이 진행한 '특성화고 실습실 유해환경 개선을 위한 조사 및 분석 연구'를 계기로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a whole school approach)'1)라는 관점을 알게 되었다.
이 관점은 '학교 안전 범위 내에 학생들의 안전, 교사들의 안전, 교직원의 안전이 모두 포함'2)한다. 학생들의 건강권만이 아니라 교사와 교직원들의 노동 건강권까지 함께 고려하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EU 산업안전보건청에서 발간한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 사례집'에는 이 접근법이 단순히 교사, 교직원과 학생을 개선된 제도의 수혜자로만 보지 않고 모든 구성원의 알권리 보장과 참여의 측면도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한다.
워낙 안전의 문제를,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로 더 많이 접하게 되었던 한국 사회에, 안전할 권리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준 사건은 이제 10주기를 지나고 있는 세월호 참사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도 청소년 인권운동은 안전을 위해 통제받아 오던 청소년들이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는 주장을 해왔고, 여성들 역시 일상적인 젠더 폭력에 대해 밤에 다녀도, 어떤 옷을 입어도 안전할 권리를 주야장천 요구했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줄 테니 질서를 잘 지키고, 밤에 다니지 말고,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는 지시와 통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안전은 무엇이고 내가 안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요구할 것인가. 과연 어떤 자리에서 안전에 대해 고민하기를 선택할지 고민해 볼 문제다.
안전이 권리와 자유의 언어가 되려면 우리에게 참여할 권리,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공동체가, 조직이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도 필요하다. 지혜복 교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내 이런 사실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 건강권은 물론, 차별과 혐오에 저항할 권리도 보장돼야
지혜복 교사가 겪은 A 학교의 상황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런데 사실, 학교는 늘 모두가 위태롭게 버티고 사는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학교에 친구도 있고 맛있는 급식이 있어서 간다는 수많은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는 안 가겠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들이 그래도 잘 살아내기 위해 낙관적인 해석을 덧붙인 것으로 들리기도 했다.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스쿨미투의 물결이 있었음에도 왜 아직 이런 상황일까. 스쿨미투를 학교에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세상은 나날이 조금씩 느리게 나아지고 있다.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라 조금 지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자동차도 좀 느리게 달려야 하고, 일터의 노동 환경도 노동자를 위해 더 많이 변화해야 한다. 폭력에 대한 인식도 더 나아지도록 노력해서 성폭력, 성희롱은 물론이고 일터 괴롭힘도 줄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우리가 누릴 권리이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지고, 이런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내가 일하는 일터는, 학교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근대에 만들어진 학교는 구조에서부터 폭력을 내재하고 있다.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몸을 만들기 위한 12년 코스 자체가 그렇다. 아마도 이게 개근상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모두에게 안전한 학교는 정말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학교 주변의 상황만 변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성폭력, 성희롱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피해 구제를 위해 좀 더 안전할 수 있는 절차로 바꾸는 일부터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조력자인 교사마저 내몰리게 된 지금의 상황에서 피해 학생들이 겪게 될 마음의 부담도 마음이 쓰인다.
1) EU 산업안전보건청의 사례로 한노보연 연구자료집(10p)에 소개되어 있다.
2) 같은 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2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림보 님은 한노보연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