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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유형이 다양해진 만큼 노동착취와 사용자 책임 회피의 모습도 다양해졌습니다. 가짜 3.3 노동,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 노동 등 어떠한 이름을 붙여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내 마음속 비빌 언덕, 비상구가 필요합니다. 3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비상구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와 제도적·사회적 해결방안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자 합니다.[기자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동약자지원법 입법발의 국민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동약자지원법 입법발의 국민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 남소연

정부·여당이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노동약자 지원법)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약자지원법은 '노동약자'라는 용어를 도입하고, "국가가 노동약자의 권익 보호, 복지 증진 등을 통해 국민이 가지는 근로의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노동약자'란 국가로부터 지원·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사업에 대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지급받아 현행 노동법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사람 ▲현행 노동법상 근로자임에도 사업장 특성·여건 등으로 근로조건의 개선 등을 도모하기 어려운 사람 ▲노동약자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한 사람 등으로 규정했다.

노동계는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를 폭넓게 보호하기 위해선 노동약자지원법이 아니라 현행 근로기준법 자체를 확대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약자지원법이 플랫폼 노동자 등 근로자성이 부당하게 인정되지 않고 있는 사각지대 노동자들에 대한 지위를 노동법 밖의 존재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이유 등이다. 기업이 '근로자'를 기존 노동법의 바깥이자 노동약자지원법의 안으로 이전시키기 위해서 직원들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비근로자)'로 적극 전환하려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노동약자 지원법이 초래할 심각한 문제

'노동약자'라는 단어도 문제인데 노동강자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노동자를 편가르기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그리고 노동약자지원법에는 '노동약자'에 대한 정의 중에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지급받는 사람으로서 사용종속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노동관계법령에 의하여 보호받기 어려운 사람"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단 이 정의규정에 포함된다고 보아 노동약자지원법을 적용하게 되면 해당 노동자는 "사용종속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확고히 되어 장래 계속하여 기존 노동법 체계에 포섭될 수 없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사각지대에서 노동약자지원법에만 의존하여 살게되는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 공고화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노동약자지원법은 노동자에게 '권리'를 주는 법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시혜'를 받는 대상으로 노동자를 전락시키는 법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평가다.

복지정책에는 크게 세가지 종류가 있는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공적부조다. 공적부조는 경제능력이 저조한 국민에게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수준을 보장하는 원조제도다. 즉 '빈곤층'에 대한 '사후적' 국가의 '시혜책'이다. 비교하여 사회보험과 사회서비스는 국민이 일정비용을 분담하는 등 책무를 지는 동시에 국가에게 복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즉 청구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노동법은 보편성, 자기부담성, 청구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입법되어 왔다. 노동자의 자기주체성, 국가와 대등한 지위에서 정당한 요구를 할 권리를 보장해온 것이다. 청구권이 없으면 낮은 지위에서 '부탁'을 할 수 밖에 없고 부탁을 거절당해도 구제책이 없다. 그래서 복지제도는 시혜가 아닌 청구권을 확대하는 방식이 인간존엄의 지속가능 측면에서 타당하다.

노조혐오, 노조파괴 프레임

 12월 2일 열린 노동약자법 규탄 기자회견 모습.
12월 2일 열린 노동약자법 규탄 기자회견 모습. ⓒ 충북인뉴스

양대노총 등 노동계는 정부여당의 노동약자지원법이 기만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약자를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법률 내용을 보면 국가가 주고 싶을 때 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주체성이 사라지고 국가에 복속되어 인간존엄성을 구걸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입법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노조법2,3조 개정이 대표적이다. 정부여당은 위 노동계 요구에 대해 줄곧 부정적인데 그래서 이번 노동약자지원법이 위 요구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포석이 아닌지 하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노동약자지원법 추진 과정에 노조혐오 프레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테면 '양대노총=기득권, 노동약자 보호 안 함', '노조법2,3조 = 노조원들용'이라는 노동계에 적대적인 시각과 '노동약자지원법=비노조 다수국민 보호, 4대보험과 달리 자기부담금도 없어서 이익'이라는 정부여당의 기조가 반영된 입법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노동약자지원법 추진과정이 노조혐오와 노조파괴 프레임이라고 반발하는 모양새다.

노동약자지원법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주요 내용들이 대부분 "국가는 (중략) 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 의무가 없는 시혜적 제도임이 형식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국가가 아무 것도 이행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노동약자지원법 문언의 타당한 해석이다.

노동약자지원법, 재검토할 필요 있다

대체입법이 아닌 별개의 입법이어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법률을 개악하거나 수정하는 경우가 수시로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러한 경우 기존 노동법들과 우열관계 다툼만 불필요하게 생길 것으로 보인다. 노동약자지원법은 기존 노동법들에 비해 문장이 추상적이어서 친기업적 성향의 보수정당 입장에서는 손쉽게 이 법을 개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경직되어 개정이 쉽지 않은 기존 노동법들을 잠탈하려 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노동계는 별도로 노동법을 제정 하지 말고 기존의 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한다. 노동계의 주장을 입법학적인 측면에서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부여당은 노동약자지원법이 추가로 있으면 더 좋지 않냐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추가 입법의 장벽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노동약자지원법이 있으면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노동계급의 기존 노동법에 대한 개정 요구 때마다 '노동약자지원법에 그런 유사동일한 내용이 있으니까 기존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몽니를 부릴 수도 있다. 즉 노동자는 시혜가 아니라 청구권이라는 본질이 전혀 다른 성격의 법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단지 내용이 비슷하면 노동약자지원법을 핑계로 기존 노동법 개정을 막을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다.

노동약자지원법에 대한 기재부의 '앓는 소리'가 벌써 나온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기재부의 이런 태도만 보더라도 노동약자지원법 제정 후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되는 바가 있다. 기재부가 돈을 안 주고 정부는 그 핑계로 이 법을 실행하지 않을 위험이다. 강제력도 없는 시혜적, 임의규정이 이렇게 허무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약자지원법 추진을 회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노동약자지원법#정의당#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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