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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총 득표 수 중 300표 중 가 204표, 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지난 14일 오후 5시. 거대한 환호 소리가 여의도 공원에 물결쳤다. 시민들이 하늘 높이 날린 풍선은 푸른 폭죽이 되었고 색색의 응원봉은 은하수가 되어 거리를 수놓았다.

▲14일 탄핵안이 가결되자 환호하는 사람들지난 14일 국회의사당 인근 도로에서 사람들이 탄핵안 가결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 송혜림
이윽고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사를 따라 부르고 춤을 췄다. 내란으로 얼룩졌던 국회 앞은 어느새 도심 한복판의 축제장이 되었다. 역사의 오점이자 승리로 새겨질 서울의 겨울이었다.
나는 이번 겨울 내리 탄핵 시위에 홀로 나갔다. 당근거래로 구매한 아이유 응원봉을 들고서. 그럼에도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떤 공간보다 따뜻했고 때론 깊은 안정을 느꼈다. 나의 밤과 옆을 함께한 이들 덕분이었을까.
나의 또래이자 동생이었던 시위의 주체들. 무지개 빛깔의 응원봉을 품에서 꺼내 들고 개성 있는 키링을 가방에 달고 있던. 교복 치마에도 추위를 이겨내고 머리를 질끈 묶고서 형형한 눈빛으로 국회를 노려보던. 그날 그 곳에는 10·20대 여성이 있었다. 역사 속에서 늘 잊히고 지워졌던 젊은 여성들이 선명하게 국회 앞에 서 있었다.
시위를 나갈 때마다 나의 앞과 옆, 뒤에서 빛을 발하던 이들 역시 여성들이었다. 실제로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 소추안 표결 당일이자 가장 큰 규모로 촛불 집회가 열렸던 지난 7일 오후 5시 국회에 모인 시민들 중 20% 이상이 10대와 20대 여성이었다고 한다.
이번 시위를 유쾌하게 물들인 응원봉 문화도 소위 '빠순이'라고 칭해졌던 이들이 자신에게 가장 빛나는 것을 치켜 들며 시작됐다. 윗 세대는 딸들에게 응원봉을 빌리고 K-POP 가사를 배우면서 신세대 시위 문화를 갈등 없이 수용할 수 있었다.
과거 비장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주류였던 시위 문화를 누구든 마음의 벽을 헐고 참여할 수 있도록 변화시킨 주역엔 그녀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대담했다.
일부 여성들은 탄핵안 투표가 이뤄지는 날까지 국회의사당 사방에 나 있는 입구들을 밤새 지켰다. 새벽 한파에도 담요를 둘러쓰고 핫팩에 언 손을 녹여가며 또 계엄군이 몰려올까 눈을 밝혔다. 한때 X(옛 트위터)에는 국회 입구를 지키는 그녀들의 사진이 공유되며 지원을 요청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전국 여고와 여대에선 시국 선언이 울려 퍼졌다. 국회의사당 역과 여의도 역 여자 화장실에는 이름 없는 여성들이 생리대와 간식을 쌓아 올리며 연대를 다졌다. 시위 현장에선 책가방에 담아 온 초코바를 주변에 나눠주던 여학생이 있었다. 역 입구에선 보조 배터리를 무료로 나눠주던 과잠 입은 여대생 무리가 있었다.
<다시 만난 세계>를 밤새 열창하며 어둔 하늘을 응원봉으로 밝혔던 그녀들. 대한민국의 겨울을 봄으로 이끌던 선봉장들이 오늘 바로 그 곳에 존재했다. 2년 전인 2022년 3월 10월. 개표 결과를 미처 보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업보였을까. 윤석열 후보의 얼굴이 TV 화면 가득 송출되는 걸 보며 한동안 어떤 말도 얹을 수 없었다. 상식이 어긋난 결과였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선거 공략으로 내세운 그가. 선거 시기부터 '더 이상의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으며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고 언급한 그가. 반 여성적인 정책과 언사를 일삼으며 지지율을 끌어 올린 그가. 어떻게 하나의 국민을 대표하는 수장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방송 3사(KBS·MBC·SBS)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이하에서 윤 후보를 뽑은 여성 비율은 33.8%에 그쳤다. 무려 60%에 달하는 여성들이 그의 정서에 반발한 셈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엔 어땠는가.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을 포함해 이주 여성, 북한이탈 여성, 폭력 피해 예방을 위한 인식 개선, 홍보 예산 삭감을 감행했다.
10·20대 여성들은 윤 정부의 무관심과 정책의 부재 속 온갖 혐오에 짓이겨졌던 세대다. 등산로와 지하철에서 이유 없이 죽임을 당했고 편의점과 빌라에서 여성이란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캠퍼스 내 교제 살인과 성폭행이 잇따랐고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는 10대 여학생들에게까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캠퍼스 여자 화장실 곳곳을 파고든 몰래 카메라는 전 세계적으로 '몰카 천국'이란 오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여대 출신이란 이유로 취업 제한을 내건다는 말까지 들으며 장래를 위협 당했다.
윤 정부의 가장 큰 희생자였던 그녀들은 이번 탄핵 시위의 가장 전면에 섰다. 민주주의를 정상적인 궤도로 되돌리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그 어떤 세대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피력하고 비상식에 맞섰다.
이번 시위는 10·20대 여성들을 통상 '정치 무관심층'으로 여겼던 사회 편견을 보란 듯이 깨부순 역사적인 지표였다. 또 국내 사회와 윤 정부가 묵인해 온 여성 차별과 혐오에 대해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강렬한 움직임이었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젊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당이 없어 정치적 의사 표현이 미약하다는 평이 있었다. 당시 민주당도 여성 정책에 대한 뚜렷한 묘수를 내세우지 못했고 일부 의원들의 성 문제도 불거져 나오면서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들은 이번 시위에서 또렷하게 정치적 존재를 입증했다. 현 여당과 야당이 앞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정치를 펼치는데 있어 10·20대 여성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여성 피해에 맞서 타 오르던 촛불은 시위를 기점으로 하나의 커다란 횃불이 됐다. 시위대 가장 앞에서 빛을 발하던 횃불은 여성의 목소리가 언제든 이 사회를 대변하는 주류로 자리할 수 있다는 걸 명확히 보여줬다.
"여성스럽다는 표현에 이제 용감하고 혁명적인 우리의 모습도 함께 떠오르길 바랍니다" - 14일 촛불 집회 라이브 시민발언 중 한 여성 발표자의 끝맺음 말
아이들이 언젠가 '여성스럽다'라는 표현을 배우게 된다면. 이날 탄핵 시위 전면에서 당차게 목소리 내던 여성들의 강인한 얼굴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계엄군을 막기 위해 밤새 국회의사당 문 앞을 지키던 대담한 모습과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응원봉을 치켜 들며 서로를 향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다정함을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밤길을 수놓았던 무지개 응원봉 물결. 하늘 높이 울려 퍼졌던 그녀들의 노랫소리. 다시 만난 세계를 꿈꾸며 아픔을 딛고 거리에 나온 여성들을 우리 국민 모두가 잊지 않길 바란다.
앞으로도 여성들은 오늘 이날처럼 적극적으로 외부에 목소리를 내고 타인들과 연대해 나가야 한다. 응원봉을 손에 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우리 사회는 바뀔 수 있다. 그 어떤 나라보다 평등하고 안전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번 탄핵 시위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여성의 존재가 더는 지워지지 않길 희망해본다. 진정 '여성스러운' 이들이 보여준 사회적인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길 기대해보는 2024년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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