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射臺 활을 쏘는 자리)에 썼다.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른다. 한국을 떠난 지 7일 째, 비로소 활을 낸다. 얼마 만에 당겨보는 활시위인가. 남편은 감개가 무량한지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시위를 당겼다.
벼를 베어낸 빈 논을 활터인 양 쓴다. 논에는 벼 그루터기가 길게 남아 있고 풀도 나있다. 논 가운데에 과녁으로 쓸 흰 천을 막대 두 개에 묶어 세워 놓았지만 화살이 과녁에서 멀리 떨어지면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과녁 근처로 떨어지게 활을 내야 한다.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화살을 날린다.
마침내 활을 내다
국궁을 시작한 지 올해로 4년, 남편은 활에 빠져 들었다. 일요일 하루만 쉴 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이면 활터로 갔다. 활은 심신을 모두 고양시키는 운동이라 했다. 신체적으로도 좋지만 정신 수양에도 활은 참 좋다며 지인들에게 활쏘기를 권하곤 했다.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활터로 간다. ⓒ 이승숙
취미로 시작한 활이었지만 점차 국궁의 매력에 빠져든 남편은 승단대회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국궁도 태권도나 검도처럼 1단부터 9단까지 단 수가 있다. 1단이 되려면 45발을 쏴서 24발을 명중시켜야 한다. 평소에는 그 이상으로 활을 명중시키던 사람도 막상 승단대회에 참가하면 긴장이 되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1단을 땄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기뻐했다. 그러나 문제는 2단이었다. 2단은 45발 중 26발을 명중시키면 된다. 그 정도는 평소에도 늘 맞췄으니 당연히 될 줄 알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문제는 겨울동안 동남아에서 지내느라 석 달 가까이 활을 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숨을 고르고 활시위를 당긴다. ⓒ 이승숙
활은 예민해서 외부 조건, 일테면 바람이나 안개 등의 기후 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에 더해 활을 쏘는 궁사의 몸과 정신 상태가 바르지 않아도 활은 잘 되지를 않는다. 평상시대로 해야 되는데 만약 그 흐름이 깨지면 활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하루만 쉬어도 표가 나는데 석 달을 쉬니...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무용 등을 하는 사람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술을 갈고 닦으며 연습한다.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남이 알고 사흘을 쉬면 세상 사람이 다 안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쉬지 않고 연습한 덕분에 평소의 실력대로 연주를 하고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활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만 쉬어도 표가 난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으니, 활을 내는 사람들은 매일 활터에 가서 활을 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석 달을 활을 안 쏘면 어떻게 되겠는가.

▲145m 떨어져 있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 이승숙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 이승숙
겨울동안 동남아에서 지내다 봄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면 바로 활터로 간다. 활에 고팠던지라 집에 오자말자 짐도 채 풀지 않고 활터로 달려가서 활을 쏜다. 얼마나 그리웠던 국궁장이고 활터였던가. 사대에 선 남편은 감개가 무량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 시위를 당기는 힘도 부족하고 과녁을 조준하는 데도 흔들린다. 공부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다고 하더니 활 역시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노를 저어야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조금만 쉬어도 배는 뒤로 떠내려간다.
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남편의 낙담은 컸다. 과연 원래대로 돌아오기는 할까. 얼마나 연습해야 그만큼의 실력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날아갈 듯 활터로 간 사람이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해를 보며 활을 내다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렇게 몇 달 연습해서 여름 쯤 원래 실력으로 돌아왔고 가을이 되자 비로소 실력 발휘를 할 만큼 되었는데 또 겨울이 되고 동남아로 떠난다. 그렇게 계속 도돌이표가 되었다. 태국 치앙라이로 겨울살이 여행을 떠나며 활을 챙겨온 까닭에는 그런 사연도 들어 있었다.

▲화살을 찾으러 과녁을 향해 가는 길. ⓒ 이승숙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활시위를 당긴다. 저 멀리 145m 너머에 있는 과녁을 목표로 화살을 날린다. 한 발 또 한 발, 그렇게 열 발을 날렸다. 한국의 국궁장에서는 과녁에 명중이 되면 "탁" 하는 소리가 들리고 경쾌한 알림 음이 울린다. 그러나 여기 치앙라이에서는 그런 호사를 누릴 여유가 없다. 활을 낼 수 있다는 그 사실만 으로도 충분하다.
화살을 찾으러 간다. 과연 몇 발이나 과녁 근처에 떨어졌을까? 혹시 멀리 날아가서 못 찾는 건 아닐까. 여러 마음을 안고 들판 가운데 세워놓은 과녁을 향해 걸어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궁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