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은 유난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불의에 분노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례 밤재를 넘고, 남원 여원재를 넘어 산내로 향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누리였다. 그는 30대 초반의 반짝이는 눈을 가진 맑은 사람이었다. 자신을 "마을 활동가"라고 했다.
마을 활동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마을과 활동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을 생각해 봤다. 딱히 떠 오르는 것은 없었다. 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누구나 활동한다. 활동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밖에 없고 죽은 사람은 이미 저승의 사람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들었다.
산내는 남원에서 30분 거리다. 2000년 초반부터 많은 도시 사람이 내려와 살았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산내로 찾아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은 귀농귀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남원과 함양의 경계에 있다 보니 남원과 함양 양쪽을 연결하기도 하고, 지리산을 가기 위해 백무동이나 뱀사골을 찾는 사람들이 지나는 마을이고,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합류 지점 같은 곳이다.
카페 토닥은 산내면 소재지 끝쯤에 있었다. 카페 안에는 책들이 있었고, 셀프로 운영한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편안한 소파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벽보도 있었다. 여는 카페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토닥은 산내 사람들이 커뮤니티 공간 겸 카페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한동안 잘 되었지만, 주변에 카페들이 많이 생기고 나서 약간 시들해졌다. 그리고 1년을 쉬었다. 올 봄에 김누리씨는 다시 토닥의 문을 열었다.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해요. 직장인이죠! 부모님이 2000년 초반에 시골에 내려와 살기 시작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잠시 구례에 살기도 했고요.
구례 마산면 청천초등학교를 다니다 8개월 만에 산내로 이사왔어요. 부모님은 여기서 고사리 농사를 하셨어요. 저도 여기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고요.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홈스쿨링을 했어요. 그리고 잠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녔고, 문화예술 관련 일을 했는데, 서울에서 살기 힘들었어요. 2017년에 내려와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우선 여기 마을 카페 토닥에서 일하고 있고요. 지리산 작은 변화 지원센터 이음에서도 일하고 있고요. 성폭력 근절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하는 일, 성 인지 감수성 교육을 지원하는 일, 그리고 산내 청년 공간 등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 일이 정말 많은데 많은 일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우선 먹고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고요. 시골에 살려면 재밌는 일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을 진행하는 것이 재밌어요."
- 맞아요. 시골에서 사는 것의 가장 힘든 부분 중의 하나가 재미가 없다는 것이라고 저도 생각해요. 구례에도 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은데 재미가 없어 떠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은퇴하신 분들은 느긋하고 나른하게 살아도 되지만 젊은 분들은 다르잖아요. 재미가 없으면 살기 힘들죠! 그런 면에서 누리씨가 하는 일들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일과 그 재미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네. 시골에서 청년들이 남아 있으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저도 생각해요. 재미라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우선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하는 일만큼 재밌는 일도 없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들 대부분이 그런 일들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토닥은 오후 5시면 문을 닫아요. 하지만 진짜 문을 닫는 것은 아니에요. 저녁엔 지역 사람들이 필요한 공간으로 내어주는 거죠. 책 읽기 모임을 하거나 마을 모임을 하는 공간이 되는 거죠! 그동안 저는 제가 내성적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근데 이 일을 하고 나서 생각이 변했어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하는 일이 재밌더라고요. 그동안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사실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 사람들을 알아가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재밌다는 생각을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더 다양한 일을 찾아보려고 모색하고 있어요."
- 토닥 판매 수익으로 카페를 운영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네. 그래서 일종의 후원회원을 모집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아직은 많은 편은 아니에요. 100명을 모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100명 모집해도 사실 운영하기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다행히 임대료가 없어서 가능하죠.
이 건물은 처음 토닥을 시작할 때 매입했어요. 처음 구매했던 분들이 증여를 해주셔서 임대료 없이 운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운영이 가능한 것이고요. 임대료가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거예요."
- 벽에 건물을 기증한 분의 사진이 걸려 있더라고요. 그분들이 참 고마운 일을 하셨네요.
"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운영하기 힘들죠."
-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지리산이나 자연, 시골에 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제가 어려서 시골에 살았지만, 시골이나 자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눈앞에 항상 지리산이 보이지만 산이 보이는구나! 정도의 느낌 이상은 아니었어요.이 동네 사람들은 눈 내리면 바래봉에 가야 한다는 일종의 국룰이 있는데 저는 눈 내릴 때 바래봉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만큼 좀 무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여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생각이 변했어요. 생각이 바뀌니까 지리산도 바래봉도 산내도 달라 보이더라고요.
- 책장에 자본주의에 관한 책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현 체제에 대한 고민인 많은 것으로 보여요. 자본주의 문제점이나 대안 같은 것을 고민하고 있나요. 음... 너무 큰 주제인 것 같기는 하네요. 그러면 누리 씨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음… 여전히 힘든 질문이에요.(웃음) 제 주변 상황에서 보면 자본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독한 개인주의라는 생각이 들어요.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 같은 거죠.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다 보면 함께 하지 못하고 결국 외로워지는 점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타인에 대한 배려나 나눔 같은 문화가 풍요로운 세상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면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어려운 상황이 되면 누구나 도움 받기를 원하잖아요. 하지만 개인주의가 너무 강화되면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을 것 같거든요. 저는 산내에서 재밌게 살기 위해서 서로 서로 배려하고 지역에 대한 고민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 그럼, 지금 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
"작년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대장암이었는데 진단 받고 두 달 만이었어요. 그동안은 농사가 주 수입원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농사를 지속하기 힘들게 되었죠. 그래서 어머니는 인월에서 미미부엌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요.
저도 여러 가지 일을 해서 생활하고 있지만 사실 큰 돈을 버는 일들은 아니라서 이일 저일 많이 하고 있죠. 그래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고 잘 살고 있답니다. 서울에 살 때 너무 밀집되고 압축된 생활을 했었는데 그곳에서 제가 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기서 사는 것이 저에게 맞는 것 같아요. 숨 쉴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요. 그래서 2017년부터 살고 있답니다."
- 시골에서 청년들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사는 구례에도 많은 청년들이 살고 있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저도 잘 몰라요. 그래서 산내의 청년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거든요. 산내는 구례읍보다 작은 곳이다 보니 여기서 버티면서 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경제적인 문제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심심할 것 같거든요?
"네. 저도 이 점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요. 경제적인 문제는 카페에서 일하거나 농사일을 돕거나 소소한 일들을 하거나 일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서울처럼 공연이나 행사가 많은 곳이 아니라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여러 가지 재밌는 일들을 만들어 보려고 해요.
제가 하고 있는 지리산 작은 변화 지원 센터도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못하고 있는 일을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토닥에서 책 읽기 모임도 하고 있거든요. 책을 읽는 좋아한다면 여기 나와 함께 이야기해 볼 수도 있겠죠. 청년들의 펜션 쇼 같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
결국 재미라는 것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서로를 알아 가는 것들, 그래서 만날 사람이 있고 돈 버는 일이 아니어도 소통하면서 지내면 재미가 있을 것 같거든요. 저는 여기서 남아서 재밌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산내 사람들과 더불어서요.(웃음)"
이야기할수록 김누리씨에게 더 궁금한 질문들이 늘어났다. 그만큼 청년이 지역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고 마을은 점점 소멸해 가고 있다. 가끔 시골에 내려와 1~2년 동안 무엇인가 열심히 시도하다가 어느 날 봄 눈처럼 사라지는 청년들에 대한 기억들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힘듦, 또는 시골문화와 충돌, 또는 지루함 이것도 아니면 두고 온 도시가 그리워 버티기 힘들었기에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리씨는 도시에 살던 몇 년을 빼고는 시골에 남아 산내 사람들과 함께 일을 만들어 내고 그 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들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온다면 마을 소멸이라는 단어는 사라졌을 것이다. 떠난 청년들이 돌아오지 않기에 지금 이 시각에도 시골 마을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누리씨의 도전은 더욱 빛나는 것 같다.
토닥에서 인터뷰하는 동안 천왕봉을 넘어온 오전의 햇살이 들어와 토닥과 책들을 비추고 누리 씨를 비추고 있었다. 그의 삶에도 항상 따뜻한 지지와 행복한 햇살이 비췄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리산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