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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립 상태의 청년
사회적 고립 상태의 청년 ⓒ a_d_s_w on Unsplash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이 용어들은 최근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청년들의 고립·은둔 문제를 가리킨다. 과거에는 일부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이 현상은 이제 사회 전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청년이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적 자립이나 사회적 참여에 대한 두려움, 대인 관계에서의 불안 등을 겪으며 복지 지원의 사각지대 속에서 여전히 고립되어 가고 있다. 그 고립과 은둔 뒤에 숨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집에 갇힌 청년들, 그들의 이야기

#. 가족 안에서도 혼자가 되다 - 최수진씨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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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진씨(가명·24)의 고립은 가족 내 갈등에서 시작됐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동생이 퇴원한 후, 가족 분위기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아버지는 동생을 과도하게 감싸며 최씨와 갈등을 빚었고, 어머니 역시 최씨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의 이해 부족과 갈등은 최씨를 점점 세상과 단절시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르바이트 환경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사장은 최씨에게 과도한 업무를 강요하며 지속적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세상에 저 혼자 버려진 것 같았어요."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진 그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우울증과 불안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다. 공황 발작, 과호흡, 떨림 등은 그의 일상을 마비시켰다.

"운동은커녕 간단히 집 앞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밤마다 우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아침까지 잠들지 못해 아침 10시에 겨우 잠들었어요. 늦게 일어나면 하루가 날아간 기분이라 더 자책하게 되고... 계속 그런 식으로 악순환이 이어졌어요."

#. 스스로를 단절시킨 1년, 그 후 새로운 시작 - 이지은씨의 이야기

이지은씨(가명·27)는 1년 동안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연이은 구직의 실패로 인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고 스트레스와 예민해진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게 되었음을 깨달은 순간, 그는 스스로를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몰아넣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개인 방이 따로 없어 거실에서 생활해야 했다. 어지러운 생활 공간과 밤낮이 뒤바뀐 생활 패턴은 고립감을 심화시켰고 가족과도 속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우울한 날들을 견뎠다.

"부모님께도 제 마음을 털어놓지 못했고, 연락할 친구도 없어서 그냥 매일 혼자 시간을 허비했어요. 생의 끝을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내 장례식에는 누가 와줄까 같은 상상으로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과 더 이상 부모님께 의지할 수 없다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면접은 순조롭게 통과했지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두려워 계속 핑계를 대며 출근을 미뤘고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에 마침내 첫 출근을 결심했다.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사람을 대하는 일이 조심스럽지만 노력하고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요. 덕분에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여 주었고, 자연스럽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기분이었지만, 작은 용기로 시작한 일자리가 저를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아가고 있어요."

청년들의 고립과 은둔은 개인의 책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타인과의 유의미한 교류가 없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지지체계가 없는 사회적 고립 상태의 청년 인구는 약 54만 명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그 수가 늘어나 고립·은둔 청년의 문제가 재조명되었지만 사회는 아직 무감각하다.

고립과 은둔은 유의미한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를 지속하는 상태로서 장기적으로 고독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사회적 문제인데도, 많은 고립·은둔 청년이 '게으르다', '사회적 실패자' 등의 표현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고립·은둔의 문제를 개인적 책임의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는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모습은 최수진씨, 이지은씨의 이야기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개인의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했던 모습, 가족들에게조차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었던 모습들이 보인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의 핵심은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는 고립감이다.

총 응답자 2만13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건복지부의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 고립·은둔을 위해 도움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몰라서(28.5%)', '비용부담(11.9%), '지원기관이 없어서(10.5%)'라고 응답한다. 고립·은둔 청년이 사회적 인식에서뿐만 아니라 복지 지원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미다.

 출처: 보건복지부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용역보고서 2023-124)
출처: 보건복지부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용역보고서 2023-124) ⓒ 보건복지부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지금의 '은둔형 외톨이'는 2000년대 초부터 '히키코모리'의 일본어 대체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고립·은둔 청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일본의 히키코모리 정책에서는, 후생노동성이 관할 부서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과 규정을 수립하고 실제 지원은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담당하고 있으며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가 창구 역할을 한다.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는 보건·의료·복지·교육·고용 분야 등의 관계기관과 연계하여 지원하는 히키코모리에 특화된 상담 창구로, 히키코모리 상담 지원 사업, 쉼터 만들기, 연락협의회 및 네트워크 구축을 필수로 실시한다. 지원 인력의 부족 및 불안정한 고용, 담당 부서의 불명확성 등 완벽하진 않으나 지역별로 공공 지원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 홈페이지
일본의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 홈페이지 ⓒ 이승희

복지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고립·은둔 청년들

국내에도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지원 체계가 존재한다. 국내 최초 은둔형 외톨이 지원기관의 전 직원, 은둔 당사자 등 4인이 창업한 법인인 '안무서운회사'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셰어하우스 및 '은둔고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당사자의 시선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국내에는 '생명의 전화 종합사회복지관', '파이(PIE)나다운 청년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서울특별시의 '청년기지개센터', 보건복지부의 '청년미래센터' 등의 지원 체계가 존재한다.

 출처: 보건복지부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 모형 개발 연구’ (정책보고서 2022-35)
출처: 보건복지부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 모형 개발 연구’ (정책보고서 2022-35) ⓒ 보건복지부

문제는 이러한 지원이 공공기관보다는 민간기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문제를 정책의 언어로 이해하고 적절한 지원 사업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의 지원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몰라서', '비용부담,' '지원기관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서는 안 된다.

'안무서운회사'의 대표 유승규씨는 고립·은둔 청년의 문제를 다룬 강의에서 고립과 은둔을 벗어나는 일은 기본적으로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고립·은둔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담, 의료적 도움, 사회적 관계 회복의 세 요소가 필요하다. 상담이나 의료적 차원의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고립·은둔 청년을 향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주변의 고립·은둔 청년을 찾아내는 복지 지원 체계 마련이 지속해서 논의되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세계와 시민> 강의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주제로 활동한 (이승희, 박세희, 한주아, 문소연, 곽수빈, 정소현)의 글로벌 시티즌 프로젝트 활동의 결과를 담은 기사입니다.


#고립은둔청년#사회적고립#고독사#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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