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롱 시민기자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2022년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린 후 <오마이뉴스>에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이태원 참사 '그 이후'의 삶에 함께 귀기울여 주세요.
비상 계엄, 내 머릿속을 스쳐간 얼굴들
지난 10월 출판사와 이태원 참사 2주기 행사를 치른 후, 나는 한 달 반의 시간을 잃어버린 채 지냈다. 11월 중순 평소 좋아하던 작가님 두 분과의 만남을 제외하고 사적으로 외출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꾸준히 다니던 정신의학과 병원으로 가는 발길도 끊었다. 병원을 갈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유희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밥을 먹는 것도 의미가 없어 일하는 시간 외엔 누워있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잃어버린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그저 나를 오롯이 돌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출판사와 함께 진행한 참사 2주기 행사에서 참석해 주신 분들이 '그날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보내주는 후기를 읽는 것이 나의 유일한 치유였다. '그래, 이렇게 하나씩 치유해 나가는 거야' 매일매일 다짐하며 내 마음에 약을 발랐다.
그러다가 지난 3일 밤, 뉴스에서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다. 그때 내 머리에 스친 기억은 다름 아닌 올해 초, 울산에서 1박 2일간 진행한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북토크 현장이었다.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나는 경남권 지역의 북토크에 집중하고 있었다. 포항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는데, 거기서 만난 초등학생, 중학생 독자가 '다음에 꼭 작가님 만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것을 듣고 '그래 우리 꼭 만나자'고 답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울산 북토크에 온다고 했다.
책임감이 막중해졌던 때였다.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건전한 이야기를 전해야 할 텐데. 다 큰 성인들 보다 아이들 앞에 설 때 가장 긴장한다. 아이들에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무섭다. 잘못되고 편향적인 사고 방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북토크에 와준 아이들. ⓒ 김초롱
북토크를 다니며 가장 많이 들었던 원망이 있다. 왜 작가님의 책은, 그리고 작가님이 제작에 참여한 이태원 참사 관련 다큐멘터리 <크러시>는 명확하게 잘못한 사람을 지칭하거나, 누군가가 잘못했다고 짚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경주에서 북토크를 할 때는, '이 모든 것 문제의 원인은 대통령이다, 대통령 하나만 바뀌면 된다,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구호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독자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나 대신 작가가 책에서 시원하게 저격을 해주기를 바랐을 터. 그리고 그 원망 섞인 질문은 여지없이 울산 북토크에서도 비집고 나왔다. 내가 대답 대신 물었다.
"정말 한 사람만, 바뀌면 이 세상이 바뀔 거라 생각하세요?"
원망을 각오하고 물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심정을 알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참사를 두고 양측으로 나뉜 현 상황은, 대통령 한 사람을 교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지성의 논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모두의 상식 수준을 끌어올리고 국가폭력과 국가참사 앞에서 여야,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다같이 하나의 마음과 태도로 임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그러려면 한 사람의 잘못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사회문화적으로 돌아보고, 다같이 원인을 찾아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했던 그날, 아이들 앞에서 나는 당당했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렇게 후진국이 아니다, 어디에 내놔도 시스템적으로 부끄럽지 않고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도 많이 성장했다, 다만 그에 걸맞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빠르게 성장한 탓에 세대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서로 자신의 말만 맞다고 우기는 어른들 때문이 지금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래도 성숙한 태도로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미래에는 더욱 발전적인 모습의 한국이 될 것이다'라고도 전했다. 아이들이 나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난 3일 비상 계엄 이후, 아직까지도 혼란스러운 내란의 정국 속에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어떻게, 감히, 트라우마를 운운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국민의 반이 뽑은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이해하려 했고, 어떤 결정이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교양이라고 생각했다. 참사를 겪고, 변화하지 않는 사회를 보며 냉소하기 보다 이해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더 알고자 노력했다.
한순간에 그 모든 노력이 나에 대한 부끄러움과 비참함으로 바뀌던 지난 일주일여의 시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슬펐다.
이태원 참사 이후,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내려놓는 것보다 자리를 지키며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말하던 장관이 비상 계엄 해제 직후 도망치듯 재빠르게 사퇴를 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5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경위와 관련 현안 질의를 위해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2.5
ⓒ 연합뉴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상정되자 회의장을 퇴장하고 있다. ⓒ 유성호
일부 여당 의원들이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 국회의원들에게 내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해당 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한 뉴스 앵커의 말을 영상으로 편집해 올린 한 SNS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트라우마는 본인의 이익에 반하여 속상함을 느끼거나 억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멀쩡한 길 한복판이 무너져 내릴까 공포에 떨고, 수년간 오가던 길을 잃어버리고, 큰 충격으로 길에서 배변 실수를하며 인간의 존엄성마저 앗아가는 것이 트라우마, PTSD입니다. 감히 , 함부로 쉽게 입에 올리며 운운할 수 없는 것이 트라우마입니다. 부디,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두 번 울게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사회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인간다움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작은 댓글이 순식간에 좋아요 730개를 넘어서는 것을 보며, 나는 지금까지 내가 회피하던 그 무언가가 내 안에서 소리치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다시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니 알게 되었는데, 분명히 잘못한 사람은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한다'고.

▲'탄핵 트라우마'를 언급하는 여당 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앵커 멘트 동영상에 내가 달았던 댓글. ⓒ 김초롱
다시 지옥에 떨어졌지만
심장이 일주일 내내 빠르게 뛰고 있다. 설잠을 자고 언제, 무슨 공포가 내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다시 나를 엄습해 왔다. 식은땀이 나고, 나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다는 마음에 다시 병원을 가야겠다 생각했다. 이 반응이 낯설지 않다. 언제, 어디서 이런 감정을 느껴봤는가 했더니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신체에서 일어났던 반응과 비슷했다. 당시 의사 선생님은 내게 그것을 '트라우마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아 내가 왜 이러지' 했던 것을 물었을 때, 의사 선생님은 PTSD의 대표적인 증상이 숙취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참사 초기 3개월에 걸쳐 다스렸던 PTSD 증상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억울하다. 어떻게 아물게 한 고통인데, 이리도 쉽게 나를 다시 힘들고 아픈 그 지옥으로 넣는 것인지.
그럼에도 누워있고 싶지 않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오늘(13일), 나는 금요 집회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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