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과 명백한 내란은 종결되지 않고 있다. 이 나라에는 44년 만에 또다시 비극과 불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민주주의 모범국가 대한민국의 민주 공화정이 급속하게 파괴되면서 추락하고 있다.
2024년 12.3 비상계엄은 1980년 5.17 비상계엄과 너무나 닮아있다. 5.18 참극은 5.17 비상계엄에서 비롯되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의 책임을 맡았던 필자로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현재 상황 전개에 대해 몇 가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내란범이 방임되는 것이야말로 '무질서한 퇴진'
대법원이 1997년 4월 17일 전두환 등 신군부에 의한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에 대해 판시한 내용은 이렇다.
"제헌 헌법 이후 수차의 개정에도 국민주권주의,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 법치주의 등 국가이념과 기본 원리는 불변했다. 5공 신군부가 새로운 법질서와 규범을 수립했다고 볼 수 없으며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한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평생 법 지식을 연마하고, 법 집행을 직업으로 일관한 윤 대통령이 입법부인 국회를 봉쇄, 난입하고,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한 것은 명백한 내란에 해당한다. 따라서 계엄군을 동원한 폭동 행위나 발표된 포고령 제1호는 반헌법적인 범죄가 분명하다. 20만 쪽에 달하는 12.12, 5.18 수사 재판기록에는 12.3 수사 재판에 적용할 유사한 사례와 적용 법규가 상세히 나타나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의 하야 여부와 상관없이 즉각적인 체포와 강제 수사가 불가피하다. 이것이 헌법이고 내란범에 대한 처리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회가 탄핵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된다. 그럼에도 '질서있는 퇴진'을 명분으로 이 같은 선례를 무시하고 내란범들이 방임되는 것은 '무질서한 퇴진'이다. 국민들은 이 같은 상황을 질서 있는 방조, 은폐, 조작의 시간 벌기로 바라보고 있다.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한 우리의 헌정사가 실패한 쿠데타를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의 신인도 추락은 물론, 국민을 분노와 불안으로 내몰고 가는 내란의 연장일 뿐이다. 국회는 당장 탄핵 결정을 내리고 특별합동수사기구에서 신속한 구속수사를 하는 것이 가장 질서 있고 적법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여타의 상황 전개는 헌법을 무시하고 관계 법령을 사문화시키는 반역적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자신의 유대인 학살 책임에 대한 도덕적 판단력의 결핍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 규정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냉엄한 이성적 판단으로 이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을 비호하는 발언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여론조작까지 난무하는 이 무질서는 단호한 사법처리로 끝장내야 한다. 만약 현재의 우왕좌왕하는 상태가 방치되면 대국민 사기극 차원을 넘어서는 비극적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계엄 철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리를 요구하던 국민들이 5.17 계엄 이후 체포 2699명, 학사 징계 1880명, 해직 422명(공무원 제외) 등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 5.18 당시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73명, 상이 후 사망자 113명, 부상자 2500여 명 등의 피해자 외에도 분신 8명, 수백 명의 구속, 수감자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계속 발생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즉각적인 사건 해결이 없으면 민생 경제의 파탄 못지않게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간접 살인의 망령이 되살아날 것이다.
출국 금지나 출석 요구 등 느슨한 수사로는 안돼
80년 초에 이학봉 대공수사국장이 작성한 '국기문란자 수사계획'에 의하면 5.18 관련자 수사,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조작, 삼청교육대 내 학생운동 관련자 포함 등이 그대로 실행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계엄령은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예비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헌정사에는 총 16번의 계엄령이 있었다. 그 가운데 12번의 비상계엄과 4번의 경비 계엄이 선포되었는데 대다수가 국민의 기본권 제약, 살상, 인권 탄압 등으로 이어졌다. 우리 국민에게 비상계엄은 인권유린의 악몽으로 남아있다. 지금 내란이라 규정하고 헌법을 위반했다고 하면서 방임하는 상태를 국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뜬금없는 12.3 내란은 5.17 내란과 거의 똑같다. 특전사 동원, 국회 봉쇄, 정치인 체포 수감 시도, 국무회의 형식적 의결, 장갑차 및 헬기 동원, 소총 등 화기와 실탄 휴대 등 광주 진압 작전과 흡사했다. 하나회 주축이 고교(충암고) 동문으로 바뀌고 전두환이 윤석열로 변신하고, 방첩사(보안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점 등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비상계엄을 의결한 국무 회의록은 의도적으로 작성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란 주도 세력의 흔적 지우기가 이미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관련 영상, 통화 내역, 공문서 등 기록물, 인물 및 현장의 보존 조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12.12와 5.18 조사 당시 사라진 증거, 폐기된 자료, 굳게 다문 입 등으로 파편적인 사실의 퍼즐을 맞추는 데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출국 금지 조치나 출석 요구로 조사한다는 것은 느슨하고 공허하다. 즉각적인 관련자의 체포와 구금을 통해 강제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관련 증거의 파기, 은닉, 허위 진술 및 유도 행위 등도 강력한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학창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는 윤 대통령은 헌법 제66조에서 명시한 국가원수이자 행정 수반으로서 내각의 일부를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 및 동조 세력으로 포함하고, 헌법 제74조의 국군 통수권자로서 국민의 군대를 내란 폭동 세력으로 동원하여 국민을 경악케 했으므로 형법 제87조에 명시한 내란수괴로서 응당 조사해야 한다.
모든 범죄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명백하게 진실을 고백하거나 사죄하지 않고 특정 정당의 뒤로 숨는 것은 스스로 대통령의 자격과 능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내란의 묵인, 방조 역시 반역적 범죄임을 대다수 국민이 지적하고 있다.
브라질의 과거사 청산이 성공적이었던 이유에 주목하라
이제 국민들은 반역사적, 반민주적 사건일수록 국제법적 해결 원칙인 정의와 책임을 똑바로 세우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의 신속한 실행과 이를 토대로 한 유사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국가적, 사회적 불행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마지막 양심이 남아있다면 한시라도 빠른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 윤 대통령이 즉각 하야해야 한다. 지금 온 나라에 수많은 알베르 카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카뮈는 '매국노의 법적 처리를 그만두라'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요구에 이렇게 대답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게 된다. 정의로운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라고. 국민의 대다수 가 요구하는 대통령 탄핵과 퇴진은 법적 정당성과 역사적 필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등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 관련자들의 뒤늦은 사법처리와 일시적 수감, 사면이 지금 5.18 왜곡의 실마리가 되어 전국화, 전문화, 조직화되어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브라질의 과거사 청산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는 강제 소환과 비밀문서의 무조건적 공개 원칙에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수상 강연에서 12살 때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가 사다 놓은 5.18 사진집에서 훼손된 시신과 헌혈 행렬을 본 뒤, 작가로서 인간의 폭력성과 사랑을 고뇌했다며 과거가 현재를 구하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돕는다고 확신했다고 고백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정의가 실종되었던 5.18 광주의 40여 년의 세월은 망각을 거부했다. 12.3 내란의 진실이 가려져 올곧게 청산되지 못하면 헌법이 유린당하고 국민이 희생되며,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불행이 어리석게도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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