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배우들이 매일같이 땀 흘려 연습하는 은밀한 장소. 대학로예술극장의 6층에 스무 명 남짓 중학생들이 모였다. 무리에 섞인 다섯 명의 어른이 이들을 이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는 일사불란함도 보이지만, 또래의 사춘기가 그렇듯 왁자지껄하다. 하지만 산만한 분위기는 이내 잠잠해진다.

두 시간에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이렇게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제작진의 당초 의도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속내를 모르는 참관자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두 시간 중 절반에 이를 무렵 아이들은 이미 연극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스무 명의 무리가 서로를 교차하며 걷는다. 그들의 어깨는 서로 닿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마주친다. 매섭게 반복되는 뒤섞임이 군중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누가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 착각할 정도로 서로에게 던지는 외마디가 정신을 빼놓는다. 그리고 잠시 주어진 휴식을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때 한 쪽에서 두 명의 남자가 다가와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AD
"모두들 안녕, 혹시 여기가 광장중학교 친구 맞아요?"
"(일동) 네"

이 또한 연극의 일부분이다. 이 광경은 이꽃님의 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를 각색해 하나의 연극을 만든 과정이다. 지난 10일, 연극과 연기에 대한 진로체험 수업인 <대학로 꿈잼학교>의 마지막 날 직접 참관해 취재해봤다.

조각난 진실과 무너진 믿음에 관한 이야기. 학교 안 두 여학생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과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둘의 관계를 조명하는 서스펜스 심리물이다. 원작은 대부분 중학교 도서관에 꽂혀있을 정도로 베스트셀러 작품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대사와 인터뷰의 독백이 주를 이룬다. 이를 위해 연극은 아이들에게 여러 스폿을 돌아다니면서 움직이게 기획됐다. 작품 속에 주변인들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을 퍼트리기 위함이다.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아이들이 직접 소설 속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도 연출자의 세심한 의도였다.

 진로체험에 참여하고 있는 광장중학교 1학년 학생들
진로체험에 참여하고 있는 광장중학교 1학년 학생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시 연극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심리에 빠져보자. 방금 전 아이들 속으로 등장한 두 명의 어른은 소설 속 살인자의 용의자를 파악하기 위해 모인 형사로 보인다. 스무 명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살인사건을 들었거나 주변인으로 등장한다. 아이들로 하여금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하여 실마리를 찾는 과정이다.

"여기에 너희들을 모은 이유는 알다시피 지난주에 안타까운 사건들이 있었잖아. 서은이가 죽은 일. 우리 학교 쓰레기장에서. 처음에는 자살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타살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그래서 선생님께 부탁했어. 너희들에게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너희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우리가 사건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 거 같아."

연극 속에는 '박서은'이라는 죽은 아이와 '지주연'이라는 용의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두 여학생 사이에 벌어진 질투, 따돌림 등으로 미루어보아 대부분은 범인이 주연이라고 확신한다. 죽음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됐던 벽돌이 증거라며 모든 정황은 그를 범인이라 몰고간다. 하지만 용의자로 지목된 당사자는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그가 진짜 범인일까.

작품 속에선 드러나지 않았지만, 작품 밖에선 진짜 범인이 따로 있었다. 수많은 목격자들 중 한 명의 우연한 실수로 발생한 사건은 작품 속에서 끝내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다. 여기서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소문이나 뒷이야기가 진짜 사실이 아님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팩트는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이 믿는 게 더 중요한 일이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대예술 진로체험 프로그램 열어

이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지난 11월 7일부터 12월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스튜디오 하늘에서 청소년 대상의 예술진로 체험 프로그램 <대학로 꿈잼학교>의 일환이다. 이것은 자유학년(기)제 대상인 중학교 1~2학년 청소년들에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을 활용하여 무대와 관련된 예술체험과 진로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지난 10일에는 서울 광장중학교 1학년 스무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지난 10일에는 서울 광장중학교 1학년 스무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6년에 자유학년(기)제가 전면 시행됨에 따라 시작된 <대학로 꿈잼학교>는 청소년들이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에서 꿈과 재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기획됐다. 지난 2016년 9월에는 청소년 예술진로체험으로 시작한 이래 2017년 말에는 '대한민국 교육기부대상'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2019년까지 '공연장 투어' '나도 배우' '나도 무용가' 등 3개의 유형으로 운영됐는데, "청소년들이 예술분야의 진로체험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하는데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20년부터 코로나19으로 인해 프로그램이 잠시 중단됐으며, 올해는 '나도 배우'로 시범 재개됐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 문학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극 속의 상황에 학생들이 들어가 실제 배우들과 함께 연극 배우가 되는 훈련과 작품 참여 경험을 하게된다.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장소는 평소에 배우가 연습하는 '대학로예술극장 스튜디오 하늘'이다. 지난 3월에는 서울시교육청과 협력하여 학생들을 모집했는데, 총 11개 학교에서 213명이 참여했다.

이 중에서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지난 10일에는 서울 광장중학교 1학년 스무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맡고 있는 김유진 교사는 아이들을 인솔해서 대학로의 현장에 나왔는데,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계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지난 11월 7일부터 12월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스튜디오 하늘에서 청소년 대상의 예술진로 체험 프로그램 <대학로 꿈잼학교>의 일환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지난 11월 7일부터 12월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스튜디오 하늘에서 청소년 대상의 예술진로 체험 프로그램 <대학로 꿈잼학교>의 일환이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어요. 학교에는 이 같은 연극수업이 없거든요. 자유학기제 수업에서 뮤지컬이나 K팝 댄스 등을 체험하면서 아마도 관심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리고 국어교과에서도 <매체로 표현하기>에 참여하면서 연기와 연극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어요.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이 등장인물이 되어봄으로써 영상을 찍어보는 수업을 보고 신청한 거 같아요."

진로체험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들었나

<대학로 꿀잼학교>는 실제로 대학로를 기반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극단 <플레이그룹 잼잼>이 이끌었다. 코로나19로 대면활동이 전면 중단되기 직전까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꿈잼학교'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코로나19가 종료된 이후에 현재는 시범운영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 참여한 단체들 중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 프로그램을 잘하는 단체를 선별했다. 이들은 프로그램을 위해서 단원들을 결성했는데, 여기엔 실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 참여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변혜은 대리는 사업에 관한 소개를 이렇게 이어갔다.

"자유학년(기)제가 본격화된 지난 2016년부터 <대학로 꿈잼학교>가 시행됐는데, 서울지역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체험을 해보는 거예요. 기존에 진행한 세 가지 프로그램들 중에서 선착순으로 신청받아서 매칭을 했어요. 우선 학교가 신청을 하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연결시켜서 체험을 한 거죠. 행사를 마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나도 배우'가 후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는 미리 내용을 알리진 않지만, 연극은 <죽이고 싶은 아이>라는 청소년 베스트셀러를 토대로 제작됐다. 총 2권으로 구성된 소설인데, 명확한 설명없이 등장인물의 대사만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나오는 대사는 돌고 도는 소문을 통해서 완전체를 이룬다.

한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인 이번 작품은 아이들을 무대 안으로 끌어들이고 소문을 퍼트리는 인물을 배치시킨다. 특히 아이들이 서로 다른 네 장소를 이동하는 방식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내는 의도를 심어놓은 것이다.

중간 작업이 끝나면 영상과 함께 송출을 통해서 결말로 향해간다. 다만, 극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아이들을 유도할 뿐 소재를 던지면 학생들끼리 판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학생들이 대사를 던지게 된다. 여기저기 들었던 소문을 토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과정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연극은 무대 뒤편에서 대사를 진행하면 그것을 녹화해서 스크린으로 송출한다.

마치 극에 참여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화면 안에서 연기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그에게도 굳이 아쉬운 점을 하나 뽑자면 무엇이냐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일회성으로 진행되는 것이죠. 아이들이 살아오면서 진짜 무용수와 배우들이 활동하는 연습실이나 백스테이지에 들어올 일이 없잖아요? 여기는 공연으로 개방되는 공간도 아니고 배우들이 연습만 하는 곳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배우를 가까이 접할 기회가 없거든요."

 “아이들이 몰입해서 참여할 수 있었고, 내용도 정서적인 면에서 상당히 좋았어요.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역량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과정이었어요. 형식적인 체험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모든 아이들이 활동해볼 수 있는 체험이라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저희 반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한번 참여해보고 싶어요.” (광장중학교 김유진 교사)
“아이들이 몰입해서 참여할 수 있었고, 내용도 정서적인 면에서 상당히 좋았어요.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역량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과정이었어요. 형식적인 체험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모든 아이들이 활동해볼 수 있는 체험이라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저희 반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한번 참여해보고 싶어요.” (광장중학교 김유진 교사) ⓒ 필립리

한편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 무리를 이끄는 어느 배우는 아이들에게 <대학로 꿈잼학교>의 취지를 대사로 설명했다.

"친구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엄청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 거야. 그리고 살면서 나는 한 번이라도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본 적이 있다는 사람 있어? 아니면 주변에서 친구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사람은? 아마도 많을 거야. 그런데 오늘의 일을 기억해봤으면 좋겠어.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오지만 잠깐 멈춰 서서 사실인지 아닌지 보길 바라. 무엇이 진실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자신의 생각을 갖고 분별하는 친구가 됐으면 좋겠어.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해.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갔으면 좋겠어."

두 시간 여정을 끝내며 나눈 속내

연극을 제작하기 위해 수많은 스태프들이 참여한다. 배우뿐 아니라 연출자와 무대감독, 음향과 조명 등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완성작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에 작품의 토대를 이룬 희곡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연극을 더욱 세밀한 대사로 만들어주며, 이를 다듬기 위해 드라마투르그의 도움을 얻기도 한다.

이런 오랜 제작과정을 단 2시간 만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참관했다. 처음에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지만 직접 주인공으로 나선 아이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고백했다. 실제로 절반의 시간이 흘렀을 때, 아이들은 스스로 살인사건을 목격한 관계자처럼 연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작품을 제작한 <플레이그룹 잼잼>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실제로 연극을 제작하는 일이 주요한 부분이지만 코로나19 이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아동 청소년을 위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마친 경험이 있다.

이번에 진행하는 시범사업에서도 그간의 성공노하우 때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현업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들이 힘을 모았다. 극중 아이들을 위한 이번 과정의 방향을 플레이그룹 잼잼의 유은지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는 여러 소문들과 입장 차이가 다른 의견을 넣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혼란 안에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리하게 만들려고요. 둘째는 연극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어요. 여기는 무대가 변하는 것도 아니지만, 배우는 작은 소품 하나만으로도 인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조명 하나만으로 무대의 전체가 바뀝니다.

연극은 대단하지 않지만 사소한 장치만으로 공간과 인물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라는 이해를 높여주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지만 개관적인 사실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감정을 자신의 상황이라고 느꼈을 때에는 전혀 다른 해석과 경험이 된다는 연기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요."

두 시간의 공연이 끝났다, 실제 범인을 알게 됐다는 아이들의 탄식과 함께. 실제 배우를 경험하는 아찔한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배우보다 더 실감 나고 맛깔스럽게 내뱉었던 광장중학교 1학년의 오시언군의 소감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처럼 올라간다.

"첫 경험이에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인상 깊어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너무 재미있어서 좋은 체험이었습니다. 저는 국어시간에 이 책으로 실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 연기와 연극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두 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배우보다 더 실감 나고 맛깔스럽게 내뱉었던 광장중학교 1학년의 오시언 군이 소감을 말했다.
두 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배우보다 더 실감 나고 맛깔스럽게 내뱉었던 광장중학교 1학년의 오시언 군이 소감을 말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기#연극#대학로#꿈잼학교#진로체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대학로에서

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 <문화+서울>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에서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