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습니다. 청소년 소설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출판했습니다(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 당연히 작품 속에 날씨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아침밥은 굶더라도 일기예보는 챙깁니다. 이렇듯 날씨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학 현상이라 중고등 교과서에 많이 나옵니다. 밥보다 중요한 날씨 이야기를 24년간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속 내용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연계하여 최대한 재밌고 쉽게 풀어냈습니다.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속 문장과 함께하는 몸풀기
훔볼트 해류를 따라 무역풍 지대인 남위 30도까지 북상한다(발전기로 어창의 냉동장치를 계속 작동해야 하기에, 해류 또는 바람이 일정하게 부는 곳에서는 무동력으로 항해해야 한다).- 45쪽
"북북동으로 조타 핸들을 돌려, 음……."
K1이 머뭇거리자, 바탈이 소리 질렀다.
"훔볼트 해류!"
그제야 K1의 머릿속에 가물거리던 해류의 이름이 생각났다.
"훔볼트 해류가 흐르는 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려라." - 193쪽
석촌호수에 떠다니던 거대한 노란 오리를 기억하시나요?

▲고무 오리석촌호수에 떠 있는 고무 오리 ⓒ 서울시
2014년 가을 귀여움으로 무장한 노란 오리 한 마리에 대한민국이 잠시나마 행복에 빠졌었다. 아기가 목욕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생긴 거대한 고무 오리가,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 있는 석촌호수에 둥둥 떠다녔다. 푸른 호수 위에 떠 있는 노란 오리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몸통은 노란색에 눈은 새까맣고 부리는 주황색의 앙증맞은 오리는 가로 16.5미터, 세로 19.2미터, 높이 16.5미터로 무게만 자그마치 1톤가량 되었다.
인근 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는 한정 수량으로 만든 3천 개의 노란 오리 인형이 이틀 만에 다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SNS를 통해 석촌호수의 노란 오리 사진은 급속하게 퍼졌고,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노란 오리의 귀여운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노란 고무 오리를 만든 사람은 네덜란드 예술가인 플로렌타인 호프만이다. 그는 2007년부터 이 크고 귀여운 오리와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대만에서는 5일간 50만 명, 홍콩에서는 한 달간 800만 명, 우리나라에서도 500만 명이 거대 오리를 보기 위해 몰려 들었다고 한다. 이 설치미술 공식 명칭이 <러버덕 프로젝트>다.
러버덕은 말 그대로 고무(rubber) 오리(duck)다.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양 전문가들 사이에서 러버덕이 관심사로 떠오른 적이 있다. 1992년 노란 고무 오리 장난감을 가득 실은 화물선이 홍콩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좌초하여 고무 오리 수만 개가 바다에 표류했다.
미국의 해양학자 커티스 에비스메이어는 10년간 바다 위에 떠다니는 수만 개의 고무 오리를 추적했다. 고무 오리는 장기간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면서 호주, 인도네시아, 알래스카, 남미 등지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해류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었다.
당연히 일부 러버덕은 태평양을 한바퀴 돌아 원위치로 찾아왔다. 그리고, 8년 후인 2022년에 1.5m 더 커진 18m 높이로 석촌호수에 러버덕이 재 방문했다. 2014년도보다 더 많은 사람(650만 명)이 러버덕의 매력에 빠졌다.

▲러버덕 이동경로해류를 따라 이동한 러버덕 ⓒ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투모로우> 속 대재앙은 지구의 혈관인 해류 때문
2004년도에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는 꽤 흥행했다. 차가운 공기가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모든 걸 급속하게 얼려버린다는 내용이었다. 하늘에 날아다니던 헬기의 날개가 얼어 추락하고, 바다 얼음 속으로 거의 잠긴 자유의 여신상 횃불에 고드름이 뾰족뾰족하게 열렸으며, 건물 안까지 냉기가 스며 들어 사람들을 석고상처럼 얼려버리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영화 투모로우영화 투모로우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속 살인적인 냉기가 북반구를 덮친 이유는 해류가 멈췄기 때문이다. 해류가 멈춘다고 북반구 전체가 급속하게 얼어버린다고?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 억지 아냐? 얼핏 보면 영화의 설정이 황당해 보인다. 하지만 빙하기의 재림을 연상케 하는 영화 속 장면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다.
우리나라 가정집 난방은 대부분 온수보일러다. 왜 직접 대기를 가열하면 될걸 물을 데워 집안을 따뜻하게 할까. 이는 물의 비열이 크기 때문이다. 비열이란 어떤 물질 1kg의 온도를 1도만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다. 쉽게 말해 물은 한번 데우면 쉽게 식지 않는다.
물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1이라면 구리는 0.09로 아주 작다. 구리를 가열하면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이유다. 모래의 비열도 0.19로 물에 비해 턱없이 작다. 모래는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차가워져, 바다보다 육지의 일교차가 크다. 지구에 바다가 없다면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얼어버릴 것이다. 바다는 태양에너지를 저장하여 밤에 다시 에너지를 발산하는 지구의 배터리나 마찬가지다.
해류는 바다 위로 강물처럼 흐르는 물줄기다. 해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정하게 부는 바람(지구 대기대순환)에 의해 흐르는 표층해류와 다른 하나는 바다 깊은 곳에서 흐르는 심층 해류다.
해류는 인간 혈관의 혈액과 비슷하다. 혈관이 막히거나 혈액의 흐름이 멈추면 응급 상황에 직면하듯이, 해류의 흐름이 변하거나 멈추면 기후가 급변하여, 기름진 옥토가 사막으로 변하고, 날이 따뜻해져 온갖 전염병이 돌고, 영화에서처럼 주변이 얼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주변을 흐르는 쿠로시오해류가 대표적인 표층해류다. 쿠로시오해류는 필리핀에서 북상하여 일본의 동안을 따라 북동쪽으로 흐른다. 이 해류에서 가지처럼 갈라져 동해에는 동한난류가 서해에는 황해난류가 흐른다.
태평양에 쿠르시오해류가 있다면 대서양에는 멕시코만류가 있다. 멕시코만류도 표층해류다. 맥시코 만에서 발달한 멕시코만류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북대서양 해류와 카나리아해류로 갈라진다. 북대서양 해류는 서유럽을 지나 북극 그린란드 근처까지 흘러가고, 카나리아 해류는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멕시코만류에서 갈라진 북대서양 해류가 계속 북쪽으로 흘러 그린란드 근처에 가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바닷물의 밀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쪽으로 갈수록 물이 차가워져서이고, 다른 하나는 얼음이 얼기 때문이다.
물도 대기와 마찬가지로 온도가 낮아지면 밀도가 높아진다. 그런데 왜 얼음이 얼면 밀도가 높아질까. 이는 순수한 물만 얼고 소금은 얼지 않기 때문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기체나 액체는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북극에서 밀도가 높은 표층의 바닷물이 심층으로 이동하는 이유다. 심해로 내려간 바닷물은 해저를 따라 저위도로 이동한다. 표층해류가 인간의 동맥이라면, 심층해류는 정맥이다. 표층해류는 빠르고, 심층해류는 느리다.
남반구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바닷물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지구를 순환하는 궁극적 원인은 북극과 남극의 차가운 공기와 빙하 때문이다. 정맥과 동맥이 합류하는 곳이 심장이듯이, 차가워진 데다가 얼기까지 하여 밀도가 높아져 표층해류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심층해류가 되는 북극과 남극은 지구의 심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지구에는 심장이 두 개 있다.
<투모로우> 영화 속 대재앙은 지구의 북극 심장이 멈췄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멈춘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바닷물의 밀도가 낮아졌기에 심층으로 이동하지 않았고, 남쪽에서 북으로 에너지를 나르던 멕시코만류가 멈춰버려 지구의 북반구가 꽁꽁 얼어버린 거였다.
서울보다 고위도인 런던에서 눈을 보기 힘든 이유
런던은 북위 51도에 있고, 서울은 37도다. 서울보다 런던이 훨씬 북쪽에 있다. 한반도로 치면 백두산 인근이다. 그런데 런던의 1월 평균기온(1991년-2020년)은 5.6도고, 서울은 –2.0도다. 런던이 북쪽에 위치함에도 서울보다 7도가량 따뜻하다. 당연히 런던에서는 눈이 귀하다.
습도도 런던이 높다. 1월 평균습도는 런던이 81%이고, 서울은 56%가량 된다. 런던이 고위도에 있는데도 서울보다 기온과 습도가 높은 이유는 지구의 북극 심장으로 흘러가는 맥시코만류에서 갈라져 흐르는 북대서양해류 때문이다.
맥시코만류의 기원지인 맥시코만은 적도 인근으로 따뜻하다. 물은 비열이 크기 때문에 쉽게 식지 않는다. 따뜻하게 데워진 해류가 서유럽 인근을 지나기 때문에 런던이 서울보다 따뜻한 것이다. 이처럼 해류가 특정 지역의 기후를 변화시키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해류가 지구의 기후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과서와 함께하는 해류>
같은 위도에서 동해안과 서해안의 표층수온은 어느 쪽이 더 높으며, 그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동아출판 과학 2, 236쪽)
⇒ 표층해류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저위도에서 고위도로 흐르는 따뜻한 해류인 난류와 고위도에서 저위도로 흐르는 찬 해류인 한류다. 우리나라 동해로는 동안 난류가 흐르고, 서해는 황해 난류가 흐른다. 당연히 표층수온은 동해가 더 높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0 년 전의 빙하기인 영거 드라이아스기 때 해수의 순환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조사해 보자(미래엔 지구과학 1, 120쪽)
⇒ 영거 드라이아스 빙하기는 약 13000년부터 11700년 전 사이에 발생했다. 영거 드라이아스가 발생한 이유는 영화 <투모로우>와 비슷하게 해양 컨베이어 벨트가 중단되어 찾아온 빙하기다. 즉 북대서양에 빙하가 녹은 물이 대량 공급, 해수 온도의 증가 등으로 해수의 밀도가 낮아져 심층으로 가라앉지 않아 해류가 멈춰서 일어난 빙하기다. 그러니까 영화 속 그 끔찍한 현상에 과거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