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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제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에요. 퇴직하는 그날까지, 사랑을 아낌 없이 쏟아부을 거예요. 저는 교사니까요."

제천육아종합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 소속 대체교사로 일한 지 올해로 4년차인 강영순 교사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제천시 내의 어린이집 교사가 병가나 교육, 경조사, 연차 등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이 때 임시로 배치돼 업무를 대신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제천 시내의 60여 어린이집을 그때그때마다 돌아가며 책임져야 하는 강 교사의 한달 한달은 숨가쁘게 돌아간다.

지원센터 대체교사 관리자가 다음 달 시간표를 미리 공지하면 강 교사는 일정을 확인한다. 이때부터 그도 바빠진다. 틈틈이 사전에 챙겨야 할 것과 동선을 확인한다. 지원 나가기 수일 전이 되면, 파견 가는 어린이집에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여러 일정과 업무 상황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강 교사가 맡는 반은 그때그때 다르다. 0세부터 7세까지. 특히, 영유아의 연령별 발달 특징도 빠르게 모두 꿰차고 있어야 한다. 매일 새로운 반 아이들 이름과 하원차량, 복용약 등을 확인하고 내일 맡을 반도 챙겨야 한다. 그만큼 매번, 달리 파견가는 어린이집에 따라 업무파악도 빨라야 한다는 얘기다.

정작 '대체교사'인 강 교사 자신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렇기에 더 세심하게 일선 어린이집 교사들과 소통하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여념이 없다. 그렇게 강영순 교사도 일선 교육 현장에서 바삐 뛰고 있다.

 대체교사로 4년째 근무 중인 강영순 씨.
대체교사로 4년째 근무 중인 강영순 씨. ⓒ 강영순

매번 다른 근무 여건, 정작 힘든 일은 따로 있어

출근 첫 날, 늘 겪는 일이지만 그가 유난히 집중하며 신경쓰는 일이 있다. 처음 본 사람을 낯설어 하는 아이들과 대면하며 눈을 마주치는 일이다. 간혹 낯선 이를 힘들어하는 영유아는 낯익은 옆반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때문에, 첫 날부터 진땀 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수십 년의 경력자이지만, 이때마다 손에 땀을 쥐는 건 어쩔 수 없단다.

"1살 정도의 영아들이 특히 낯설어 하며 울음을 보일 때가 있어요. 그때는 바로 다가서며 달래주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인내심을 갖고 시간을 가져요. 놀잇감을 이용해 공을 굴려주거나 조용히 노래를 불러주죠.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아이들이 마음을 조금씩 열어요. 저에 대한 탐색이 끝났다는 거죠(웃음). 그러면 저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척 하며 다가섭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과 졸업 후 울릉도 도동 성모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처음 마주한 강영순 교사는 이후 한솔교육(신기한 한글나라) 놀이중심 방문수업 교사로도 10여년을 보냈다. 하루 20~30분씩 10여 명의 아이들을 수업하다 보니 늘 시간에 좇기는 일은 다반사.

게다가 상황 그림을 구연으로 들려주다 보니 목도 늘 쉬어 병원에서는 한두 달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여러 번 권하기도 했지만, 재미있어 웃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이후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하다 폐원을 계기로 제천시에서 대체교사로 근무 중이다. 그도 업무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천상 아이를 사랑하는 교사다. 하지만 그가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저는 어떤 업무든 자신이 있는데, 일부 '대체교사가 뭘 알아?'하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교사 업무 외 잡다한 일을 지시할 때 많이 힘들어요. 가령, 청소의 경우 담당 교실과 교실 내부의 화장실 정도인데, 특별 구역 청소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유휴 지원 나갈 때는 어린이집 선생님들 수업 준비도 도와야 하는 등 과도한 업무를 요구할 때도 있어요. 센터에서도 최대한 어린이집과 소통하는 사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좀더 향상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급여 역시 대체교사 경력을 인정해준다면 교사의 역량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급적 지원센터에서 정한 규정을 어린이집에서 지켜주길 바라고, 개선됐으면 하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령, '아이들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은 안전사고와 초상권 등을 이유로 센터에서는 '지원 사항 아님'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물론, 부탁을 해오면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처음 대체교사를 시작했을 때는 매번 다른 어린이집으로 출근해야 해서 조금 힘들었지만, 어린이집마다 혹은 담임교사마다 특징이나 성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춰 나가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꼈어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지원갈 때마다 어린이집 교사들과 친분을 먼저 쌓아 대체교사에 대한 선입견과 벽을 허물고, 쉬는 시간이 되면 차도 한 잔 함께 마시며 거리를 좁혀요. 그래도, 좋고 훌륭한 선생님이 많아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대체교사의 처우 개선과 보장, 결국 공교육과 맞닿아

대체교사 지원사업은 보건복지부가 2009년부터 시행 중인 공공부문 직종이다. 이 사업의 도입 배경은 어린이집 교사들의 휴식과 근무환경 개선 등을 보장함으로써 보육서비스 질도 높인다는 데 있다. 현행법 역시 어린이집 대체교사의 중요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계약이 주를 이루는 점과 인력 부족, 매번 달라지는 업무 강도와 수시로 달라지는 근무지, 앞서처럼 어린이집에서의 공식적인 업무 외 다른 업무 지시에 또 다른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 교사의 처우를 보장하는 만큼, 대체교사의 처우도 개선하고 보장해야 고른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자신에게 힘이 되주는 건 역시 아이들이다.

"역시 중요한 건, 아이들이죠. 아이들에게는 수업 이외에 좋아하는 게임이나 놀이 지원을 다양하게 하고 비타민도 하나씩 나눠 먹었더니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사과 선생님(강영순 교사는 아이들 사이에서 '사과 선생님'으로 통한다) 하며 기억해 줬고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너무 마음이 가벼워지고 행복했어요. 또, 틈틈이 부모님들에게는 대체교사에 대한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아이들의 하루 일과나 궁금해 하는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하며 신뢰를 쌓고 있어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먹서먹했지만 제가 먼저 친절하게 다가갔더니 친근감이 생기며 지금은 내 아이고 내 어린이집이라는 생각의 전환으로 잘 적응하게 됐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예전 겪었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퇴근 후 아이의 부모로부터 "아이의 배에 상처가 생겨서 왔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강 교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아무 말도 못 했지만, 그럴 때일수록 차분히 상황을 파악해 자세히 부모에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튿날 출근하자마자 원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원장님이 이미 CCTV를 돌려보고 아이가 다칠 때의 상황을 찾아 놓으셔더라고요. 보니까, 제 바로 뒤에서 친구에게 배를 물린 상황이었어요. 원장님이 제게 이 영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려도 되는지 물어보셔서 "괜찮다"고 답했어요. 이후 잘 마무리됐어요."

강 교사가 감동한 건 그 다음 상황 때문이었다.

"저도 아이들 부모님께, 안전에 더 신경써야 했는데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부모님들께서 '아니예요. 이게 선생님 잘못인가요? 오히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시며 바로 대응해주셨잖아요'라며 제 불편한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셨어요. 저를 믿어주셔서 보람도, 감사함도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

 지난 11월 16일, 충주시, 제천시, 진천군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대체교사를 대상으로 ‘나는 OO한 대체교사다’라는 주제로 한 수기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한 강영순 교사(맨 오른쪽)
지난 11월 16일, 충주시, 제천시, 진천군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대체교사를 대상으로 ‘나는 OO한 대체교사다’라는 주제로 한 수기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한 강영순 교사(맨 오른쪽) ⓒ 제천시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합니다

그는 대체교사로서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더 없이 만족한다. 늘 마음 속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대체교사를 향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통했는지 강 교사는 지난 달 16일, 충주시, 제천시, 진천군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대체교사를 대상으로 '나는 OO한 대체교사다'라는 주제로 한 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수상하는 기쁨보다 모두 공감했다는 데 오히려 안도했다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가치관과 교사로서의 자부심, 긍지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마음을 모두가 알아준 것 아닐까.

강영순 교사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부모님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고 사랑이 많으면 아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랍니다. 그래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웃음소리 가득한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갈 수 있도록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우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대체교사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느 교사와 같습니다. 이 나라의 꿈나무들이 계속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대체교사#제천시육아종합지원센터#강영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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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 (seoulpal) 내방

"일단 써라, 그럼 보일 것이니" 기록은 시대의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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